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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6-04-21 06:45
유대인들의 기도와 축복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4,267  
   http://www.jewfaq.org/prayer.htm [792]
   http://www.jewfaq.org/prayer.htm [428]
기도와 축복
Prayers and Blessings


번역: 조동호 목사
출저: http://www.jewfaq.org/prayer.htm

테필라(Tefilah): 기도
기도에 대한 히브리어는 ‘테필라’(tefilah)이다. 이 말은 페-라메드-라메드(Pe-Lamed- Lamed)란 어근과 르히트팔렐(l'hitpalel)이란 말에서 유래되는데, 자신을 판단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예기치 못한 말의 기원은 유대인이 하는 기도의 목적을 파악할 통찰력을 제공한다. 유대인의 어떤 기도이든, 그것이 간구이든, 감사이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든, 혹은 고백이든 가장 중요한 부분은 그것이 제공하는 내관(內觀), 곧 세상 속에서의 우리들의 역할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라보면서 우리들 자신의 안을 들여다보는데 소요되는 순간이다.
‘기도’를 의미하는 이디쉬(Yiddish, 독일어에 헤브루어와 슬라브어가 혼화한 것으로, 헤브루 문자로 씀. 중부동부 유럽 및 미국으로 이민한 유태인이 사용함.)란 말은 ‘다벤’(daven)이다. 영어단어, ‘신성’(divine)과 같은 라틴어 어근에서 나온다. 그리고 기도가 바쳐지는 분을 강조한다.
토라를 준수하는 유대인들에게 기도는 단지 회당예배 때에 일주일에 한 번씩 혹은 하루에 세 번씩 하는 무엇인가일 뿐 아니라, 기도는 매일의 필수적인 부분이다. 실제로 유대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기도들 가운데 하나인 ‘비르캍 하-마존’(Birkat Ha-Mazon)은 회당에서 결코 낭송되지 않는다.
토라를 준수하는 유대인들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생각하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가 끊임없이 그분께 기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 갖는 우리의 첫 생각은, 심지어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나기 전이라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혼들을 되돌려 주신 것에 대한 감사기도이다. 먹기와 새 옷 입기와 같은 어떤 물질적 즐거움을 누리기에 앞서 낭송할 기도들, 손 씻기나 촛불 켜기와 같은 어떤 계명을 준수하기에 앞서 낭송할 기도들, 왕과 무지개 또는 대재난장소와 같은 무언가 특이한 일들을 보게 될 때 낭송할 기도들,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이 발생했을 때마다 낭송할 기도들, 밤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 낭송할 기도들이 있다. 이 모든 기도들은 공식적인 기도회들, 곧 매일 하루 세 번하는 기도들과 안식일과 축일 때마다 하는 기도들에 추가되는 기도들이다. 유대인 예식서를 보시오.
http://www.jewfaq.org/liturgy.htm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정규적이고 공식적인 기도의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기도하고픈 영감을 느낄 때, 기도가 내게 의미가 있을 때, 나는 기도한다.”고 그들은 말한다. 이런 태도는 두 가지 중요한 것들, 곧 기도의 목적과 실천을 위한 필요성을 간과한다.
기도의 한 가지 목적은 당신의 삶에서의 하나님에 대한 당신의 자각과 하나님이 당신의 삶에서 하시는 역할을 증대시키는 것이다. 만일 당신이 영감을 느낄 때, 곧 당신이 이미 하나님에 대해서 자각하고 있을 때만 기도한다면, 그러면 당신은 하나님께 대한 당신의 자각을 증대시키지 못할 것입니다.
게다가 만일 당신이 무엇인가를 잘 하기를 원한다면, 심지어 당신이 그것을 하고 싶지 않을 때에도, 당신은 그것을 지속해서 연습을 해야 한다. 이것은 운동하고, 악기를 연주하고, 글을 쓰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도에 있어서도 사실이다. 적절한 기도의 본질인 겸허함과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은 현대인에게 쉽게 찾아오지 않고, 당신이 기도할 필요를 느낄 때, 단순히 당신에게 오지 않는다. 만일 당신이 영감이 떠오를 때까지 기다린다면, 당신은 당신이 효과적으로 기도하는데 필요한 기술을 갖지 못할 것이다. 필자는 정규적으로 기도하는 것을 시작하기 전, 필자가 기도하기를 원했을 때, 필자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무엇을 말해야할지, 어떻게 그것을 말해야할지, 혹은 어떻게 적절한 마음의 틀을 짜야할지를 몰랐다. 만약 당신이 정규적으로 기도한다면, 기도 때 어떻게 당신 자신을 표현해야할지를 배우게 될 것이다.

카바나(Kavanah): 기도를 위한 마음의 준비
동일한 기도들을 매일 반복해서 말할 때, 기도들이 진부하게 되고, 의미를 상실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이런 우려가 일부 사람들에게서 사실로 드러나기도 하지만, 이것이 유대인의 기도가 갖는 의도는 아니다. 서두에서도 언급하였듯이 기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그것이 제공하는 내관(內觀)이다. 따라서 적절한 마음의 틀은 기도에 있어서 필수적이다.
기도를 위한 마음의 준비를 카바나(kavanah)라 한다. 카바나는 일반적으로 “집중” 혹은 “의도”란 말로 번역된다. 카바나의 최소 단계는 기도자가 하나님께 말하고 있다는 의식과 기도할 의무를 이행하려는 의도이다. 만약 당신이 카바나의 이 최소 단위를 갖지 않는다면, 당신은 기도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당신은 단지 기도문을 읽고 있을 뿐이다. 게다가 카바나는 다른 잡생각이 없는 마음을 지니는 것이고, 당신이 기도하고 있는 내용을 알고 이해하는 것이며, 기도의 의미에 대해서 숙고하는 것이다.
예식문의 멜로디들은 종종 적절한 마음의 준비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많은 기도들과 기도회들은 그것들과 관련된 전통적인 멜로디들을 갖는다. 이것들은 당신이 하고 있는 것에 집중력을 높이게 하고, 잡생각들을 떨쳐버릴 수 있게 한다.
필자는 또한 기도하는 동안 몸을 움직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전통적인 유대인들은 기도하는 동안 일상적으로 몸을 전후로 흔든다. 겉으로는 시편 35편 10절의 말씀, “나의 전 존재(내 모든 뼈)가 외치리라. `여호와여, 주와 같은 자가 누구입니까?‘”를 따르는 것처럼 보인다. 그 같은 움직임은 필수적인 것이 아니다. 다수의 사람들은 그 같은 움직임에 오히려 마음이 흩트려지는 것을 느낀다. 그러나 필자는 개인적으로 그것이 집중과 초점을 맞추는데 도움이 되는 것을 느낀다.

히브리어: 기도를 위한 언어
탈무드는 당신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가 무엇이든 그 언어로 기도하는 것이 허용된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유대주의에서는 히브리어로 기도하는 것의 중요성을 언제나 강조해왔다. 한 전통적인 하시딕(Chasidic) 설화는 히브리로 기도하고 싶었지만 히브리어를 몰랐던 한 유대인의 기도에 대해서 열정적으로 말하고 있다. 그 사람은 그가 아는 히브리어 알파벳만을 단지 낭송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그것을 랍비가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물을 때까지 반복해서 낭송하였다. 그 사람은 랍비에게 말했다. “거룩하신 분, 복 받으시는 그분이 내 마음 속에 있는 것을 아십니다. 내가 그분에게 알파벳문자들을 드리면, 그분은 그것들을 조합해서 단어들을 만드실 수 있습니다.” 심지어 더 진보적인 운동들에서조차도 히브리어 기도의 가치를 점증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필자의 할머니는 내게 말씀하기를 50년 전만해도 개혁주의 회당에서는 히브리어를 결코 들을 수 없었다고 하셨다. 오늘날 표준 개혁주의 기도서는 상당수의 히브리어 기도문을 싣고 있고, 표준 기도들의 상당수가 히브리어로 낭송되어지고 있으며, 일반적으로 영어번역과 함께 음역(音譯)되어져 있다. 필자는 몇몇 개혁주의 랍비들이 역시 일반적으로 영어번역과 해설을 싣고 있는 히브리어 토라를 읽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히브리어로 기도하는 설득력 있는 이유들이 많다. 그것이 히브리어를 배우려는 동기를 촉발시킨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잊힐 언어이다. 그것은 전 세계에 흩여진 유대인들을 연결할 고리를 제공한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언약이 체결된 언어이다. 등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에게는 히브리어로 기도할 가장 중요한 이유가 히브리어는 유대인사상의 언어라는 점이다.
히브리어를 포함한 모든 언어들은 그 언어가 가지는 문화와 종교를 함축하고 있다. 히브리어를 다른 언어로 번역할 때 유대인 개념들의 미묘한 차이들을 잃게 되고, 유대주의와는 거리가 먼 개념들이 추가된다. 오로지 히브리어를 통해서만이 유대인의 사상의 순수한 진수가 보존될 수 있고, 적절하게 이해되어질 수 있다. 예를 들면, 영어 단어, “계명”은 엄하고 무서운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과한 명령을 함축한다. 그러나 히브리어 단어, “미츠바”는 우리들에게 주어진 영예와 특권,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일부분으로써 우리가 수행해야할 책임과 우리가 열심히 이행하고자 하는 선한 행위를 뜻한다.
이것은 히브리어로 기도하는 것이 당신이 기도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이해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제안하는 것은 아니다. 만일 당신이 회당 안에 있고, 히브리어를 잘 모른다면, 번역을 눈으로 읽으면서 히브리어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만일 당신이 혼자서 기도나 축복을 낭송하고 있다면, 그것을 히브리어로 낭송하려는 시도를 하기에 앞서 번역문을 통해서 그것의 의미와 전반적인 개념을 파악해야 한다. 그러나 당신이 이번에는 히브리어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다할지라도 히브리어로 하는 기도를 듣고 그 기도를 경험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단체기도
대부분의 우리의 기도들은 “내게”란 말 대신에 “우리”란 제1칭 복수로 표현되어지고 모든 유대인을 위해서 낭송된다. 이런 형태의 기도는 서로를 위한 우리들의 책임과 상호 연결된 운명체임을 강조한다.
유대주의에서 기도는 크게 보면 개인 활동이기보다는 단체 활동이다. 혼자서 기도하는 것이 허용되고, 기도해야할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지만, 전반적으로는 그렇게 하라는 계명을 위반하지 않도록 단체로 기도하려는 노력을 힘써 기울여야한다.
온전한 형태의 기도회는 적어도 10명의 유대인 남성, 곧 기도들을 낭송하라는 계명을 이행할 의무가 있는 사람 적어도 10명의 정족수를 채우지 않고서는 행하여질 수 없다. 이 기도의 정족수는 민얀(minyan, ‘계수하다’ 또는 ‘수를 헤아리다’는 히브리어 어근에서 유래한 말)이란 말로 표현된다. 특정한 기도들과 종교적인 활동들은 민얀없이는 수행될 수 없다. 민얀에 대한 이 요구는 외딴 지역들에서 유대인 공동체를 함께 모이게 하는데 종종 도움을 주었다.

베라코트(berakhot): 축복들
베라카(berakhah, 축복)은 유대주의에서 매우 흔한 특별한 종류의 기도이다. 베라코트(berakhot)는 회당예배들의 한 부분으로써 또 매일 발생하는 매우 다양한 일들에 대한 반응 혹은 필요조건으로써 낭송되어진다. 베라코트는 알아보기가 쉽다. 그것들은 모두 다 바루크(barukh, 복 받으소서 혹은 찬양받으소서)란 말로 시작한다.
바루크와 베라카란 말들은 둘 다 ‘무릎’이란 의미의 히브리어 어근, 벹-레쉬-카프(Bet-Resh-Kaf)에서 유래하며, 무릎을 굽혀 절함으로써 존경을 표시하는 행위를 말한다. 옆에 만화그림을 참고하시오. 유대인 예식에서 이 제스처가 취해지는 곳이 여러 곳 있지만, 대부분은 베라카가 낭송되어질 때이다.
유대인 전통에 따르면, 사람은 매일 100개의 베라코트를 낭송해야 한다. 이것은 듣기보다는 어렵지 않다. 유대교를 믿는 모든 유대인들이 하는 것처럼 하루 세 번 쉐모네 에스레이를 반복하면 그것만으로도 57개의 베라코트를 낭송하게 된다. 그리고 베라코트가 요구되는 일상적인 일들이 수십 개가 있다.

누가 누구를 축복하는가?
영어를 쓰는 많은 사람들이 베라코트의 개념을 매우 혼란스럽게 생각한다. 그들에게 ‘축복’이란 말은 축복하는 사람이 그가 축복하는 사람에게 어떤 은혜를 베푸는 것이다. 예를 들면, 가톨릭 전통에서 고회성사에 참여하는 사람은 사제에게 자신을 축복해달라고 요청하는 말로써 시작한다. 그러나 베라카에서 축복을 말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말하는 것이다. 어떻게 피조물이 창조주에게 은혜를 베풀 수 있는가?
이 혼란은 크게는 번역의 어려움들에서 비롯된다. 히브리어 단어 ‘바루크’(barukh)는 우리가 하나님께 행하는 것을 기술하는 동사가 아니다. 그것은 모든 축복들의 원천으로써 하나님을 기술하는 형용사이다. 우리가 베라카를 낭송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축복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축복받으신 하나님이신가에 대한 놀라움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베라카의 내용
기본적으로 세 종류의 베라코트가 있다. 물질적인 쾌락을 즐기기 전에 낭송되는 것들(birkhot ha-na'ah), 미츠바(mitzvah, 계명)를 이행하기 전에 낭송되는 것들(birkhot ha-mitzvot), 특별한 때나 행사들 때에 낭송되는 것들(birkhot hoda'ah)이 있다.
먹고 마시고 새 옷을 입는 것과 같은 물질적인 쾌락을 즐기기 전에 낭송되는 베라코트는 우리가 쓰려고 하는 물질의 창조주로서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다. 빵을 위한 베라카는 “땅에서 빵을 생산하게 하신” 분으로서 하나님을 찬양한다. 새 옷을 입기위한 베라카는 “벌거벗은 자들에게 옷을 입히시는” 분으로서 하나님을 찬양한다. 이들 베라코트를 낭송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이 만물의 창조주이심과 먼저 그분의 승낙을 구함이 없이는 물질들을 사용할 어떤 권리도 없음을 인식하는 것이다. 베라카는 본질적으로 물질을 사용할 승낙을 구하는 것이다.
손을 씻거나 촛불을 켤 때와 같은 미츠바(계명)를 이행하기 전에 낭송되는 베라코트는 “그분의 계명들로 우리를 정결케 하시고, 우리들에게 명령하신” 분, 곧 우리가 행하려고 하는 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하도록 명령하신 분으로서 하나님을 찬양한다. 그 같은 축복의 낭송은 미츠바 이행의 본질적인 요소이다. 유대인의 전통에서 의무감을 가지고 미츠바를 이행하는 사람은 동일한 미츠바를 이행하고 싶기 때문에 이행하는 사람보다 더 칭찬할만한 일로써 생각되어진다. 베라카의 낭송은 우리가 의무감으로 신앙적인 의무를 이행하고 있다는 사실에 우리의 주의를 집중시킨다. 우리가 그 같은 베라코트를 성서의 계명들과 랍비들의 계명들 모두에 대해서 낭송한다는 것을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 랍비들의 계명들의 경우에 베라카는 “그분의 계명들로 우리를 정결케 하시고, 우리들에게 명령하는 랍비들에게 복종하도록 명령하신” 분, 곧 우리가 행하려고 하는 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하도록 명령하신 분으로써 이해되어질 수 있다. 할라카(Halakhah), 성서의 계명들과 랍비들의 계명들 사이의 차이를 설명하는 유대인 법을 참고하시오.
왕이나 무지개를 보거나 기쁜 소식이나 나쁜 소식을 들을 때와 같은 특별한 때나 행사들 때에 낭송되는 베라코트는 세상에서 발생되는 모든 선악의 궁극적인 원천으로 하나님을 인정한다. 그 같은 베라코트는 좋은 일들이든 혹은 우리들에게 나쁘게 드러나는 일이든 모두를 위해서 낭송된다. 우리가 어떤 나쁜 것을 보거나 들을 때, 나쁘게 드러나는 일들은 궁극적으로 의로운 이유 때문에, 심지어 우리가 한정된 이해 속에서 그 이유를 항상 알 수 없다할지라도, 궁극적으로 의로운 이유 때문에 일어난다는 사실을 이해하면서 우리는 ‘참된 재판관’으로서 하나님을 찬양한다.

베라카의 형태
오늘날 우리가 낭송하는 베라코트의 많은 수는 2500여 년 전에 에스라와 대 집회에 의해서 작성되었다. 그것들은 동일한 형태로 지속적으로 낭송되어진다.
모든 베라코트는 “바루크 아타 하쉠, 엘로카이누, 멜레크 하올람”(Barukh atah Ha-shem, Elokaynu, melekh ha-olam), 곧 “당신 주 우리 하나님, 우주의 왕이시여 복 받으시옵소서.”란 문구를 사용한다. 이것은 때때로 쉠 우말크트(shem u'malkut, 이름과 주권), 곧 왕으로서 하나님을 확언하는데 언급된다.
“당신”란 단어의 사용은 논의의 가치가 있다. 현대영어에서 많은 사람들은 “당신”란 단어를 의식적이고 정중한 말로 생각한다. 그러나 실은 그 반대인 것이 사실이다. 히브리어 아타(atah)와 마찬가지로 당신은 친구들이나 친척들에게 사용되는 의식을 탈피한 친근한 이인칭 대명사이다. 이 말은 하나님과의 가깝고 친근한 관계를 표현한다.
이 구절 직후 베라카는 갑자기 삼인칭으로 바뀐다. 예를 들면, 계명(mitzvah)을 이행하기 전에 낭송되는 것들(birkhot ha-mitzvot)에서 처음 두 구절들은 “당신 주 우리 하나님, 우주의 왕이시여 복 받으시옵소서. 그분의 계명들로 우리를 정결케 하시고, 우리들에게 명령하신....”으로 되어 있다. 이 문법적인 오류는 의도적이다. 히브리어에서 사람에게 말하는 동안 삼인칭 대명사의 사용은 극도의 존경과 경의(복종)를 표현하는 방법이다. 이 변화의 참뜻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까이 계신 동시에 또한 우리에게서 멀리 계신다는 사실, 곧 우리와 친근한 관계를 맺으시면서 또한 초월해 계신다는 사실을 표현하는 의도적으로 거슬리게 하는 방법이다. 이 역설이 하나님과 유대인의 관계의 심장에 있다.

비르카트 하마존(Birkat Ha-Mazon): 식사후 감사기도
유대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기도들의 하나이자 성서가 우리들에게 낭송하도록 명령한 몇 개 되지 않는 기도들 가운데 하나는 회당에서 결코 낭송되지 않는다. 그 기도가 비르카트 하마존(birkat ha-mazon), 곧 식사후 기도이다.
신명기 8장 10절에서 우리는 먹고 만족했을 때, 주 우리 하나님을 축복해야한다는 계명을 받는다. 이 계명은 매 식사 후 비르카트 하마존(음식의 축복)을 낭송함으로써 이행되어진다. 비르카트 하마존을 낭송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이디시(Yiddish) 말로 ‘축복하다’는 뜻의 말(bentsching)로써 언급된다. ‘축복하다’(bentsch)는 말이 어떤 베라카의 낭송에도 언급될 수 있지만, 그것은 거의 언제나 비르카트 하마존을 낭송하는 것을 언급할 때에 사용된다.
식사 후 감사기도는 식사 전에 낭송되는 음식에 대한 여러 가지 베라코트에 추가해서 낭송되어진다.
비르카트 하마존은 실제로 네 가지 축복들로 구성된다. 세 개는 에스라와 대 집회 때에 작성되었고, 네 번째 것은 성전파괴 후에 추가되었다. 이들 축복들은 다음과 같다.
비르카트 하잔(Birkat Hazan, 음식을 준비하기 위한 축복), 곧 세상에 음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비르카트 하 아렛츠(Birkat Ha-Aretz, 땅에 대한 축복), 곧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내시고, 언약을 맺으시며, 유산으로 이스라엘 땅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비르카트 예루살라임(Birkat Yerushalayim, 예루살렘에 대한 축복), 곧 예루살렘의 재건과 모쉬아크(메시아)의 도래를 위해서 기도한다.
비르카트 하토브 브하마이티브(Birkat Ha-Tov v'Ha-Maytiv, 선한 것과 선한 행동에 대한 축복)는 성전파괴이전부터 있었던 것인데 성전파괴 후에 기도문에 첨가되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역의 선하심, 곧 하나님은 선하시며 선을 행하신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들 네 가지 축복들 이외에 완전한 비르카트 하마존은 몇 개의 시편들과 축일과 방문객이 있을 때와 같은 여러 가지 특별한 일이 있을 때를 위한 추가 축복들과 함께 낭송된다.
만약 비르카트 하마존을 들어보기를 원한다면, 리얼플레이어를 통해서 낭송자 핀카스 라비노비크스(Cantor Pinchas Rabinovicz)의 음성으로 홈페이지 http://613.org에서 들을 수 있다. http://613.org는 인터넷 상에서 유대인의 토라 오디오를 만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홈페이지이다. 단 녹음은 아쉬케나지(Ashkenazic)의 발음으로 되어 있다.

민얀(기도 그룹) 찾기
위에서 언급했듯이 유대인의 기도는 보통 민얀(minyan)이라 불리는 10명의 정족수를 채워야 이뤄지는 그룹 활동이다. 만약 주변지역에서 함께 기도할 정통주의 민얀을 찾고 싶다면, 검색이 가능한 정통주의 민얀들의 전 세계 데이터베이스를 갖춘 다벤(Daven)을 찾아보기 바란다. 그들에게 기도(daven)하기를 원하는 지역을 말하기만 하면, 그들은 정통주의 민얀이 위치한 곳과 그곳의 예배시간들과 약도까지 자세하게 안내해 줄 것이다.
만약 보수주의 회당을 선호한다면, USCJ의 회당찾기 홈페이지에 접속해 보기 바라고, 개혁주의를 선호한다면, UAHC의 회중주소록을 찾아보기 바란다. 재건주의자 회중들을 찾는다면, JRF의 재건주의자 회중들과 하부로트(Havurot)를 찾아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