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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9-22 23:08
창세기 36-44장
 글쓴이 : KCCS
조회 : 843  

제1과 에돔 족속의 조상이 된 에서

오늘의 말씀: 창세기 36장 1-43절
찬송: 546장(통 399장), 545장(통 344장)
간직할 말씀: “이에 에서 곧 에돔이 세일 산에 거주하니라”(창 36:8).
주제: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는다.

말씀 앞에서

창세기 36장은 에서(에돔)의 족보 곧 그의 자손들이 실린 장입니다. 에서는 아브라함과 이삭으로 이어지는 믿음의 가정에서 태어난 모태 신앙인이고, 맏아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과 약속에서 떠나 있었기 때문에 선민의 대를 잇지 못하였습니다. 이뿐 아니라, 에서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땅에서 떠나 에돔 땅에 거주하였습니다. 이처럼 에서는 믿음에서 떠났고, 약속의 땅에서 떠났습니다.

말씀을 나누며

1.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다.

창세기 25장 23절에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보듯이, 한 핏줄, 한 배에서 나왔더라도 야곱처럼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택함 받은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에서처럼 약속을 저버리고 택함 받지 못한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막 10:31)고 말씀하셨듯이, 아담의 장자 가인은 칼과 음모와 술수를 쓰는 세상권력의 조상이 되었고, 셋째 아들 셋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장자 이스마엘도 믿음을 저버리고, 이방민족의 조상이 되었고, 둘째 아들 이삭이 하나님의 선민조상이 되었습니다. 이삭의 맏아들 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저버리고 칼과 음모와 술수를 쓰는 이방민족의 조상이 되었고, 둘째 아들 야곱이 선민의 대를 이어갔습니다.

2.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는다.

바울이 로마서 9장 8절에서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고 하였듯이, 하나님 앞에서는 혈통이나 서열이 중요하지 않고, 약속에 대한 신실함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구약’이란 것이 있고, ‘신약’이란 것이 있습니다. ‘구약’(옛 언약)이란 뜻에는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과 언약식을 가질 때, 하나님께서 주신 옛 언약(율법)을 잘 지키기로 서약하고, 짐승의 피 뿌림을 받아 하나님의 약속의 선민이 되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또 ‘신약’(새 언약)이란 뜻에는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 침례식을 통해서 새 언약의 말씀에 따라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과 구세주로 신뢰하는 믿음 위에 굳게 서기로 서약하고,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받아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가 되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3. 하나님의 약속을 신실하게 믿는 자들이 약속의 자녀가 된다.

하나님 앞에서는 혈통이나 민족, 핏줄이나 서열이 중요하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신실한 믿음이 중요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혈통이나 민족, 핏줄이나 서열 따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신실하게 믿는 자들만이 하나님이 택한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가 됩니다. 이 같은 맥락에서 가인과 이스마엘과 에서는 혈통과 서열을 중시하는 가부장시대에 장자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약속 위에 서지 아니하고, 불신앙의 길을 걸음으로써 하나님의 약속에서 멀어졌고, 장자의 권리를 믿음이 있는 동생들에게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말씀을 마치며

신앙의 세계는 서열파괴의 세계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누가 먼저 믿고, 누가 나중 믿었는가가 중요치 않습니다. 에서는 아브라함과 이삭으로 이어지는 경건한 믿음의 가정, 곧 언약백성의 혈통에서 태어난 모태 신앙인이었습니다. 아무리 그 부모가 경건할지라도, 그 자녀가 세상을 쫓아가고 세상과 타협한다면, 하나님의 언약백성의 반열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에서는 맏아들로 태어나 장자의 축복을 누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귀하게 여기지 아니하고 장자의 권리를 팔았고(창 25:33), 이방족속의 여인들과 결혼함으로써 신앙의 순수성을 잃었으며, 결국 신앙의 퇴보와 우상숭배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다”와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는다”와 “하나님의 약속을 신실하게 믿는 자들이 약속의 자녀가 된다”는 대 원칙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깊이 명심하여 먼저 믿는 우리 성도들은 겸손한 가운데 하나님과의 약속의 끈, 곧 믿음의 끈을 놓지 말고, 끝까지 신실하게 믿음 위에 굳게 서야합니다. 삶의 우선순위를 깨어지고 썩어지며 무너질 세상 것에 두지 말고 영원히 있을 하늘의 것과 영적인 것에 두어야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끝까지 믿음을 지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처럼 생명책, 곧 하나님의 백성의 족보에 이름이 기록되도록 해야 합니다.

다시 말씀 읽기

1. 에서가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에서 떠나게 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를 토의해 봅시다.
2. 에서가 약속의 땅 가나안을 떠난 이유와 그의 결정이 옳았는지를 토의해 봅시다.
3. 가인과 이스마엘에 이어서 에서까지 장자의 권리를 놓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를 토의해 봅시다.

 

제2과 꿈을 꾸고 말한 요셉

오늘의 말씀: 창세기 37장 1-36절
찬송: 490장(통 542장), 491장(통 543장)
간직할 말씀: “서로 이르되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창 37:19).
주제: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말씀 앞에서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창 25:23),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막 10:31),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는다”(롬 9:8)는 대원칙이 창세기 37장에서 지속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혈통이나 서열이 중요하지 않고, 하나님과의 약속과 믿음이 중요합니다. 창세기 37장은 야곱의 열한 번째 아들 요셉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족장 야곱에게 열두 명의 아들들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택한 사람은 꿈을 꾸고 말한 요셉이었습니다.

말씀을 나누며

1. 하나님께서 택한 사람들은 믿음의 꿈을 꾸고 말하는 자들이었다.

하나님께서 택한 사람들은 최초로 가나안땅을 이스라엘 민족의 영토로 꿈꾼 아브라함이후로 그 꿈을 잇대어간 이삭, 야곱, 요셉과 같은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야곱의 열한 번째 아들 요셉은 믿음이 약한 형들의 지배를 받기보다는 언젠가는 형들의 머리가 되겠다는 꿈을 꾸었습니다. 창세기 37장에서 요셉이 꾼 꿈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야곱의 아들들이 밭에 나가 곡식을 묶을 때에 요셉의 단은 일어서고 형들의 단은 요셉의 단을 둘러서서 절하는 꿈이었습니다. 또 다른 꿈은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요셉에게 절하는 꿈이었습니다. 이 꿈으로 인해서 요셉은 부족의 질서와 평화를 흔들어놓았고 형들로부터 미움을 샀지만, 하나님은 그의 꿈을 이루어주셨습니다. 요셉은 나중에 이집트의 총리가 되었고, 70-80여명이나 되는 대식구들과 수많은 가축들을 극심한 가뭄으로 인한 죽음의 위기에서 구해냈습니다.

2. 하나님께서 택한 사람들은 믿음의 사람들이었다.

요셉은 하나님과 야곱의 인정을 받을 만큼 총명하고 정직하며 믿음이 깊었습니다. 다른 형들의 과실을 못 본체하거나 형들과 타협하거나 그들의 나쁜 행실을 따라하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고자질을 자주할 만큼 강직했습니다. 하나님이 요셉의 마음속에 소원을 두시고 그 소원을 이뤄지게 하신 것은 그가 믿음의 청년이었고, 꿈을 좇는 성실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이 믿음이 그가 거둔 성공의 밑거름이었습니다. 요셉은 형들로부터 미움을 받았던 그것으로 인해서 요셉이 만난 하나님은 '깊은 웅덩이에서 건져 주신 하나님', '나의 고난을 통해서 가족을 구출해 주신 하나님'이었습니다.

3. 하나님께서 택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계획에 부합한 자들이었다.

요셉의 꿈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약속하신 신앙의 민족을 일으켜 세울 계승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꿈은 아브라함에게도 있었고, 이삭에게도 있었고, 야곱에게도 있었습니다. 야곱은 아들들에게 조상 아브라함 때부터 전해오는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이야기를 자식들에게 자주 들려주었을 것입니다. 해가지고 나면 전 가족이 큰 텐트 안에 모여서 이야기꽃을 피우거나 모닥불을 피워놓고 둘러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전부였을 당시에는 하나님의 언약과 민족의 꿈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언급되었을 것입니다. 추측하건데, 요셉의 꿈은 야곱이 들려준 조상들의 이야기, 그들이 하나님을 만난 이야기, 그리고 자기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에 깊게 연관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요셉은 열두 형제들 가운데서 아버지께서 들려주신 이야기를 가장 마음에 두고 심사숙고 했고, 그 꿈을 키워갔으며, 아버지 야곱처럼 그 꿈을 쟁취하려 했던 것입니다. 형들의 과실을 고자질한데는 이런 요셉의 성품과 맞물려 있습니다. 하나님이 요셉을 택해서 이집트로 보내신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봅니다. 요셉이 하나님의 계획에 가장 부합된 인물이었던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며

나이 차이가 많은 열 명의 형들이 자기 위에 있는 상황에서, 아버지뻘이자 삼촌벌인 형들의 틈에서 요셉은 무엇을 생각했을까요? 형들에게 절대 지지 않겠다는 포부가 있었고, 믿음이 있었고, 성실함이 있었을 것입니다. 꿈이 있기에 요셉은 절대 적당하게 살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단지 철부지 요셉이어서 형들의 과실을 고자질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인정하심을 받았던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중심을 보십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혈통이나 서열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게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될 자가 있다는 성경의 말씀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하나님의 선민의 계보는 혈통이나 서열로 정해지지 않고, 그분을 신뢰하는 믿음과 그 사람의 중심에 따라서 정해진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겼으면 합니다.

다시 말씀 읽기

1. 꿈을 꾸는 사람들은 주변사람들을 많이 힘들게 합니다. 그로 인해서 힘들었거나 복을 받았거나 한 경험이 있으면 함께 나눠봅시다.
2. 만일 우리가 꿈을 꾸고 있다면, 그 꿈이 믿음에 서 있는지, 하나님의 계획에 부합한지를 점검해 봅시다.
3. 믿음의 사람들이 만났던 하나님을 우리는 어떻게 만났는지 각자의 체험을 말해봅시다.

 

제3과 가문의 대를 잇고자 힘쓴 다말

오늘의 말씀: 창세기 38장 1-30절
찬송: 347장(통 382장), 357장(통 397장)
간직할 말씀: “해산할 때에 보니 쌍태라. 해산할 때에 손이 나오는지라. 산파가 이르되, ‘이는 먼저 나온 자라’ 하고, 홍색 실을 가져다가 그 손에 매었더니, 그 손을 도로 들이며 그의 아우가 나오는지라. 산파가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터뜨리고 나오느냐?’ 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베레스라 불렀고, 그의 형 곧 손에 홍색 실 있는 자가 뒤에 나오니, 그의 이름을 세라라 불렀더라”(창 38:27-30).
주제: 천국은 침노하는 자가 빼앗는다.

말씀 앞에서

사람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악하면 사망에 이르게 되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만사형통하게 됩니다. 창세기 38장에서 유다의 두 아들 엘과 오난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악하였으므로 죽었고, 유다의 며느리 다말과 야곱의 아들 요셉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으므로 만사형통하였습니다.

말씀을 나누며

1. 하나님은 엘과 오난의 행위를 악하게 보시고 벌하셨다.

고대 근동지방에는 결혼한 형제가 자식 없이 죽으면 다른 형제 또는 가장 가까운 친족이 형수와 결혼하여 아들을 낳게 해줌으로써 죽은 형제의 대를 잇는 ‘형사취수혼’(兄死取嫂婚) 제도가 있었습니다. 이 제도는 재산의 유출을 막고, 홀로 남아 의지할 데 없는 과부를 보살펴 남편 가족의 일원으로 남게 하며, 죽은 사람의 대를 잇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수혼으로 출생한 아이는 죽은 사람의 대를 이을 뿐 아니라, 아버지로부터도 재산의 일부를 상속받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동생 오난은 악행으로 인해서 죽은 형 엘의 대를 잇게 하는데 부정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오난의 행위를 악하게 보시고 벌하셨습니다.

2. 하나님은 유다의 행위를 부끄럽게 만드셨다.

셋째 시동생 셀라가 장성했지만, 남편으로 주지 않으려 하는 시아버지의 뜻을 안 다말은 비상수단으로 시아버지에게서 자식을 얻을 계획을 세웠습니다. 다말이 이런 계획을 세운 배경에는 시아버지가 며느리를 시집에 붙들어 두려고 하는 한, 또 후사를 이을 수 있는 친족이 있는 한, 과부라 할지라도 다른 남자에게 시집갈 자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다말에게보다는 며느리에게 아들을 남편으로 주지 아니한 유다에게 더 큰 잘못이 있었습니다. 이 점에 있어서 유다는 “그는 나보다 옳도다. 내가 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하였음이로다”(26절)라고 잘못을 시인했습니다. 유다가 다말과 더불어 행위를 가진 곳은 딤나 길 곁 ‘에나임 문’이었습니다. ‘에나임’은 ‘두 우물’이란 뜻이며, ‘에나임 문’은 가나안 종교인 바알신전이나 아스다롯신전의 문이었을 것입니다. 다말이 이곳에 있었던 것은 그녀가 신전의 여성사제 곧 신전창녀로 분장했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농경생활중심이었던 가나안 원주민들에게는 다산이 중요한 축복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생산을 주관하는 풍요의 신인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으며, 그 제사의식의 하나로써 신전에서 성행위를 가졌습니다. 이로써 유다는 이방신전 의식에 참여한 영적 음행과 다말을 범하는 육체 음행의 죄를 짓게 되었습니다.

3. 하나님은 다말의 행위를 옳다 인정하시고 형통케 하셨다.

다말의 행위가 정당행위로 인정된 데는 그녀가 자기 권리를 노력으로 찾았고, 시아버지의 행포를 고발하였으며, 홀아비인 시아버지를 통해서 자식을 낳음으로써 셀라에게 수혼의 의무를 면케 해주었고, 가문의 대를 잇게 하였으며, 비록 자신은 가나안 여인이었지만 아브라함의 자손의 대를 잇고자 힘썼다는데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다말은 이방여인으로서 부정행위로 자식을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 여주인공의 한 사람이 되었으며, 훗날 예수님의 족보에까지 그 이름이 실리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유다에게서 낳은 자식은 쌍둥이로서 베레스와 세라였습니다. 이삭의 아들 야곱이 에서의 발뒤꿈치를 붙잡고 나왔고, 기어이 에서를 제치고 하나님의 약속의 가문의 대를 이었듯이, 베레스는 아예 먼저 나가고 있던 세라를 어머니 뱃속으로 잡아 끌어들이고 자기가 먼저 세상 밖으로 나온 인물이었습니다.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창 25:23)는 대원칙이 창세기 38장에서도 지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 11:12)고 하셨습니다.

말씀을 마치며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중심을 보십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혈통이나 서열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게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될 자가 있다는 성경의 말씀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적용이 됩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자들의 계보는 혈통이나 서열로 정해지지 않고, 그분을 신뢰하는 믿음과 중심에 있다는 사실을 우리 성도님들은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다시 말씀 읽기

1. 우리의 행동들 중에 오난의 행위처럼 하나님의 계획을 방해한 적은 없는지 점검해봅시다.
2. 우리의 부적절한 행위가 어떤 경우에 하나님의 계획에 부합되었는지 경험담을 나눠봅시다.
3. 아브라함, 이삭, 야곱, 유다, 베레스가 모두 장자가 아니었다는 점에서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는다”(롬 9:8)는 원칙에 부합됩니다. “약속의 자녀”란 믿음의 자녀를 뜻합니다. 천국은 무엇으로 침노를 당하는지 말해봅시다.

 

제4과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서 진실한 요셉

오늘의 말씀: 창세기 39장 1-23절
찬송: 384장(통 434장), 391장(통 446장)
간직할 말씀: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창 39:23).
주제: 하나님께서 함께 하는 사람은 만사형통한다.

말씀 앞에서

꿈을 꾸고 말했던 요셉은 노예로 팔려 이집트로 끌려가 바로의 친위대장 보디발의 노예가 되었고,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누가 보든지 보지 않든지, 성실하고 정직하게 총명하고 지혜롭게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창세기 39장은 요셉이 버르장머리 없는 막내가 아니라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서 신실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말해줍니다. 창세기에 ‘형통’이란 단어가 6번 나오는데, 그 가운데 네 번이 39장에서 요셉에게 적용되었습니다.

말씀을 나누며

1. 하나님은 진실하고 성실한 믿음의 사람에게 복을 주신다.

요셉이 형들의 미움을 받아 노예로 팔린 것은 부당하고 억울한 일이었지만, 그 일을 배후에서 행하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신 약속을 성취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진실하고 성실한 요셉과 함께 하셨고 만사형통케 하셨습니다. 친위대장 보디발의 은혜를 입게 하셨고, 가정총무로 발탁되게 하여 관리자로 성장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요셉의 마음에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셨고(빌 2:13), 또 요셉은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견고히 설 수 있었습니다(대하 20:20절).

2.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자들에게 시험을 주신다.

승승장구하던 요셉에게 큰 시험이 닥쳐왔습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용모가 준수하고 잘생긴 요셉을 집요하게 유혹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유혹은 요셉의 흥망을 결정짓는 중요한 시험무대였습니다. 요셉 개인의 흥망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를 통해서 이루시려고 하는 이스라엘 민족의 흥망이 걸린 일이기도 하였습니다. 만일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에 넘어갔다면, 그가 이집트의 총리대신이 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고, 70-80여명의 부모형제친척과 수많은 가축을 기근으로부터 살리는 일도 없었을 것이며, 일개 가족이 이스라엘이란 큰 민족으로 발전하는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의 법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법이 그의 삶의 기준이 되고 판단의 잣대가 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믿음으로 사는 일에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보디발의 아내는 자신의 뜻을 이루지 못하자 자존심이 상했고, 수치심과 분노로 인해서 요셉을 참소합니다. 그로 인해서 요셉은 감옥에 가게 되지만, 이것 또한 하나님의 경륜에 따른 축복이었습니다.

3. 하나님은 시험을 통과하는 자들에게 더 큰 복을 주신다.

보디발이 요셉을 사형에 처형하지 않고 왕의 죄수들이 수용되어 있는 옥에 가둔 것은 대단한 호의로 볼 수 있습니다. 어쩌면 보디발이 아내의 말을 믿지 않았고, 요셉을 그녀로부터 떼어놓기 위해서 감옥에 넣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보디발의 배려는 겉으로 드러난 결과일 뿐이고, 실상은 하나님의 경륜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요셉은 두 번째로 깊은 웅덩이에 빠진 불쌍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련한 자의 눌림과 궁핍한 자의 탄식을 인하여 내가 이제 일어나 저를 그 원하는 안전지대에 두리라”(시 12:5)고 하신 말씀을 실행에 옮기고 계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전옥의 마음과 눈에 들게 하셨고, 또 전옥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요셉이 행하는 일마다 다 성공적인 것을 보고 제반 사무를 다 요셉의 손에 맡겼습니다. 감옥에서도 하나님은 요셉과 함께 하셨고, 은혜를 베푸셨으며, 그가 하는 모든 일에 성공을 주셨습니다.

말씀을 마치며

창세기 39장은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형통한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2절). 형통한 자가 된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하는 일마다 성공을 주신다는 뜻입니다. 둘째, 하나님께 은혜를 입으면 사람들한테도 은혜를 입게 된다는 것입니다(4절). 셋째, 하나님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은 자기가 섬기는 사람에게 복을 받게 한다는 것입니다. 넷째, 하나님께 은혜를 입는 사람은 하나님께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입니다(9절). 그는 사람을 기쁘게 하기보다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고 삽니다. 다섯째,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자들에게 시험을 주신다는 것입니다(20절). 여섯째, 하나님은 시험을 통과하는 자들에게 더 큰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23절). 요셉은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 진실한 청년이었기 때문에 노예로 팔렸고, 감옥에 갇혔지만, 하나님께서 그에게 하는 일마다 성공을 주셨습니다. 그가 육신의 정절은 물론 신앙의 정절을 지켰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가정총무의 일에서 감옥총무의 일을 맡아보게 하셨고, 결국에는 국가총무를 맡아 보게 하셨습니다. 본장은 하나님께 신실한 사람은 극심한 시련에도 불구하고 형통의 복을 누린다는 교훈을 줍니다.

다시 말씀 읽기

1.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를 의논해 봅시다.
2. 하나님께서 복 받게 하시려고 시험 당하게 하신 적이 있는지 각자의 경험을 나눠봅시다.
3. 시험을 물리친 기분이 어떤 느낌이었는지 각자의 경험을 함께 나눠봅시다.

 

제5과 해몽의 은사를 받았던 요셉

오늘의 말씀: 창세기 40장 1-23절
찬송: 338장(통 364장), 342장(통 395장)
간직할 말씀: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꿈을 꾸었으나 이를 해석할 자가 없도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하건대, 내게 이르소서”(창 40:8).
주제: 인간의 생사화복은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

말씀 앞에서

창세기 40장 1-4절은 요셉이 같은 감옥에 갇힌 두 관원장을 시중들게 된 배경이고, 5-19절은 그들이 꾼 꿈을 요셉이 해몽해 주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20-23절은 요셉의 해몽이 성취된 데 대한 기록입니다. 그러나 40장에서도 요셉의 시련은 지속됩니다. 그것은 첫 절, “그 후에”란 말과 마지막 절,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치 않고 잊었더라.”는 말에서 알 수 있습니다.

말씀을 나누며

1. 요셉의 해몽의 은사는 창조주 하나님 신앙에서 온 것이다.

요셉의 꿈과 해몽은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앞일을 내다보는 힘과 또 그것을 준비하는 힘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의 해몽의 은사는 세상적인 지혜나 지식에서 온 것이 아니고 믿음에서 온 것입니다. 그리고 이 믿음은 창조주 하나님 신앙에서 온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 신앙이란 흑암이 빛이 되고, 혼돈이 질서가 되며, 죽음이 생명이 되는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또 예수님을 빛과 생명을 주시는 분으로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의 특징은 감옥생활에서조차 꿈을 꾸고 해몽하며 그 꿈을 이루는 것입니다. 감옥생활과 꿈은 서로 상반됩니다. 감옥생활의 반대가 꿈이고, 꿈의 반대가 감옥생활입니다. 그런데 요셉의 감옥생활에서 나타난 특징은 꿈이 주제가 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2. 하나님은 꿈을 꾸게도 하시고 그 꿈을 이루게도 하신다.

절망적인 감옥에서 꿈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소중한 것이고 가치 있는 일입니다. 요셉은 자신이 꾼 꿈 때문에 시련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이 꾼 꿈은 하나님의 경륜과 섭리 속에서 반드시 이뤄질 원대한 꿈이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그의 꿈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꿈을 이루어주셨습니다. 사실 요셉에게 꿈을 품게 한 것도 하나님이십니다. 감옥에서 두 관원장이 꿈을 꾸었습니다. 한 사람의 꿈은 길한 꿈이었지만, 또 다른 사람의 꿈은 흉한 꿈이었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많은 꿈을 꾼다 해도 그 꿈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좋은 꿈, 바른 꿈,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만한 꿈을 꾸는 것이 중요합니다. 빌립보서 2장 13절에서 바울은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꾸는 꿈은 빌립보서 1장 6절의 말씀처럼, 우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이 반드시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합니다.

3. 요셉의 해몽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두 관원장이 꾼 꿈에서 우리가 생각해 볼 점은 그들이 꾼 꿈이 일상적으로 늘 꾸는 그런 꿈이 아니라 하나님의 특별한 경륜에 의한 비상한 꿈이었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두 관원장이 한날한시에 비슷한 유형의 꿈을 꾸었으며, 그에 대한 요셉의 해몽이 어김없이 성취되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들의 꿈은 요셉의 예언자적 능력을 관원장에게 입증시켜 훗날 그로 하여금 요셉을 바로에게 천거케 하기 위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행동이었던 것입니다. 두 명의 관원장들이 자기들이 꾼 꿈을 인해서 궁금해 하고 근심하고 있을 때에 요셉은 ‘꿈의 해석은 하나님께 있다’(8절)고 말함으로써 모든 숨겨진 지식과 지혜가 하나님께 속하여 있음을 선언하였습니다. 이 선언에서 능력과 지혜가 애급의 신이나 지혜자의 학식에 있지 않음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요셉의 선언은 하나님께서 능력과 지혜를 주시어 해석케 하는 자만이 그 꿈의 숨겨진 비밀을 밝힐 수 있다고 한 것입니다. 요셉은 이 능력과 지혜를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았기 때문에 나중에 애급의 총리가 될 수 있었습니다.

말씀을 마치며

요셉의 능력과 지혜의 근원은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을 신앙하고 신뢰하는 그의 믿음이 그를 연단 받게도 하고 애급의 총리가 되게도 한 것입니다. 인간적인 점에서 볼 때 요셉의 감옥생활은 희망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요셉을 보호하고 인도하셨습니다. 고난에 처할 때, 어려움을 당할 때 상황자체만을 바라보면 해결책이 나오지 않습니다. 우리가 바라봐야할 것은 하나님이고, 응답을 믿고 인내하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환란에서 승리하는 자가 믿음이 큰 자입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위에서 아래로, 처음부터 끝까지 보십니다. 내게 일어나는 일의 배후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인정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의 부탁을 잊고 지냈던 것처럼 사람들은 우리를 실망시킬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지속적으로 꿈을 심어 주시고 생각의 감옥, 행동의 감옥에서 벗어나게 하시며 탈출하게 하십니다.

다시 말씀 읽기

1. 우리 가운데서 하나님이 하신 일들에 대해서 함께 나눠봅시다.
2. 좋은 꿈, 바른 꿈,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만한 꿈은 어떤 것인지 말해봅시다.
3.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주는 장점들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 말해 봅시다.

 

제6과 애급의 총리가 된 요셉

오늘의 말씀: 창세기 41장 1-57절
찬송: 370장(통 455장), 382장(통 432장)
간직할 말씀: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창 41:16).
주제: 하나님은 자기의 하실 일을 인간에게 보이신다.

말씀 앞에서

창세기 41장은 요셉의 운명을 최종적으로 결정짓게 만든 세 번째 꿈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1-8절은 바로가 연거푸 두 번 꿈을 꾸고서 번민하며 해몽해 줄자를 찾았지만, 그 꿈을 해석하는 자가 아무도 없었다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9-13절은 까마득히 요셉을 잊고 지냈던 술 맡은 관원장이 2년 전 감옥에서 있었던 일을 기억해 내고 바로에게 고하였다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하실 일을 보이시기 위해서 7년 풍년과 7년 흉년을 예고하는 꿈을 바로 왕에게 꾸게 하셨고, 아무도 그 꿈을 해석치 못하는 상황에서 술 맡은 관원장으로 하여금 요셉을 기억나게 하셨으며, 바로 왕이 꾼 꿈에 대한 해석을 요셉에게 주셨고, 요셉이 애급의 총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말씀을 나누며

1. 하나님은 때와 시기를 자기의 권한에 두셨다.

창세기 41장은 만사가 하나님이 정하신 때와 시기에 이뤄진다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또 꿈을 꾸고 그 꿈이 이뤄지기를 기다리는 자는 참고 인내하며 믿음을 잃지 말아야한다는 것을 교훈해 줍니다. 성경 66권의 주제는 흑암이 빛이 되고, 혼돈이 질서가 되며, 죽음이 생명이 되고, 고난이 승리가 되며, 낮아짐이 높아짐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과정에 하나님이 개입하시고 관여하신다는 사실을 체험한 사람들이 고백한 내용입니다. 다른 한편 성경은 그렇게 되는 과정에서 하나님은 자기의 백성들에게 끊임없이 인내와 믿음을 요구한다고 말합니다. 요셉의 이야기도 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2.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신실한 믿음을 요구하신다.

꿈을 꾸고 그 꿈이 이뤄지기를 기다리는 요셉의 입장에서 보면 세월이 마냥 더디게 흘러간다고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때가 되면 그 꿈이 반드시 이뤄질 것이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참고 인내하면서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며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의심치 않았던 요셉은 결국 애급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 성도들도 요셉처럼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잃지 않고 인내하면서 우리의 꿈이 이뤄지기를 고대한다면 반드시 그 꿈들은 이뤄지고 말 것입니다. 어느 사회이든 시대를 앞서가는 선각자는 존경을 받습니다. 거기다가 적절한 대응책까지 마련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입니다. 요셉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도 인간의 문제를 책망하거나 벌하시기보다는 해결책을 마련해 놓으시고 단 한 영혼도 멸망당하지 않기를 원하셨습니다. 그 해결책이 바로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당신께서 친히 십자가에 못 박혀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시는 것이었습니다.

3. 하나님은 자기의 하실 일을 인간에게 보이신다.

청춘을 노예로서 혹은 감옥에서 보낸 죄수에게서 밝고 건설적인 생각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달랐습니다. 요셉은 출세나 명예회복보다는 자신이 소중히 간직한 믿음을 드러내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첫째, 요셉은 자신이 히브리출신의 노예란 것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둘째, 요셉은 우상신 ‘마르둑’(Marduk)의 대리자격인 바로 왕 앞에서 세상일을 계획하시고 실행하시며 또 그것을 계시하시는 분이 야훼 하나님이신 것을 당당하게 밝혔습니다. 요셉은 꿈에 대한 해석의 능력이 자신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음을 담대하게 말하였습니다. 이것은 꿈 해석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며, 하나님이 받으셔야할 영광이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을 미리 차단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셋째, 요셉은 바로의 꿈에 대해서 바르게 해석할 뿐 아니라, 대비책까지 말해 줌으로써 바로로부터 “하나님의 신에 감동한 사람”이란 칭찬까지 받았습니다. 넷째, 요셉은 두 아들의 이름을 모두 하나님과 관련하여 지었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내 모든 고난과 내 아버지의 온 집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는 뜻의 므낫세와 “하나님이 나를 내가 수고한 땅에서 번성하게 하셨다”는 뜻의 에브라임이란 이름은 요셉 자신의 신앙고백이었던 것입니다(51-52절).

말씀을 마치며

하나님께서 요셉을 들어 쓰신 것은 이스라엘 민족을 탄생케 하시려는 보다 큰 뜻 때문이었습니다. 이 같은 점에서 이집트는 이스라엘 민족이란 미숙아를 키우는 인큐베이터였던 셈입니다. 12명의 아들들 가운데 11번째 아들은 관심 밖의 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그에게 큰 꿈을 심어주시고, 부모와 형제들의 관심을 사게 하여 애급에 팔리게 하신 것이나, 일개 히브리 노예에 불과한 요셉으로 하여금 친위대장 보디발과 전옥의 관심을 사게 하신 것과 술 맡은 관원장의 관심을 사게 하신 것과 나중에는 바로 왕의 관심까지 받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다시 말씀 읽기

1. 요셉의 삶에 개입하셨던 하나님이 나의 삶에서는 어떻게 개입하셨는지 적어봅시다.
2. 생사여탈권을 쥔 고위관원들에게 하나님을 소개한 요셉의 용기에 대해서 말해봅시다.
3. 하나님이 크게 쓰시는 인물의 특징들에 대해서 함께 나눠봅시다.

 

제7과 역사를 활동무대로 삼으시는 하나님

오늘의 말씀: 창세기 42장 1-38절
찬송: 370장(통 455장), 380장(통 424장)
간직할 말씀: “요셉이 그들에게 대하여 꾼 꿈을 생각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정탐꾼들이라. 이 나라의 틈을 엿보려고 왔느니라’”(창 42:9).
주제: 역사는 하나님의 활동무대이다.

말씀 앞에서

창세기 42장은 도단에서 형들에게 노예상인에게 팔린(37:12-28) 이후 기나긴 역경을 거쳐 애급의 총리가 된 요셉이 22년 만에 형들과 재회하는 장면입니다. 본문은 세 부분으로 나눠집니다. 먼저 1-5절은 야곱 가족이 기근으로 고통을 겪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6-25절은 양식을 구하러 애급에 내려간 야곱의 아들들이 요셉과 대면하지만, 요셉이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형들을 시험하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26-38절은 가나안으로 돌아간 형제들이 야곱에게 자신들이 겪었던 일을 보고하는 장면입니다.

말씀을 나누며

1. 역사는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 속에서 진행된다.

창세기 42장은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에 정착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것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될 시기가 다가왔음을 시사해 주는 것입니다(15:13). 또 요셉의 형들이 요셉 앞에 엎드린 것은 소년시절 요셉이 꾸고 말했던 꿈(37:5-11)이 실제로 성취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창세기 42장은 내용과 의미에 따라서 세 장면으로 나눠서 설명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장면은 1-5절의 상황으로써 기근으로 고통을 겪던 야곱의 아들들이 양식을 구하기 위해서 애급으로 내려가는 장면입니다. 요셉이 소년시절 꾸고 말했던 꿈을 생각할 때, 요셉의 형들은 자신들이 노예상인에게 팔았던 요셉과의 대면을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아들들이 꿈을 꾸고 말하는 요셉을 미워했던 것이나 그를 노예상인에게 팔았던 것이 넓은 의미에서 보면 다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 속에 있었던 것들이었습니다.

2. 역사는 하나님의 구원의 활동무대이다.

두 번째 장면은 6-25절의 상황으로써 요셉과 형제들이 22년 만에 대면하는 장면입니다. 요셉은 17세에 애급에 팔려갔고, 13년 만에 총리가 되었으며, 다시 9년(대풍년 7년과 대 흉년 2년)이 지난 때에 형제들과 대면하게 된 것입니다. 소년시절 요셉이 꾸고 말했던 꿈이 그대로 실현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오랜 기간 지속되는 인고의 세월 속에서도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저버려서는 안 된다는 점을 교훈합니다. 다른 한편, 이 첫 상봉장면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철저한 태도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인간의 죄는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러도 언젠가는 반드시 하나님 앞에 드러나고 만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22년이란 긴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그 긴 세월을 요셉의 형제들이 동생을 팔아넘긴 죄책감으로 죄의식 속에서 살아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뿐 아니라, 이 사건은 하나님께서 언제나 당신의 계획 속에 회개와 회복의 은총을 마련하고 계심을 보여줍니다.

3. 인간은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기 위한 그릇이다.

세 번째 장면은 26-38절의 상황으로써 요셉의 시험을 받고 야곱의 아들들이 귀향하는 장면입니다. 이 부분의 장면은 앞부분 18-25절과 연결되어 죄에 대한 하나님의 철저한 보응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전혀 예측하지 못한 사건 속에서 자신들의 오래된 죄를 자각한 형제들에게 철저한 회개의 과정을 갖게 하여 돌아서게 하는 압박이 가해지는 장면인 것입니다. 창세기 저자는 이를 통해서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우리의 죄는 아무리 깊이 숨겨져 있다 해도 언젠가는 드러나고 만다는 사실을 교훈해 줍니다. 또 죄에서 돌이킴은 죄에 대한 인식이나 후회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죄 짓는 행위를 멈추는 180도 변화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죄의 깊은 뿌리는 철저한 과정을 통해서만 소멸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창세기 42장은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관심을 기우리셨던 것과 마찬가지로 허물 많은 야곱의 집안에 대해서도 동일한 관심을 기울이고 회개를 통해서 회복시켜 주셨음을 보여줍니다.

말씀을 마치며

인간은 다 하나님의 경륜의 그릇들입니다. 야곱과 그의 아들들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그릇들이었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이 꿈꾸고 말하는 요셉을 미워하여 노예상인들에게 판 것은 애급을 이스라엘 민족을 키우는 인큐베이터로 삼고자 하신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었던 일입니다. 우리는 본문 창세기를 통해서 우리 자신의 사적인 일들은 물론이고 국가나 세계의 흐름 속에서도 하나님의 경륜을 읽을 수 있는 역사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일들이 인간들만의 일들이 결코 아니란 사실을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인간들의 일 배후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경륜을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인간들이 역사를 만들어가는 주체인 것 같아도 그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은 역사의 주인이신 것입니다. 따라서 역사는 하나님이 활동하시는 무대입니다.

다시 말씀 읽기

1. 왜 우리는 나쁜 일만 있는 상황에서조차 구원의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지 토의해 봅시다.
2. 어떻게 우리가 하찮은 일에서조차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할 수 있는지 말해봅시다.
3. 기쁠 때, 슬플 때, 만사형통 때, 만사불통 때 중에서 어느 때에 우리는 가장 자주 사랑의 하나님, 위로의 하나님, 구원의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지를 말해봅시다.

 

제8과 하나님을 믿고 결단을 내린 야곱

오늘의 말씀: 창세기 43장 1-34절
찬송: 545장(통 344장), 543장(통 342장)
간직할 말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창 43:14).
주제: 하나님은 믿고 결단하는 자에게 복을 주신다.

말씀 앞에서

창세기 42장에서 우리는 요셉의 형들이 시므온을 애급에 볼모로 잡혀 둔 채 양식을 사가지고 가나안으로 돌아온 사건을 살펴보았습니다. 이후 야곱의 가족들은 하루도 마음 편히 지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베냐민을 데리고 애급으로가 시므온을 되찾고, 양식도 더 사야한다 라는 요구를 계속했을 것이고, 야곱은 요셉을 잃고 또 베냐민까지 잃게 되는 상황을 참을 수 없어 했을 것입니다. 이로써 집안분위기는 무거워지고 평온하지 못했을 것이며, 시므온 가족의 불안과 슬픔까지 더해져 어떤 식으로든 해결책이 나와야 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련의 일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배후에서 하신 일이었기 때문에 가족들이 힘을 모아 해결책을 내어놓는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만은 아니었습니다.

말씀을 나누며

1. 하나님을 믿고 맡긴 결단에는 후회가 없다.

7년 기근이 2년밖에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야곱의 집에는 애급에서 가져온 양식마저 떨어져 가고 있었습니다. 이 같은 상황은 야곱의 아들들이 다시 애급으로 식량을 구하러 가지 않을 수 없게 만들고, 베냐민을 데리고 가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시므온이 볼모로 붙잡혀 있고, 양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했기 때문에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야곱으로서도 모든 결과를 하나님께 맡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족회의 때 유다가 설득에 나셨고, 간곡하게 야곱의 결단을 촉구하였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약속과 신실함을 믿고,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라고 말하며 아들들의 애급 행을 허락하였습니다. 이로써 불평과 원망으로 분열양상을 띄웠던 집안에 일단 화해와 일치가 이뤄지게 되었습니다. 심각하게 어려운 문제가 있더라도 구성원 모두가 하나님의 약속과 신실함을 믿고 나가면 하나가 될 수 있고,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더욱 발전하여 갈 수 있습니다(행 9:31). 하나님을 믿고 내린 결단에는 후회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을 믿고 맡긴 결단에는 변화가 따른다.

2-14절을 보면, “다시 가서 우리를 위하여 양식을 조금 사라”와 “그 돈을 다시 가지고 가라” 및 “네 아우도 데리고 떠나 다시 그 사람에게로 가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들 말씀들은 야곱이 지나치게 집착했던 것들, 욕망과 재물과 베냐민까지 내려놓고, 자신의 운명을 하나님의 손에 맡긴 결단을 보여줍니다. 야곱은 자기 방식대로 살던 것에서 떠나 하나님의 약속과 신실함을 믿고 결단을 내린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야곱의 이전 성품을 생각할 때 크게 진전된 변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삶에는 이런 변화된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3. 하나님을 믿고 맡긴 결단에는 복이 따랐다.

16-17절은 긴 여행 끝에 다시금 요셉의 집에 다다른 형제들이 청지기의 인도를 받아 집안으로 안내되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18-22절은 뜻밖의 환대에 당황한 형제들이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지난날 자루 속에 든 돈 사건에 대하여 변명하는 장면입니다. 23-25절은 청지기가 형제들을 안심시키며 식사준비를 하는 장면입니다. 26-34절은 야곱의 열두 아들들이 실로 22년 만에 한자리에 다 모인 장면입니다. 그중 26-28절은 형들을 대면한 요셉이 다시금 아버지 야곱의 안부를 묻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29-30절은 동생 베냐민을 본 요셉이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급히 안방에 들어가 울고 나오는 장면입니다. 마지막으로 31-34절은 요셉이 형제들을 그 나이순대로 앉힌 후 함께 식사를 하는 장면입니다. 이 모든 것은 야곱이 하나님을 믿고 맡긴 결단에서 얻어진 복이었습니다.

말씀을 마치며

요셉의 형제들은 생각하지 못한 환대에도 불구하고 불안감을 감출 수 없었고 긴장의 끈을 풀 수가 없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자기들의 형제인 요셉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요셉을 노예로 팔았기 때문에 그 자리에 요셉이 앉아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늘 우리와 함께 하시고 환대해 주시지만, 정작 우리는 늘 불안한 삶을 살면서 긴장의 끈을 풀지 못합니다. 우리는 늘 죄로 인해서 마음의 눈이 감겨져 있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하나님이 마련하신 구원의 은총을 믿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님으로 믿고 회개하고 신앙고백하고 침례를 받아 구원에 이른다면, 후일 재림하셔서 요셉의 경우처럼 천국잔치를 배설하고 정체를 드러내실 때, 우리 성도들은 기쁨으로 그분을 맞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다시 말씀 읽기

1. 22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형제들이 요셉을 알아보지 못한 이유를 말해봅시다.
2. 하나님을 믿고 맡김으로써 경험했던 은혜들을 함께 나눠봅시다.
3. 하나님을 믿고 맡기는 것과 이성적인 판단과는 어떻게 다른지 의견을 나눠봅시다.

 

제9과 요셉의 마음을 감동시킨 유다

오늘의 말씀: 창세기 44장 1-34절
찬송: 272장(통 330장), 273장(통 331장)
간직할 말씀: “이제 주의 종으로 그 아이를 대신하여 머물러 있어 내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그 아이는 그의 형제들과 함께 올려 보내소서”(창 44:33).
주제: 진심이 담긴 말은 힘이 있다.

말씀 앞에서

본문은 애급의 총리 요셉이 친동생 베냐민을 데려오라는 요구(42:20)를 들어준 형들에게 형제간의 우애를 시험하기 위하여 은잔시험을 실시하는 단락입니다. 그중 1-3절은 시험 준비를 끝낸 요셉이 형제들에게 귀가를 허용하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4-9절은 요셉이 청지기를 보내 형제들을 뒤따라 잡은 후 없어진 은잔을 찾겠다고 추궁하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10-13절은 베냐민의 자루에서 없어졌다던 은잔이 발견되고, 형제들이 방성대곡하며 요셉의 집으로 끌러오는 장면입니다. 아마 집으로 향하는 요셉 형제들의 2차 귀향은 시므온이 볼모로 잡혀 침울했던 1차 때와는 달리 모든 형제들이 함께 되돌아간다는 사실에 안도의 기쁨이 있었을 것입니다(42:24-25). 그러나 그것도 잠시 베냐민의 자루에서 애급 총리의 은잔이 나옴으로써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14-34절로써 요셉의 마음을 감동시킨 유다의 변론입니다.

말씀을 나누며

1. 진심이 담긴 말이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진심이 담긴 말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학자들은 유다의 변론을 구약성서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사라고 극찬합니다. 유다가 행한 변론의 힘은 진실성에서 나왔습니다. 만일 그가 거짓을 말했거나 임기웅변의 방법을 취했더라면, 요셉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유다가 행한 변론은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첫째는 16-26절로써 자신이 현재 상황에까지 이르게 된 과정을 상술하는 부분이고, 둘째는 27-34절까지로써 베냐민을 노예로 삼지 말고, 자신을 노예로 삼아 달라고 간청하는 부분입니다. 이 유다의 자기희생적 탄원이 요셉의 마음을 크게 감동시켰고, 그로써 형제들은 요셉의 테스트를 모두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2. 진실한 참회가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진실한 참회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유다의 변론은 히브리 문학에서 손꼽히는 걸작 중의 하나로, 아우 베냐민을 위한 눈물겨운 호소가 그 핵심이지만 그에 앞서 등장하는 유다의 진실한 참회를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요셉은 형들의 진실한 회개와 형제우애를 확인하기 위해서 은잔시험을 실행에 옮겼던 것입니다. 형들이 지난날의 과거를 진정으로 뉘우치고 있는지, 그 여부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 베냐민의 곡식자루 속에 은잔을 숨기고 그에게 도둑의 누명을 씌웠던 것입니다. 진실한 참회는 사람의 마음만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진실로 진실한 참회는 하나님의 마음도 움직일 수 있습니다.

3. 진실한 사랑이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진실한 사랑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유다의 애틋한 효성과 희생적인 형제애가 요셉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유다는 늙은 아버지 야곱의 사랑을 받는 베냐민에 대해서 ‘아우,’ ‘노년에 얻은 아들 소년,’ ‘그,’ ‘말째 아우,’ ‘아이’ 등 22번의 다양한 호칭으로 부릅니다. 이것은 베냐민이 늙은 아버지와 그 형제들에게 있어 절대적인 애정의 대상이며, 가족의 강한 연대감으로 절대 분리될 수 없는 존재임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그 결속의 확고함을 30절에서 “아비의 생명과 아이의 생명이 서로 결탁되었거늘”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베냐민만을 은잔 도둑의 죄인으로 애급에 남겨 둔다는 것은 형제들, 특히 베냐민의 안전 귀가를 손꼽아 기다리는 가나안에 남겨진 연로한 아버지에게는 살인 행위와 다를 바 없으며, 더 나아가 동생의 안전 귀가를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책임지겠다고 선언한 유다 또한 아버지 앞에 거짓말쟁이요, 죄인이 된다는 것을 유다는 애급의 총리인 요셉에게 간곡히 설명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유다의 모습에서 그리스도의 희생을, 신실하고 진실한 성도의 숨결을, 순교의 길을 걸었던 선배들의 믿음을, 복음의 횃불을 들고 타국에서 봉사하는 선교사들의 헌신을 엿볼 수 있습니다. 유다의 희생적 사랑은 물질주의와 극단적 이기주의와 개인주의로 점철되어 자기희생과 사랑을 잃어 가는 사회에 특히 어두움에 빛을 비추고 죽음에 생명을 불어넣어야할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메시지라 생각되어집니다.

말씀을 마치며

진실만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진실한 참회만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애틋한 효성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희생적인 형제애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만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도 움직일 수 있습니다. 유다가 변론에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힘이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얻고 산다는 것, 형제자매와 성도들과 이웃들로부터 마음을 얻고 산다는 것은 즐거움이고, 기쁨입니다. 이런 큰 축복이 성도님들에게 있기를 축원합니다.

다시 말씀 읽기

1. 진심이 담긴 말이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지 토의해봅시다.
2. 진실한 참회가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지 토의해봅시다.
3. 진실한 사랑이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지 토의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