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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9-07-31 18:32
유대교인들의 하나님과 이름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2,513  

유대교인들의 하나님과 이름

번역과 주: 조동호 목사(그리스도의 교회 연구소)
출저: http://www.jewfaq.org/613.htm
http://www.jewfaq.org/beliefs.htm
http://www.jewfaq.org/name.htm

들어가는 말

유대인들은 토라(모세오경)에 613개의 계명들이 있다고 믿지만, 오늘날에는 예루살렘 성전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성전과 성전제사들과 예배들에 관한 계명들은 지키지 않는다. 범법 절차들에 관한 계명들도 지키지 않는데, 그 이유는 아직 메시아가 오시지 않았고, 그가 오셔서 세울 신정국가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주: 1948년 5월 14일 팔레스타인에 건국된 이스라엘 나라는 세속국가이며, 신정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 신정국가가 되는 때는 메시아가 오시고, 예루살렘 성전과 성전제사와 성전예배가 재건되며, 세계가 유대교를 국교로 삼고 이스라엘 국가의 통제아래 놓이는 때를 말한다. 이런 주장은 이미 메시아가 오셨고, 그 분이 세운 그리스도의 교회가 하나님의 신정국가란 사실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유대교인들이 하나님에 관해서 가르치는 내용은 열 가지 정도 된다.

1.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 것(출 20:2; 신 5:6)
2. 하나님이외의 신이 존재한다거나 그 신이 영원하다는 개념을 수용하지 말 것(출 20:3)
3. 신성모독하지 말 것(출 22:28). 이를 어긴 자에게는 사형에 처함(레 24:16)
4.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길 것(레 22:32)
5.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말 것(레 22:32)
6. 하나님이 한 분이신 것과 완전한 일체이신 것을 알 것(신 6:4)
7. 하나님을 사랑할 것(신 6:5)
8. 하나님을 경외할 것(신 6:13, 10:20)
9.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 것(신 6:16)
10. 하나님의 선하시고 올곧은 방법들을 본받을 것(신 28:9, 비교 엡 5:1)

유대인들은 무엇을 믿는가?

이 질문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것이다. 유대교에는 유대인이 되기 위해서 갖춰야할 어떤 교리(dogma)도 공식적인 신앙고백서도 없다. 유대교에 믿음의 내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유대교는 신앙보다는 실천적 행동을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가장 널리 수용된 유대교 신앙에는 람밤(Rambam)이 <주: 중세의 유대교 랍비, Moshe ben Maimon 혹은 Maimonides라 불린다.> 정리한 13개 믿음의 원칙들이 있다. 람밤은 이 13개 믿음의 원칙들이 유대교 신앙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이라고 생각하였다.

1. 하나님은 존재하신다.
2. 하나님은 한분이시고 유일하시다.
3. 하나님은 육체가 없으시다.
4. 하나님은 영원하시다.
5. 기도는 오직 하나님께 직통으로 연결되고 다른 누구에게도 연결되지 않는다. <
주: 기독교의 성자 그리스도와 성령 하나님을 부인하는 내용이다. 여호와증인들의 주장이 바로 이 유대교인들의 주장과 같은 단독신론이다. 기독교가 초대교회 때로부터 지금까지 앓고 있는 병들 가운데 한 가지가 바로 유대교적 기독교이다. 여기에는 여호와증인들과 재림론자들인 제칠안식일 교인들,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는 유대인 기독교인들 뿐 아니라, 성직을 사제직으로 착각하는 권위주의자들, 남성우월주의자들, 신약성서보다는 구약성서에 더 집착하고 가르치는 자들도 여기에 포함된다.>
6. 예언자들의 말씀은 진실하다.
7. 모세의 예언들은 진실하다. 모세는 예언자들 가운데 가장 위대하였다.
8. 성문 토라(모세오경)와 구전 토라(현재 탈무드와 기타 문서들에 포함된 가르침들)가 모세에게 주어졌다. <
주: 기독교가 유대교나 가톨릭교회와 다른 점은 구전과 외경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이뿐 아니라, 신약성서에 그 기초를 두는데 있다.>
9. 이밖에 다른 토라는 없다.
10. 하나님은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아신다.
11. 하나님은 선한 사람들을 보상하시고, 악한 사람들을 벌하실 것이다.
12. 메시아는 오실 것이다. <
주: 2천 년 전에 이미 오신 메시아를 정면으로 부정한다.>
13. 죽은 자들이 부활할 것이다.

보다시피 이것들은 매우 기본적이고 일반적인 원칙들이다. 한편, 이들 원칙들이 기본적인만큼, 이것들 하나하나를 믿어야하는가를 놓고 종종 논란이 있어왔다. 유대교의 진보주의자들은 이 원칙들 가운데 다수를 놓고 논쟁을 벌였다.

다른 많은 종교들과는 달리, 유대교는 추상적인 우주론적인 개념들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신(神)의 존재(存在)에 대한 증명(證明)은 매우 많다. <주: 신 존재 증명에 대한 몇 가지 내용들: 1)자연신학적 증명 - 이 세계가 아름답고 또한 합리적이며 완전한 질서를 지니고 있는 이상, 이 세계를 창조했던 현명한 신이 존재해야만 한다. 2)우주론적 증명 - 자연계의 인과관계(因果關係)를 거쳐 계속하여 원인을 규명해 나간다면, 최초의 제1원인으로써의 신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3)존재론적(본체론적) 증명 - 인간은 불완전하고 상호간에 관련이 있으므로 완전무결하다고 생각되는 것, 즉 신이 존재해야만 한다. 4)목적론적 증명 - 자연이 어디까지나 목적에 적응한 질서를 지니고 있는 이상, 자연 전체의 설계자로서의 신이 존재해야만 한다. 5)도덕적 증명 - 우리에게 그 실행을 강력히 요구하는 도덕 법칙의 원천으로써 신을 생각할 수 있다. 이런 증명들(일반계시들)을 통해서 얻어진 신이나 유대교의 하나님은, 칼 바르트에 의하면, 기독교의 하나님이 아니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계시된 인간을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하나님이시다.> 중요한 내용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비록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속성과 인간과 우주와 삶과 사후(死後)에 대해서 전반적이고 분명한 사고를 해왔지만, 위에서 언급한 매우 일반적인 개념들 말고는 이들 주제들에 대해서 명령되어진, 공식적이고 결정적인 신앙은 없다. 이들 문제들 전반에 대해서 사적인 의견을 개진할 실질적인 여지가 있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유대교는 믿음의 교리보다는 실천적 행동에 더 관심을 갖기 때문이다.

유대교는 관계들(relationships), 즉 하나님과 인류의 관계, 하나님과 유대민족의 관계, 유대민족과 이스라엘 땅의 관계, 그리고 인류와 인류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성서는 이들 관계들의 발전, 즉 창조로부터 시작해서 하나님과 아브라함과의 관계형성을 거쳐 하나님과 유대민족의 관계형성과 그 이후의 관계들에 대해서 전한다. 또한 성서는 이들 관계들에 의해서 형성된 상호 의무들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유대교 내의 다양한 운동들은 이들 의무들의 성격에 관해서 의견을 달리하고 있다. 정통주의자(Orthodox)들은 그것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절대적이고 불변하는 율법들이라고 말한다. 보수주의자(Conservative)들은 그것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시대에 따라서 변하고 진화하는 율법들이라고 말한다. 개혁주의자(Reconstructionist, Reform)들은 그것들이 우리가 따라야할지 말지를 선택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들이라고 말한다.

그러면 유대교가 그토록 관심을 쏟는 이들 실천적 행동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정통주의 유대교에 따르면, 이들 실천적 행동들에는 랍비들에 의해서 제정된 율법들<주: 울타리법인 게자이라>과 오랜 관행들, 그리고 토라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613개 계명들이 있다.

<주: 초월적이고 인간의 영역밖에 계신 타자로서의 하나님을 인간 세계에 끌어들여 자기 조상들의 하나님으로, 자기 민족과 깊은 관계, 마치 남녀가 만나 사랑을 키운 후에 결혼서약을 통해서 부부가 되는 것처럼, 하나님을 자기 민족과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 자기 민족에게 가나안 땅을 약속하신 하나님, 떠돌이와 노예로부터 구원을 주신 하나님으로 삼았던 사람들이 히브리 민족이다. 그 후로부터 하나님은 남이 아니라, 멀리 계셔서 손에 닿지 않는 분이 아니라, 바로 자기 민족 가운데 계신 분으로 믿었다. 기독교는 여기서 이스라엘 민족의 경계를 뛰어넘어서 온 인류 가운데 계시고, 인류의 역사를 이끌고 가시면서 섭리하시고 경륜하실 뿐 아니라,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내려 오셔서 인간들의 죄를 대신해서 친히 십자가에 못 박히셨던 하나님을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이스라엘의 민족신(神)으로 묶었던 하나님이 기독교를 통해서 온 인류에게 사랑을 쏟아 부으신 은총의 하나님으로 선포되셨다.>

하나님의 이름들의 중요성

유대인의 생각에서 이름은 제멋대로 붙인 호칭이나 소리 나는 대로 마구잡이로 조합한 것이 아니다. 이름은 이름이 붙여진 것의 성격과 본질을 지닌다. 이름이 붙여진 것의 역사와 명성을 나타낸다.

이것은 혹시 첫눈에 갖게 됐을지도 모를 인상만큼 이상하거나 생소한 것이 아니다. 영어권에서 “좋은 이름”은 호평을 종종 누린다. 회사를 팔 때, 팔릴 수 있는 한 가지 조건은 “좋은 뜻” 즉 회사의 이름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이다. 이름에 대한 히브리 개념은 이들 개념들과 매우 유사하다.

이 용도의 사례가 출애굽기 3장 13-22절에 잘 드러나 있다. 모세가 하나님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모세는 “무엇이라 부를까요?”라고 묻고 있지 않다. 오히려 “누구십니까? 무엇을 하시는 분입니까? 무슨 일을 해오셨습니까?”라고 묻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대답에서 분명해진다. 하나님은 당신이 영원하시고, 조상들의 하나님이시며, 그들의 고통을 지켜보셨고, 그들을 억압에서 구원하셨다고 대답하신다.

또 다른 이 용도의 사례는 ‘킬룰 하셈’(chillul Ha-Shem)과 ‘키두쉬 하셈’(kiddush Ha-Shem)의 개념들이다. 하나님이나 유대교를 불경에 빠뜨리는 행동 혹은 계명에 불순종하게 하는 행동은 종종 ‘킬룰 하셈’(chillul Ha-Shem) 즉 ‘그 이름의 모독’으로 종종 불린다. 분명코 우리는 한 단어에 가해진 해악에 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명성에 가해진 해악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나 유대교에 합하는 존경심을 불러일으키는 어떤 행동은 ‘키두쉬 하셈’(kiddush Ha-Shem) 즉 ‘그 이름의 거룩함’이라 불린다.

이름은 이름 붙어진 것의 명성을 나타내기 때문에 이름은 그것의 명성과 동일한 존경으로 취급되어야 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들은, 그 것들의 모든 형태들에서, 유대교에서 엄청난 존경과 공경하는 마음으로 취급되어진다.

하나님의 이름들

하나님과 고대 이방신들과 비교해서 유대-기독교 하나님은 “이름이 없는 하나님”으로 사람들이 종종 말하는 것을 듣는다. 그러나 유대교는 하나님의 이름의 존재를 분명하게 인식할 뿐 아니라, 실제로 하나님의 이름들을 많이 갖고 있기 때문에 이 점을 이상스럽게 여기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의 이름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히브리어 알파벳 네 자로(YHWH) <주: ‘야훼’ 혹은 ‘야웨’로 발음 함> 된 이름이다. 이 이름은 종종 ‘입에 담아서는 안 될 이름’(Ineffable Name), ‘발음할 수 없는 이름’(Unutterable Name) 혹은 ‘특출한 이름’(Distinctive Name)이라고 말들 한다. 언어학적으로 그것은 히브리의 어근 ‘존재하다’(to be, Hei-Yod-Hei)와 관련이 있고, 하나님의 존재가 영원하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성서에서 이 이름은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를 논할 때, 하나님의 자애하심과 자비하심의 성품들을 강조할 때 사용된다. 이 넉자 이름은 종종 ‘야’(Yah, Yod-Hei), ‘야후’(Yahu) 혹은 ‘예호’(Yeho, Yod-Hei-Vav)로 줄여서 쓰이며, 특히 합성어나 합성 이름들을 만들 때 쓰인다. 예를 들면, ‘여호수아’(Yehoshua, 주는 나의 구원이시다.), ‘엘리야’(Eliyahu, 나의 하나님은 주님이시다), ‘할렐루야’(Halleluyah, 주님을 찬양하라)가 있다.

성서에 쓰인 하나님에 대한 최초의 이름은 ‘엘로힘’(Elohim)이다. 엘로힘은 남성 복수이며, 여성 단수인 경우는 ‘엘로하’(Eloha)라 부른다. 같은 어휘(혹은 람밤에 따르면 동음이의어)가 왕자들, 재판관들, 다른 신들, 다른 능력 있는 존재들을 말할 때 쓰인다. 이 이름은 성서에서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창조능력, 정의와 통치권의 속성들을 강조할 때 쓰인다. 이 이름의 다른 형태들에는 ‘엘’(El), ‘엘로하’(Eloha), ‘엘로하이’(Elohai, 나의 하나님) 그리고 ‘엘로하이누’(Elohaynu, 우리의 하나님)가 있다.

또 하나님은 ‘엘샤다이’(El Shaddai)로 불린다. 이 이름은 보통 ‘전능의 하나님’으로 번역된다. 그러나 ‘샤다이’(Shaddai)의 어원은 알려져 있지 않다. 일부 견해들에 따르면, ‘혜택을 쌓아올리다’는 뜻을 가진 어근에서 유래되었다 한다. 미드라쉬(Midrash)에 의하면, 그것은 ‘다이라고 말한 자’(‘dai’는 ‘충분한,’ ‘넉넉한’ 이란 뜻)를 의미한다. 따라서 하나님은 우주를 만드셨고, 그분이 ”다이“(DAI)라고 말씀하셨을 때까지 팽창된 사실에서 기인한다(최초의 기록된 우주 팽창론이 아닐른지?). ‘샤다이’란 이름은 메주자(집 문설주에 매달아 두고, 출입 때마다 세 번씩 입을 맞추는 작은 칼집모양의 쉐마 성구들이 담긴 상자) 두루마리에 기록된 것이다. 일부는 ‘샤다이’가 ‘이스라엘의 문들의 관리자’를 뜻하는 ‘쇼메르 달토트 이스라엘’(Shomer Daltot Yisrael)의 첫 글자들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또 하나의 중요한 이름은 ‘야훼 쯔바오트’(YHWH Tzva'ot)이다. 이 이름은 일반적으로 ‘군대들의 주님’으로 번역된다. ‘쯔바오트’(Tzva'ot)는 군대의 단체 혹은 조직화된 배열이란 의미에서 ‘군대들’을 의미한다. 그 이름은 하나님의 지도력과 주권을 말한다. 흥미롭게도 이 이름은 성서에서 거의 쓰이지 않는다. 토라 즉 모세오경에서는 한 번도 쓰이지 않았다. 그것은 우선 시편에 여러 번 쓰였고, 이사야, 예레미야, 학개, 스가랴, 말라기와 같은 예언서들에서 쓰이고 있다.

하나님의 이름 쓰기

유대인들은 어떤 하나님의 이름도 무심코 쓰지 않는다. 이 관행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계명에서 기원되지 않는다. 유대인들의 생각에서 그 계명은 오직 맹세하는 것을 말하며,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는 거짓 맹세 혹은 경박한 맹세를 금하는 것이다. (‘망령되게’로 번역된 단어의 문자적인 의미는 거짓말을 뜻한다.)

유대교는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이름 쓰는 것을 금하지 않는다. 오직 하나님의 이름을 지우거나 손상시키는 것을 금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법을 지키는 유대인들은 무심코 하나님의 이름 쓰는 것을 피한다. 왜냐하면, 쓰인 이름이 후에 사고나 잘 모르는 사람에 의해서 손상되거나 지워지거나 망가지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지우거나 손상시키지 말라는 계명은 신명기 12장 3-4절에 근거한다. 그 구절들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을 취하게 될 때, 그 지역의 우상 신들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파괴시킬 것과 그 지역의 신들의 이름들을 철저히 제거할 것을 명령받는다. 이 구절들로부터 랍비들은 어떤 거룩한 것을 파괴시켜서는 안 되며, 하나님의 이름을 지우거나 손상시켜서는 안 된다는 명령을 받는다고 유추하였다.

하나님의 이름을 지우거나 손상시키는 것을 금하는 이것은 어떤 항구적인 형태로 쓰인 이름들에만 적용된다는 것을 주목할 가치가 있다. 따라서 최근 랍비들의 결정들에 의하면, 컴퓨터에 쓰는 것은 항구적인 형태가 아니며, 컴퓨터에 하나님의 이름을 타이핑하거나 백스페이스키로 지우거나 자르거나 붙이거나 혹은 하나님의 이름이 들어 있는 파일들을 복사하거나 지우는 것은 위법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문서를 프린트하면, 그것은 항구적인 형태가 된다. 이것이 이 법을 지키는 유대인들이 웹사이트에서나 뉴스그룹 메시지들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쓰는 것을 회피하는 이유이다. 누군가 다른 사람이 그것을 프린트하여 손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주: 유대인들의 문제점은 항상 계명들이나 그 계명들을 잘 지키는 데 있지 않고, 그들 계명들에 랍비들이 둘러친 두꺼운 울타리 법들에 있다. 계명들에 대한 지나친 유추도 문제지만, 그들이 결정한 유추의 결과물들을 가지고 도구마로 삼고 철옹성으로 만든데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

보통은 문자나 음절들을 대용하는 방법으로 하나님의 이름 쓰는 것을 피한다. 예를 들면, ‘하나님’(God) 대신에 ‘하-님’(G-d)이라고 쓴다. 게다가 숫자 15는 10과 5를 뜻하는 알파벳이 하나님을 뜻하는 ‘야’(Yah, Yod-Hei)이기 때문에 쓰지 않고 보통은 9와 6(Teit-Vav)을 대신해서 사용한다.

하나님의 이름 발음하기

토라에서는 어떤 것도 사람이 하나님의 이름을 발음하는 것을 금하지 않는다. 실제로 하나님의 이름은 일상적으로 발음되었다는 것을 성서가 증명하고 있다. 히브리어의 많은 보통 이름들은 하나님의 넉자 이름의 일부분인 ‘야’(Yah)와 ‘야후’(Yahu)를 포함한다. 그 이름은 매일 드리는 예배의 일부로써 성전에서 발음되었다.

미쉬나(Mishnah)도 고대에 그 이름을 발음하지 못하도록 금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증한다. 실제로 미쉬나는 동료 유대인에게 일상의 인사로써 하나님을 사용할 것을 권한다(Berakhot 9:5). 그러나 탈무드(Talmud) <주: 주후 5세기> 시절에는 하나님의 이름을 대용할 이름들을 사용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어떤 랍비들은 하나님을 대신하는 이름들을 쓰지 않고, 넉자 이름(YHWH)을 발음하는 사람은 ‘다가올 세상’(World to Come)에 들어갈 수 없고, 반드시 처형돼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넉자를 발음하는 대신에 유대인들은 항상 ‘아도나이’(Adonai, 주님)를 대신 사용하거나 그냥 ‘하셈’(Ha-Shem, 그 이름)이라고 말한다.

비록 발음 금지가 넉자 이름에만 적용되지만, 유대인들은 기도와 연구를 제외한 하나님의 많은 이름들 가운데 그 어떤 것도 관행적으로 발음하지 않는다. 일상적인 관행은 문자나 음절을 대용한다. 따라서 ‘아도나이’(Adonai)는 ‘아도쉠’(Adoshem) 또는 ‘하쉠’(Ha-Shem), ‘엘로하이누’(Elohaynu)가 되고, ‘엘로힘’(Elohim)은 ‘엘로카이누’(Elokaynu)와 ‘엘로킴’(Elokim) 등이 된다.

성전이 파괴된 이후와 성전 밖에서 발음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그 이름의 발음은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학자들은 수 세대들에 걸쳐 넉자 이름(YHWH)의 정확한 발음과 관련 지식을 전달하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정확한 발음은 상실되었고, 더 이상 정확한 발음을 확신할 수 없게 되었다. 우리는 어떤 모음들이 사용되었는지를 모른다. 심지어는 넉자 이름 가운데 세 번째 글자인 ‘와우’(W)가 모음인지 자음인지조차도 모른다. 일부 종교학자들은 그 이름이 ‘야훼’(Yahweh)로 발음되었다고 제시하였으나 다른 사람들은 이 발음에서 특별한 설득력을 얻지 못한다.

어떤 사람들은 넉자 이름을 ‘여호와’(Jehovah)로 제시하지만, 이 발음은 더더욱 아닌 게 분명하다. ‘여호와’란 말은 고대 유대문서들에서 넉자 이름(YHWH)을 사람들이 발음하지 않도록 기억나게 하기 위해서 넉자 이름(YHWH)의 자음 아래에 ‘아도나이’의 모음을 사용하곤 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16세기 독일 기독교인 서기관이 교황을 위해서 성서를 라틴어로 음역하면서 그의 책에 쓰인 대로 넉자 이름(YHWH)의 자음들에 아도나이의 모음들을 조합하여 그 이름(Jehovah)을 사용하였다. 여기서 ‘에호와’(JeHoVaH)란 단어가 만들어졌으며, 그 후 부동의 이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