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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6-03-25 22:21
이스라엘의 땅(Land of Israel)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2,296  
   http://www.jewfaq.org/israel.htm [1439]
   http://www.jewfaq.org/israel.htm [1266]
이스라엘의 땅(Land of Israel)

번역: 조동호 목사
자료출처: http://www.jewfaq.org/israel.htm

약속의 땅
유대인들의 역사는 아브라함과 함께 시작된다.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에게 가나안 땅에서 새 집을 약속하시면서 그에게 고향을 떠나라고 지시하실 때 시작된다(창 12장). 이것이 지금 이스라엘로 알려진 땅이다.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의 증손자인 야곱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며, 그의 후손들이 이스라엘 민족이 된 것이다. 그 땅은 종종 약속의 땅으로 언급이 되는데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 그 땅을 주시겠다고 반복해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약속 때문이다(창 12:7, 13:15, 15:18, 17:8).
그 땅은 토라에서 좋은 땅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출 3:8)으로 반복해서 기술되고 있다. 이 기술은 우리가 저녁 뉴스에서 보는 사막 이미지들과는 잘 들어맞지 않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땅은 정복자들에 의해서 반복적으로 악용되었다는 것을 기억하자. 정복자들은 그 땅을 유대인들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게 만들도록 결정된 자들이었다. 유대민족이 그 땅의 지배권을 되찾은 이후 2-30년 내에 우리는 그 땅의 농업에서 놀라운 진전을 보아왔다. 이스라엘의 농업은 오늘날 매우 높은 수확을 내고 있다.
비록 유대인들이 항상 그 땅을 정치적으로 지배한 것이 아니고, 또 유대인들이 항상 그 땅 인구의 다수를 차지했던 것은 아닐지라도, 유대인들은 3,200년 이상 오래전에 여호수아가 최초로 정복한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이 땅에서 살아왔다.
이스라엘 땅은 유대주의가 중심이다. 유대인 율법의 실질적인 부분이 이스라엘의 땅에 연계(連繫)되고, 거기에서만 이행될 수 있다. 일부 랍비들은 민수기 33장 53절에 의지해서 이스라엘의 소유를 취하고, 거기서 사는 것이 미츠바(계명)라고 선언해왔다. 탈무드는 그 땅 자체가 매우 거룩해서 거기서 걷기만 해도 오는 세계에서 살 곳을 얻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에로 돌아가기 위한 기도들은 많은 축일 준수들과 특별행사들은 물론 매일의 기도들에 포함된다.
이스라엘 밖에서의 삶은 유대인에게 비정상적인 상태로 간주된다. 이스라엘 밖의 세계는 보통 ‘디아스포라’(diaspora)로 번역되지만, 좀 더 문자적인 번역은 ‘유배’ 또는 ‘포로’인 ‘갈루트’(galut)로 종종 언급된다. 우리가 이스라엘 밖에서 살 때, 우리는 우리의 땅에서 유배되어 살고 있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주후 135년 로마인들에 의해서 이스라엘 땅에서 쫓겨났다. 로마인들은 3년 전쟁에서 유대인들을 이겼고, 유대인들은 주후 1948년까지 다시는 그 땅의 지배권을 갖지 못했다.

시온니즘과 이스라엘 국가의 형성
유대인들은 우리가 언젠가는 이스라엘에 있는 우리의 집에 돌아가게 될 것이란 희망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그 희망은 하티크바(Ha-Tikvah, 희망)란 노래에 표현되어 있다. 이 노래는 시온주의자 운동과 이스라엘 나라의 국가(國歌)이다.

마음 속 깊이만큼 오랫동안(Kol od baleivav p'nima)
유대인의 영혼은 따스하다(Nefesh Y'hudi homiya)
그리고 동쪽 끝자락을 향해서(Ul'fa-atey mizrach kadima)
시온에로 눈은 바라보고(Ayin L'Tziyon tzofiya)
우리의 희망은 아직 사라진 것이 아니다(Od lo avda tikvateynu)
이천년의 희망은(Hatikva bat sh'not alpayim)
우리 자신의 땅에서 자유민이 되는 것(Lih'yot am chofshi b'artzenu)
시온과 예루살렘의 땅에서(Eretz Tziyon v'yirushalayim).
우리 자신의 땅에서 자유민이 되는 것(Lih'yot am chofshi b'artzenu)
시온과 예루살렘의 땅에서(Eretz Tziyon v'yirushalayim).

그러나 오랫동안 우리의 본토에 대한 이 열망은 그것을 성취시킬 어떤 확고한 계획들도 없는 막연한 희망이었을 뿐이었다. 1800년대 후반에 데오도르 헤르즐(Theodor Herzl)과 하임 바이즈만(Chaim Weizmann)은 이스라엘에 유대인 국가를 세우는데 공헌한 시온주의, 곧 정치적 운동을 창설했다. 그들은 이스라엘 국가를 압제받는 유대인 희생자들을 위해 필요한 피난처로 보았는데, 이 압제, 특히 제정 러시아에서 있었던 조직적인 대학살은 유대인 인구를 크게 감소시키고 있었다.
‘시온주의’란 말은 ‘시온’이란 말에서 온다. 시온은 예루살렘에 있는 요새의 이름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시온’이란 말은 일반적으로 예루살렘을, 나중에는 유대인의 유토피아를 지칭하는 말로 쓰였다.
시온주의는 종교적인 운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본래 정치적이었다. 초기 시온주의자들은 세계가 인정한 순전히 법적 수단으로 이스라엘의 세속국가를 세우려고 했다. 예를 들면, 데오도르 헤르즐은 완전히 동화된 세속적인 유대인 저널리스트였다. 그는 알프레드 드레이후스(Alfred Dreyfus) 재판을 다루기까지는 그의 유대인 전승에 대해서 별반 느낌이 없었다. 알프레드 드레이후스는 프랑스군 유대인 대위로서 독일에 비밀을 누설했다는 혐의를 부당하게 받고 있었다. 드레이후스에 대한 비난들은 반 유대인 감정의 물결을 일으켰고, 충격을 받은 헤르즐은 유대인 국가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초기 시온주의자들은 한 곳에 피난처를 마련하는데 필사적이어서 그들은 실제로 우간다에 유대인 조국을 만들 계획을 생각했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에 시온주의자는 영국으로부터 어느 정도의 지원을 받아냈다. 영국외상 밸푸어(Lord Balfour) 경이 유대인 재무관 로스차일드(Lord Rothschild) 경에게 보낸 1917년 문서에서 영국정부는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조국을 만드는데 헌신하겠다고 했다. 이 문서가 바로 널리 알려진 밸푸어 선언문(the Balfour Declaration)이다. 불행히도 영국은 그들의 입으로 두 민족 모두에게 말하고 있었다. 동시에 아랍인들에게는 만약 그들이 오토만 터키제국(Ottoman Turkish Empire)을 물리치는데 협력한다면, 자유를 보장하겠다고 했다. 당시에 오토만 제국은 사우디아라비아와 북아프리카의 중요 부분들은 물론이고 근대 시리아, 레바논, 요르단, 이라크 국가들을 포함해서 중동의 대부분을 지배하고 있었다. “유대민족의 조국을 팔레스타인에 세운다는 지지를 표시한 밸푸어 선언을 한지 불과 몇 달도 지나지 않아서 영국은 아랍인들에게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정착을 제한하겠다고 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팔레스타인은 국제연맹의 위임통치 영토로써 영국에 할당되었다.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은 처음 현재의 이스라엘과 요르단이 있는 땅들을 포함했다. 그러나 요단강 동쪽의 모든 땅들은 나중에 트랜스조단(Transjordan, 현 요르단 국가)으로 알려진 분리 위임통치령에 놓이게 되었다.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을 만든 문서는 위임통치령 안에 유대인 조국을 세우겠다고 한 밸푸어 선언의 말을 구체화하였다. 아랍의 지도자들은 처음에, 만일 중동의 나머지 아랍 국가들이 자유를 얻는다면, 팔레스타인을 유대인들에게 기꺼이 주려고 했을지라도, 팔레스타인에 거주하는 아랍인들은 유대인들이 영토에 이주하는 것과 유대인조국개념을 완강히 반대하였다. 일반적으로 아랍 민족과 구별된 팔레스타인 민족 개념이 처음 등장하기 시작한 때가 바로 이 때쯤이다. 영토 내에서 많은 소요가 일었고, 영국은 상충하는 주장들이 조율되기 어렵다고 믿기에 이르렀다. 1937년 영국은 영토분할을 추천하였다.
홀로코스트는 유대인 조국의 필요성을 유대인들과 나머지 세계 모두의 예리한 집중을 받게 하였다. 나치 독일을 탈출하려한 유대인들은 종동 이민 제한으로 인해서 미국, 영국, 팔레스타인을 포함해서 모든 나라의 국경들에서 되돌려 보내졌다. 독일로 돌려보내진 자들 가운데 많은 수가 죽음의 수용소들에 수용되었고, 거기서 조직적으로 살해되었다.
영국은 아랍인들이든 유대인들이든 그들을 만족시킬 해결책에 도달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1947년 새로 창립된 국제연합에 그 문제를 넘겼다. 그리고 국제연합은 분할계획을 발전시켜 팔레스타인을 유대인 지역과 아랍인 지역으로 나눴다. 그 계획은 1947년에 인준되었다. 위임통치령은 1948년 5월 14일에 만료되었고, 영국군은 팔레스타인에서 철수하였다. 팔레스타인의 유대인들은 재빨리 이스라엘 국가의 건국을 선언하였고, 몇몇 서방 국가들에 의해서 즉시 인정받았다.
그러나 주변 아랍 국가들은 이스라엘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았고, 위임통치령이 끝나면서 생긴 공백과 그것을 대신할 수 있는 어떤 합법적 권위의 빈자리를 그들이 채웠다고 주장하면서 공격하였다. 아랍인들은 유대인들을 내 쫓기 위해서 일 년에 걸친 전쟁을 치렀다. 기적적으로 이스라엘의 새 국가는 이 전쟁은 물론이고, 이어지는 모든 아랍-이스라엘간의 전쟁을 이겼고, 아랍인들이 공격해올 때마다 영토를 넓혀갔다.

오늘날의 이스라엘
오늘날 전 세계 유대인 인구(1,300만 명)의 삼분의 일이 더 되는 대략 5백만 명의 유대인들이 이스라엘 땅에 산다. 유대인들은 그 땅의 인구의 80퍼센트 이상을 차지한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그 땅의 정치지배권 안에 있다.
큰 수의 유대인들이 지속적으로 이스라엘에 이주한다. 이스라엘로의 이주는 ‘알리야’(aliyah, 문자적으로 상승이란 뜻)라고 일컬어진다. 이스라엘의 귀국법아래서 (다른 종교에로 개종함으로써) 유대인 신앙을 포기하지 아니한 유대인은 누구든지 자동적으로 이스라엘의 시민이 될 수 있다. 이방인들은 미국시민이 되기 위해서 요구되는 것과 거의 마찬가지로 표준귀화과정을 거친 후에 이스라엘의 시민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오늘날 이스라엘 국가의 존재를 지지한다. 그러나 적은 수의 반시온주의자들인 세속유대인들도 있다. 이스라엘 국가의 존재에 반대하는 매우 작은 그룹의 우파 정통주의 유대인들도 있다. 그들은 메시아가 아직 오시지 않았는데 우리가 유대인 국가를 세우는 것은 죄라는 입장을 취한다. 그러나 이 관점은 주류 정통주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정통주의 유대인들은, 그것이 비록 메시아에 의해서 세워질 이스라엘의 신학적 국가가 아닐지라도, 조국으로써 이스라엘 국가의 존재를 지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