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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5-07-15 16:38
창세기 043: 리브가와 야곱의 윤리적인 결단(창 27:1-46)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7,335  
창세기 043: 리브가와 야곱의 윤리적인 결단(창 27:1-46)

에서와 야곱은 한날한시에 태어난 쌍둥이 형제들입니다. 형 에서는 남성답고 씩씩하며 사냥을 즐겼습니다. 그런 에서에게는 아브라함 가정의 신앙적인 유산을 많이 물려받지 못한 결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아버지 이삭은 이런 에서를 편애하였습니다. 특히 이삭은 에서가 사냥한 음식을 즐겼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등에 업은 에서는 소중한 것에 대한 가치를 몰랐습니다. 에서는 밖으로만 나돌아 다녔기 때문에 차분히 앉아서 묵상하고 하나님께 예배할 시간을 갖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가문의 전통인 신앙양육을 받을 기회들을 많이 갖지 못했을 것이고, 무시하는 경향조차 있었을 것입니다.
에서는 경박했던 것 같습니다. 장자권의 가치를 몰랐고, 왜 그가 이방 여인과 혼인해서는 안 되는지도 몰랐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 장자권의 축복이란 단지 물질적인 축복에 국한된 것이기보다는 오히려 영적인 것에 더 큰 의미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에서와는 달리 야곱은 가업인 목축을 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할 시간과 예배할 시간을 많이 가졌으며, 집안에 머무는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신앙으로 양육 받을 기회들이 많았습니다. 이런 시간들을 통해서 야곱은 영적인 축복이 갖는 소중한 가치를 깊이 깨닫고 있었던 것입니다.
에서를 망친 것은 어찌 보면 아버지 이삭의 탓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이 자신에게 행한 것처럼 에서를 신앙으로 교육시키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에서를 위해서 신앙을 가진 신부를 구하는 일조차 시행하지 않았습니다. 이삭은 에서의 요리를 즐겼으며, 에서의 장래를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보다는 인정에 이끌렸습니다. 그래서 에서가 이방여인을 두 명씩이나 데려왔을 때에도 혼인을 막지 못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삭은 에서만을 축복하려고 작정하고 있었습니다. 그에게 모든 축복을 내리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행동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이삭과 에서의 편에 서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들을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비록 야곱이 간교한 수법을 써서 형으로부터 장자권을 빼앗고, 축복까지 가로챘다고는 하나, 야곱은 장자권이라든지 임종직전에 부친으로부터 받는 축복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와 리브가는 할 수만 있다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리브가는 에서보다도 야곱을 더 편애했습니다. 이삭이 에서를 편애한 것은 그가 요리해다주는 별미 때문이었지만, 리브가가 야곱을 편애한 것은 야곱이 집안일을 많이 도와줘서가 아닙니다. 리브가가 야곱을 편애한 것은 야곱이 믿음의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서열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우선시 됩니다. 서열보다 더 중요한 것이 믿음의 자격입니다. 야곱에게는 이 믿음이 있었고, 무엇보다도 쟁취해야할 내용에 대한 가치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리브가와 야곱의 행위는 기만과 술수에 의한 사기라기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실천하고 그분의 뜻을 적극적인 태도로 이룬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삭과 에서는 처음부터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을 행하고 있었고, 인본주의에 치우쳤습니다. 그러나 리브가와 야곱은 신본주의로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삭은 믿음이 없는 에서에 의지해서 여생을 보낼 계획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리브가는 믿음이 있는 야곱에 의지하여 여생을 보낼 생각이었습니다.
에서를 축복하려고한 이삭의 열망에도 불구하고 이삭의 축복은 에서가 아닌 야곱에게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사필귀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에서는 이미 장자권을 야곱에게 팔았던 것입니다. 장자권을 판 후에 장자의 축복을 열망한다는 것은 그 역시 야곱에게 속임수를 써서 팥죽을 빼앗아 먹은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야곱이 비열해 보인 것 같아도 사실 야곱은 일관되게 하나님의 축복을 열망해 온 사람입니다. 장자권이란 물질의 축복만이 아니란 것을 야곱은 일찍부터 깨닫고 있었던 것입니다.
로마서 9장을 잘못 이해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에서는 버리고 야곱을 택한 것으로 알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지만 모든 것을 다 결정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이 결정하시는 일도 있고, 인간이 결정하게 하시는 일도 있고, 인간이 갈망하는 것을 원치 아니하실지라도 허락하시는 일들이 있습니다. 반드시 모든 일을 하나님이 다 결정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되어질 모든 일을 미리 보시기 때문에 모든 것을 아십니다. 이런 맥락에서 하나님이 에서를 버리고 야곱을 택했다고 말할 수 없게 됩니다. 하나님이 에서를 버리고 야곱을 택했다는 말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야곱이 믿음으로 고백할 수 있는 말이지, 실제로 하나님이 에서를 버리고 야곱을 택했던 것은 아닙니다. 처음부터 옳은 생각과 옳은 판단을 가지고 일관되게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려고 했고, 하나님이 내리시는 축복을 받아 누리겠다는 강한 의지와 믿음을 갖고 있었던 야곱이 에서가 받을 축복을 대신 받아 누리게 될 것을 하나님은 미리 알고 계셨습니다. 한편 에서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거나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게 아닙니다. 에서는 자기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살지 않았습니다. 무엇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지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왜 장자권이 중요한지, 왜 이방여인과 혼인해서는 안 되는지, 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중요한지를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짐승이 흘리는 피를 보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저 들판에 나가서 짐승과 함께 뛰고 달리면서 활을 쏘고 죽이는 사냥을 즐겼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즉흥적으로 결정하고 깊이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성격이 급하고 단순했습니다. 남성답고 씩씩하기는 했으나 하나님의 은총을 입기에는 영적으로 부족한 것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그가 야곱에게 축복을 빼앗긴 것은 운명이 그렇게 정해진 것이 아니라, 당연히 자신의 것이 될 것이라는 가벼운 생각 때문에 손에 쥐고 있던 것을 놓치고 만 것입니다. 야곱이 빼앗아 갔다는 표현보다는 손에 쥔 것을 지킬만한 지혜와 총명이 없어서 놓치고 말았다고 표현해야 할 것입니다.
이삭과 에서에게는 신앙으로 행하지 아니한 문제점들이 있었습니다. 에서는 장자권에 포함된 신앙의 의미를 소홀히 했습니다. 장자권에는 하나님께서 세우시고자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성취해나갈 후계자가 될 권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에서는 신앙적으로 살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이 왜 그렇게 중요한지를 의식하지 못했습니다. 또 장자권을 받기 위해서는 육체적인 혈통뿐 아니라 신앙적인 전통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에서가 헷 족속의 여인들과 결혼한 것이 이방민족의 피가 섞이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기보다 신앙전통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오늘날까지 견지하고 있는 것은 종교적인 전통을 혈통보다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방인이라도 이스라엘 민족의 신앙전통을 완전하게 따르고 완전하게 개종만 한다면 하등에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따라서 에서의 헷 족속부인들은 이런 신앙전통을 완전히 따르지 않았고 개종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삭과 리브가에게 근심거리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삭은 매사에 소극적인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리브가가 하란에서 올 때 묵상 중에 있었던 것으로 보아서 조용한 사람이었던 같고, 블레셋 사람들과의 대결을 번번이 피한 것으로 보아서 싸움을 싫어하는 평화로운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조용하고 소극적인 성격 때문에 에서가 헷 족속여인들을 집안에 끌어들이는 일을 적극적으로 에서에 맞서 막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망나니 맏아들의 공갈협박에 굴복당한 약한 아버지의 모습을 이삭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삭은 맏아들을 위해 합당한 아내를 찾지 못한 일로 인해 며느리들에 의해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경험조차도 맏아들 에서를 편애하는 이삭에게 교훈이 되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죽음을 앞에 둔 가장은 자신의 모든 아들을 불러 축복을 하는 것이 관례였지만, 이삭은 임종 시에 이런 관례를 어기고 에서만을 불러 축복하려고 했습니다. 이삭은 의도적으로 에서만을 불러서 축복을 받게 하고 야곱은 제외시키려고 했습니다. 이삭은 에서를 불러 별미를 만들어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4절에 보면, “나의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다가 먹게 하여 나로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점에서 이삭과 에서는 원칙보다는 식욕을, 정의보다는 방종을, 영구적인 영적 가치보다는 순간적인 육적 만족을 우선시 했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이삭이 하나님의 계시에 대해서 관심을 두지 않았거나 믿으려 하지 않았고, 또한 에서에 대한 편애로 인해 하나님의 뜻에 역행하려 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계략을 꾸며서 아버지의 축복을 쟁취한 리브가와 야곱은 다른 면에서는 몰라도 적어도 신앙적인 면에서는 이삭과 에서보다 훨씬 적극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리브가는 이삭에게 매우 합당한 아내였습니다. 그녀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의 땅으로 가기 위해서 기꺼이 가족과 고향을 떠나는 일에 조금치도 주저하지 않았던 여성이었습니다. 리브가라면 서열에 상관치 않고 가문의 대를 이어서 하나님의 뜻을 이뤄야할 후계자로 믿음위에 선 야곱을 택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리브가라면 에서보다는 당연히 야곱에게 축복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리브가는 옳지 못한 일을 하는 남편 이삭을 속여서라도 잘못된 행위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만큼 리브가는 적극적인 여성이었던 것입니다.
야곱 또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축복을 받는 일에는 씩씩하고 용감한 에서보다도 더 적극적이었던 사람입니다. 모자가 합세하여 받아낸 축복은 도덕적으로 볼 때 야비한 속임수였을는지는 몰라도 윤리적으로 볼 때는 잘못된 일을 바로잡는 적극적인 행동이었던 것입니다. 만일에 이삭의 뜻대로 일이 진행되었더라면,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은 에서의 불신앙으로 인해서 이뤄지지 못하고 물거품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삭의 가정을 통해서 우리 신앙인들이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가르쳐야할 신앙교육의 중요성과 일의 결정을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하는 믿음의 중요성을 배울 수가 있습니다. 리브가와 야곱처럼 모든 일을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 안에서 행하도록 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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