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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3-12-12 07:42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요 17:21-26)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5,782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요 17:21-26)

[오후 성경공부 내용]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요 17:21-23)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교회의 일치 여부가 전도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입니다. 교회의 일치는 세상으로 하여금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내신 자로 믿게 할뿐 아니라, 하나님이 교회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한다는 점입니다. 바꿔 말하면, 분열은 전도를 가로막을 뿐 아니라, 분열 그 자체가 큰 죄란 점입니다. 예수님께서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마 23:13)고 하셨는데, 이는 먼저 믿는 자들의 잘못된 행위가 전도의 문을 가로막는다는 사실을 언급하신 것입니다.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의 구원사역은 분열을 일치로 가져오는 것이었습니다. 분열을 죄로 보고, 죄의 값을 죽음으로 봅니다. 따라서 죽음이란 분열 또는 단절을 말하는데, 하나님과의 분열 또는 단절을 영혼의 죽음, 육체가 영혼에서 분열 또는 단절되는 것을 육신의 죽음이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사람이 죽음에서 생명에로 거듭나는 길은 하나님과 일치 또는 연대, 사람과 일치 또는 연대, 자연과 일치 또는 연대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단절을 원수된 관계, 구원을 화목된 관계라고 말합니다.
인간문제의 원인을 불교는 욕심과 집착에서 보고, 유교는 칠정(七情) 곧 기쁨, 노여움, 슬픔, 즐거움, 수치, 더러움, 그리고 욕심에서 보지만, 기독교는 관계단절에서 봅니다. 관계단절을 죽음으로 보고, 관계회복을 구원으로 봅니다. 다음과 같은 성구들을 잠시만 훑어보시면 대번에 알 수 있는 내용입니다.
(롬 5:10-11)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 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고후 5:18-20)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엡 2: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골 1: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골 1:22)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살전 5:13) 저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성경은 단절에서 죄가 싹트고, 죄가 장성하여 사망에 이른다고 말합니다. 역으로 단절로 원수된 관계가 화목으로 회복된 관계를 구원이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구원은 좋은 관계에서 비롯되는 화평이요 기쁨입니다. 이것을 이루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단절관계를 회복시키시기 위해서 그리스도 예수님을 화목제물로 삼으셨습니다. 다음의 성구들이 이 부분을 잘 밝혀주고 있습니다.
(롬 3: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요일 2:2)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요일 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그리스도 예수님을 화목제물로 삼으심은 인간들로 하여금 단절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구원에 이르게 할뿐 아니라, 단절된 인간관계를 푸는 열쇠로 또 행복한 삶의 비결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인간끼리의 관계와 무관하게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관계가 나쁠 때,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다고 할 수 있는 경우는 믿음을 지키기 위한 것 말고는 거의 없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5장 24절에서,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또 마가복음 9장 50절에서는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목적을 위해서 하나님은 내리사랑으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습니다.” 이뿐 아니라, 보다 적극적인 방법으로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는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단절은 약속이 깨지는데서 생깁니다.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과 행한 약속을 지키지 아니하고 금단의 열매를 먹었을 때에 제일 먼저 느낀 것이 불안과 초조와 죄의식과 수치심이었습니다. 이 같은 감정은 단절의 신호입니다. 사람사이가 나빠지면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것이 불안과 초조와 의심과 미움입니다. 이런 인간의 감정은 넓게 보면 죄의식에서 비롯됩니다. 죄의식에서 불안, 초조, 수치심이 생깁니다. 관계가 불편해지면 마음이 불안해지고 그래서 외면하게 되고 대화가 끊깁니다. 그러면서 의심이 생기고, 그 의심이 커지면서 미움으로 바뀝니다. 미움은 자신의 죄책감을 상대방에게 전가시킬 구실에서 비롯됩니다. 따라서 아담과 이브처럼 핑계를 일삼게 되고 상대방을 비방하고 탓하게 됩니다. 결국에는 가인이 아벨을 살해하는 것과 같은 엄청난 비극이 벌어집니다. 자연이 인간에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듯이 피차에 쓴 뿌리가 됩니다. 원수가 됩니다. 이런 분열관계에서는 중보기도가 나올 수 없습니다. 따라서 분열은 하나님의 일을 가로막습니다. 전도의 문을 가로막습니다.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없게 만듭니다. 성서가 죄의 원인을 단절에서, 구원을 통합에서 찾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고 예수님께서 승천직전에 제자들의 일치를 위해서 기도하신 목적이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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