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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7-17 17:06
성경공부(열왕기하 1-4장)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31  
   2019년그리스도의교회성경공부교재_열왕기상하.pdf (385.0K) [1] DATE : 2019-07-17 17:11:25

성경공부(열왕기하 1-4장)

제6과 여호와는 질투하시는 하나님

오늘의 말씀 : 열왕기하 1장 1-18절

찬송: 67장(통31장), 68장(통32장)

간직할 말씀 :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너희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 (왕하 1:3)

주제 : 여호와 그분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말씀 앞에서

하나님은 다른 신을 섬기지 말고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십계명의 처음 두 계명을 주시면서 나는 질투하는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출 20:3-5). 모세오경에는 613개의 계명들이 담겨 있습니다. 그 가운데 248개는 “~하라”는 계명이고, 나머지 365개는 “~하지 말라”는 것들입니다. 그리고 이들 계명들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명령이기보다는 쌍방이 맺은 계약법 곧 조건법들입니다. 이런 점에서 국가나 개인의 운명(생사)에 대한 선지자들의 예언은 결과론적입니다. 또 선지자들의 예언은 이 계약법에 근거한 성령의 영감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국가나 개인의 운명을 미리 정한다기보다는 스스로 자초한다는 것이 옳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의 선악간의 심판의 내용은 계약법(조건법)에 정해져 있고, 인간의 행불행은 하나님과의 약속을 충실히 지키느냐 헌신짝처럼 내팽개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가 끝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피조물인 인간의 한계를 아시기 때문에 회개하고 돌이키면 언제든지 용서하시고 회복하신다는 것이 신명기 역사가의 확고한 신념입니다.

말씀을 나누며

1. “아합이 죽은 후에 모압이 이스라엘을 배반하였더라”(1-8절).

아하시야는 북왕국 이스라엘의 제8대 왕으로서 바알숭배 강요로 악명을 떨친 아합과 이세벨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는 아합이 죽은 후 남왕국 유다의 왕 여호사밧 17년에 왕이 되어 사마리아에서 2년간(853-852 BC) 다스린 후에 요절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부모 아합과 이세벨의 전철을 밟아 여호와와 그분의 종들을 멀리하고 이방신을 섬기다가 사망하였습니다. 역대기 역사가는 “유다 왕 여호사밧이 나중에 이스라엘 왕 아하시야와 교제하였는데 아하시야는 심히 악을 행하는 자였더라. 두 왕이 서로 연합하고 배를 만들어 다시스로 보내고자 하여 에시온게벨에서 배를 만들었더라.”(대하 20:35-36)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선지자 엘리에셀은 여호사밧과 아하시야의 연합을 못 마땅히 여긴 나머지 그 배가 순항치 못하고 파선할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대하 20:37). 이를 신명기 역사가는 “여호사밧이 다시스의 선박을 제조하고 오빌로 금을 구하러 보내려 하였더니, 그 배가 에시온게벨에서 파선하였으므로 가지 못하게 되매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가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내 종으로 당신의 종과 함께 배에 가게 하라 하나 여호사밧이 허락하지 아니하였더라.”(왕상 22:48 ?49)고 기록하였습니다.

열왕기하 1장 2절을 보면, 이스라엘의 왕 아하시야가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병들자 사람을 불레셋으로 보내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자신의 병이 낫겠는지 신탁을 받아오도록 하였습니다. ‘바알세붑’(Beel-zebub)은 블레셋 사람들의 신으로서 ‘높은 거처의 주인’이란 뜻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경멸의 뜻으로 이를 ‘바알세불’ 곧 ‘파리들의 주인’이라고 불렀습니다. 또 신약시대의 바리새인들은 바알세붑을 귀신의 왕으로도 불렀습니다(마 12:24). 그런데 왜 아하시야 왕은 여호와의 선지자들에게 묻지 않고, 바알세붑의 사제들에게 묻고자 했을까요? 왜 아하시야는 여호와보다는 바알세붑을 더 신뢰한 것일까요?

2.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9-16절).

이 물음의 답에 대한 한 가지 힌트가 1절, “아합이 죽은 후에 모압이 이스라엘을 배반하였더라.”에 있습니다. 이 구절은 3장 4-5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배반한 모압의 왕은 메사였습니다. 이 같은 사실이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된 메사석비(Mesha stone 혹은 Moabite stone)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석비는 1868년 클라인(Klein) 선교사에 의해서 사해 동쪽 21km에 위치한 디반(Dhiban)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높이 1.15m, 너비 60-68cm 크기의 이 석비에 의하면, 이스라엘 왕 오므리와 그의 아들들(아합, 아하시야, 요람/여호람)이 40여 년 동안 모압을 지배하였으나 메사가 이들을 무찔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모압은 북왕국 이스라엘에게 조공을 바치던 나라였습니다. 3장 4-5절에 보면, “모압 왕 메사는 양을 치는 자라. 새끼 양 십만 마리의 털과 숫양 십만 마리의 털을 이스라엘 왕에게 바치더니, 아합이 죽은 후에 모압 왕이 이스라엘 왕을 배반한지라.”고 적고 있습니다. 이에 요람(여호람) 왕은 유다와 에돔과 연합군을 결성하여 모압을 공격하였고 승리를 눈앞에 두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린 메사가 성벽위에서 자신의 왕위를 물려받을 세자를 죽여 모압의 신 그모스에게 제사를 바쳤습니다. 이것을 지켜본 연합군 진영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지면서 큰 분노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일이 벌어졌지만, 아무튼 연합군은 그로 인해서 전쟁을 포기하고 본국으로 철수하고 말았습니다. 고대 전쟁이 신들의 전쟁이었다는 점, 아합이 죽은 후 모압에 대한 지배권을 잃었다는 점, 게다가 집안 전체가 바알을 숭배했다는 점에서 볼 때, 아합과 이세벨의 아들들인 아하시야와 요람의 여호와 신앙은 부모 대에 못지않게 심히 약했을 것입니다.

3. “왕이 엘리야가 전한 여호와의 말씀대로 죽고”(17-18절).

아하시야가 여호와보다 바알세붑을 더 신뢰한 다른 이유는 아합 왕이 그랬듯이 듣고 싶은 이야기만을 듣고자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집안 전체가 바알을 숭배했으나 바알의 선지자들은 엘리야의 손에 모두 몰살을 당하였기 때문에 자신의 병세에 대해서 묻을만한 바알선지자들이 없었을 것입니다. 반면에 불과 2년여 전 아합이 사망할 당시에 북왕국 이스라엘에 400여명의 여호와의 선지자들이 있었고, 그들 또한 아합에게 했듯이 그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하시야는 그들에게 묻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아마 자신의 부친 아합의 사망이 그들의 거짓예언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아하시야가 여호와보다 바알세붑을 더 신뢰한 또 다른 이유는 여호와의 뜻을 제대로 전달하는 디셉 사람 엘리야와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와 같은 참 선지자들은, 실제로 그랬듯이, 자신에게 불길한 예언을 말할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기억해 내야할 것은 신명기 역사가의 강조점인 ‘회개’입니다. 아합은 회개했을 때 자신에게 부과된 운명을 늦출 수가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아하시야도, 만일 그가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회개했다면, 자신의 운명을 늦출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생명의 길을 버리고 오히려 이방신 바알세붑에게 묻고자함으로써 죽음을 앞당기는 길을 택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예언이든 운명이든 하나님께서 정한다기보다는 스스로 자초한다는 것이 옳을지도 모릅니다.

말씀을 마치며

아하시야는 낙상에 의한 사망이 아니었더라도 엘리사와 예후의 쿠데타 때 반드시 죽임을 당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여호와(야훼) 하나님을 배신하고 우상숭배를 강요한 아합과 이세벨의 모든 자녀들이 쿠데타 때 몰살당했음을 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17절은 “왕이 엘리야가 전한 여호와의 말씀대로 죽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또 “그가 아들이 없으므로 여호람(요람)이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었다”는 사실도 전하였습니다. 피조물인 인간은 시간의 문제일 뿐 반드시 죽습니다. 그러나 아합과 아하시야의 죽음에 있어서 신명기 역사가는 그들이 하나님의 뜻에 역행하면서 그 잘못을 회개치 않았다는 데에 강조점을 두었습니다.

말씀을 새기며

1. 아합과 아하시야가 자기들의 잘못을 뉘우치고 “여호와의 말씀대로” 살았다면, 그들의 수명은 좀 더 연장되었을 지를 토의해봅시다.

2. 하나님은 회개하고 돌이키면 언제든지 용서하시고 회복하신다는 것이 성경 66권의 확고한 가르침입니다. 이 회개와 회복에 관한 기억나는 말씀이 있다면 말해봅시다.

3. 하나님은 자기우상에 빠진 교만하고 잘난체하는 사람을 싫어하십니다. 혹시 우리 자신이 자기우상에 빠진 사람이 아닌지 돌아보고 회개하는 시간을 갖도록 합시다.

 

제7과 여호와는 영감을 주시는 하나님

오늘의 말씀 : 열왕기하 2장 1-25절

찬송: 292장(통415장), 295장(통417장)

간직할 말씀 :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 (왕하 2:9)

주제 : 여호와 그분은 영감을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말씀 앞에서

엘리야는 하나님이 호렙산에서 지시하신 세 가지 특명을 다 수행한 후에 죽지 않고 불수레와 불말들을 타고 하늘로 승천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건져낸 모세는 죽어서 시체로 승천했지만, 북왕국 이스라엘 민족을 아합과 이세벨의 우상숭배정책에서 건져낸 엘리야는 에녹처럼 죽지 않고 바로 승천하였습니다. 그리고 모세와 엘리야는 예수님의 예표였습니다. 따라서 모세와 엘리야의 실체이신 예수님은 죽었다가 부활하여 승천하셨습니다. 시체로 승천한 것보다, 죽지 않고 승천한 것이 더 뛰어나고, 죽지 않고 승천한 것보다 죽었다가 부활하여 승천한 것이 더 뛰어납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모세보다 에녹과 엘리야보다 더 크신 분이십니다.

말씀을 나누며

1.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1-11절).

열왕기하 2장은 엘리야가 엘리사를 후계자로 세운 후 승천한 이야기입니다. 또 여호와께서 엘리사를 후계자로 낙점하신 것과는 별도로 엘리사 본인 스스로 엘리야의 후계자가 되고자한 간절함이 표현된 곳입니다. 엘리야가 곧 승천할 것에 대해서는 엘리사뿐 아니라, 선지자의 제자들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일이었습니다. 이에 엘리야는 엘리사를 떼어놓으려고 세 차례나 길갈에서 벧엘로, 벧엘에서 여리고로, 여리고에서 요단강 동편(모두 북왕국 이스라엘의 영토)으로 장소를 이동했지만, 엘리사는 그때마다 “여호와께서 살아계심과 당신의 영혼(목숨)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4,6절)라고 말하였습니다. 결국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말하기를, “내가 네게 어떻게 할지를 구하라”고 하였고, 엘리사는 엘리야에게 “당신의 성령(영감, 능력)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9절)라고 간청하였습니다. 엘리사의 이 간청은 엘리야가 가졌던 능력의 두 배를 달라는 말이 아니라, 신명기 21장 17절의 장자상속법에 따라 형제들이 받을 몫의 두 배를 받는 장자로 삼아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엘리사는 “갑절”이란 말로써 자신을 엘리야의 장자 곧 수제자로 삼아달라고 간청했던 것입니다. 엘리야가 거느린 많은 수의 제자들 가운데서 자신을 수제자로 삼아달라고 부탁한 것입니다. 이는 또 엘리야가 가졌던 영감의 두 배를 말한 것이기보다는 엘리야의 제자들이 받을 영감의 두 배를 말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이에 따라 엘리사는, 12절에서 엘리야를 향하여 “내 아버지여”라고 부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엘리야의 장자 제자가 되어 아합, 아하시야, 요람, 예후, 여호아하스, 요아스 왕들에게 여호와의 뜻을 선포하였습니다. 또 엘리사는 기록만으로 판단했을 때 엘리야가 행한 8개의 기적들보다 많은 15개의 기적들을 행하였습니다.

2.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12-14절).

엘리사는 스승인 엘리야를 “내 아버지여”라고 불렀습니다(12절). 엘리사는 왜 엘리야를 아버지라고 불렀을까요? 엘리사는 엘리야의 선지자 학교의 학생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3절과 5절에서 보듯이, 북왕국 이스라엘의 성읍들이었던 벧엘과 여리고에 또 길갈(4:38)에도 선지자의 제자들이 많았던 것을 보면, 사무엘 선지자 때부터 큰 성읍들에 선지자 학교들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아합이 길르앗 라못을 공격하는 것이 여호와의 뜻인지를 알고자 했을 때, 왕에게 여호와의 뜻을 알게 해주려고 모인 선지자들의 수가 무려 400여명에 달했습니다. 아합과 이세벨에 의해서 이미 수많은 선지자들이 처형을 당했다는 점에서 볼 때, 게다가 그곳이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여호와 신앙이 거의 말살지경에까지 이르렀던 북왕국 이스라엘이란 점에서 볼 때, 400여명의 선지자란 숫자는 불가사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여호와 신앙이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을 때 이미 선지자가 된 사람들이 수백여 명에 달했고 또 선지자가 되겠다고 지원한 사람들도 수백여 명에 달했기 때문입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엘리야의 제자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열왕기하 2장 3,5,7절에 나오는 “선지자의 제자들”이란 히브리어로 “예언자들의 아들들”이란 뜻입니다. 유대인들은 훌륭한 인물들을 아버지라 부르곤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왕도 엘리사를 아버지라 불렀습니다(왕하 6:21, 13:14). 또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제자들에게 아버지로 불리기를 좋아했고, 대학자 힐렐과 샴마이에게는 ‘세상의 아버지’란 호칭이 부여된바있습니다. 바울도 디모데, 디도, 오네시모를 “아들”(딤전 1:18), “신실한 아들”(고전 4:17), “사랑하는 아들”(딤후 1:2), “참 아들”(딤전 1:2, 딛 1:4), “나의 아들”(몬 1:10)이라고 불렀습니다. 베드로도 마가를 “나의 아들”이라고 불렀습니다(벧전 5:13). 이 같은 맥락에서 엘리사는 엘리야의 제자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또 엘리사는 엘리야를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여”(12절)라고 불렀습니다.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도 엘리사를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13:14)라고 불렀습니다. 이는 엘리야와 엘리사가 이스라엘의 병거들과 마병들이란 뜻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쓰시는 선지자 한 사람의 능력(혹은 영감)이 수십만 대군보다 강하다는 뜻입니다.

3.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물을 고쳤으니”(15-25절).

15-18절은 엘리사가 선지자의 제자들로부터 엘리야의 수제자로 인정을 받는 장면입니다. 엘리야를 하늘로 데려간 “불수레와 불말들”(11절)은 하나님의 병거인 네 생물들(케류빔)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삼하 22:11, 시 18:10). 그들이 엘리야를 데리고 가다가 산이나 골짜기에 떨어뜨렸을 가능성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선지자의 제자들은, 그들이 엘리사보다 영감이 못하다는 확실한 증거로, 엘리야의 시신을 찾아오겠다고 고집하였고, 엘리사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렸습니다. 결국 선지자의 제자들 50명이 엘리야의 시신을 3일 동안 찾아 헤맸으나 찾지 못하고 돌아왔고 가지 말라고 말한 엘리사는 그들로부터 권위를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19-25절은 엘리사가 엘리야의 갑절의 영감을 받았다는 증거들을 보여준 기록입니다. 첫 번째 증거는 엘리사가 여리고의 나쁜 물의 근원을 치유한 사건입니다. 그러나 그 치유는 여호와께서 엘리사를 통해서 하신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엘리사는 물의 근원이 있는 곳으로 가서 소금을 그 곳에 뿌리며 말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이 물을 맑게 고쳐 놓았으니, 다시는 이곳에서 사람들이 물 때문에 죽거나 유산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21절)고 하였습니다. 두 번째 증거는 엘리사가 여리고를 떠나 벧엘로 올라가던 길에 있었습니다. 사내아이들이 성읍에서 뛰쳐나와 엘리사를 향해서 “대머리야, 올라가라!”며 못되게 굴었습니다. 암곰 두 마리에게 찢겨 죽임을 당한 자가 42명이나 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단순한 장난질로 볼 수 없을 만큼 그들은 숫자도 많았고 위협적이었습니다. 그들은 곰 두 마리가 나타났을 때조차 도망치지 않고 엘리사를 해코지하려고 했습니다. 그들이 곰을 피해 도망했다면 42명씩이나 죽임을 당했을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850명의 바알 선지자들을 죽인 엘리야를 증오한 바알숭배자들의 자식들이었을 것이고, 엘리야의 후계자인 엘리사를 해코지하려고 도모했던 청소년들이었을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며

여호와는 당신의 종들에게 영감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엘리야와 엘리사가 활동했던 때는 북왕국 이스라엘에서 여호와 신앙이 말살될 위기를 맞고 있던 때였습니다. 엘리야를 모세에 비교한다면, 엘리사는 여호수아에 비교될 수 있습니다. 모세가 여호와의 백성을 바로에게서 해방시켰다면, 엘리야는 그들을 아합과 이세벨에게서 해방시켰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가 그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땅을 정복했다면, 엘리사는 예후를 통해서 아합의 자손들을 괴멸시키고 쿠데타를 성공시켰습니다. 그리고 모세와 여호수아, 엘리야와 엘리사는 모두 새 언약시대 곧 그리스도교시대를 연 예수님과 사도들의 예표였습니다.

말씀을 새기며

1. 수많은 선지자의 제자들이 있었지만, 엘리사가 엘리야의 수제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를 말해봅시다.

2. 하나님은 당신의 종들을 택하실 때 외모를 보지 않으십니다. 엘리야와 엘리사의 외모에 대해서 아는 대로 말해봅시다.

3. 엘리야와 엘리사를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라고 부른 이유를 말해봅시다.

 

제8과 여호와는 해답을 주시는 하나님

오늘의 말씀 : 열왕기하 3장 1-27절

찬송: 399장, 400장(통463장)

간직할 말씀 : “거문고 타는 자가 거문고를 탈 때에 여호와의 손이 엘리사 위에 있더니”(왕하 3:15).

주제 : 여호와 그분은 해답을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말씀 앞에서

열왕기하 3장은 이스라엘과 모압의 전쟁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므리와 아합 부자의 통치기간 동안 북왕국 이스라엘은 통일왕국시대의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비교될 만큼 막강하였습니다. 오므리와 아합 부자는 북왕국 이스라엘을 국제사회에 알린 정치적 군사적 외교적으로 뛰어난 왕들이었습니다. 특히 아합은 종교적으로 여호와 신앙을 위기로 몰아넣었기 때문에 요한계시록에서 그는 적그리스도의 상징으로 묘사되었지만, 상아로 벽을 장식한 궁전을 지었고, 성읍들을 요새화시켰으며, 모압과 에돔 같은 주변국들부터 조공을 받아낸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아합이 사망하자 모압 왕 메사(Mesha)는 이스라엘을 배신하고 독립을 꾀하였습니다. 이후 여호람(제9대, 852-841 BC) 정권은 예후(제10대, 841-814 BC)의 쿠데타로 무너졌습니다.

말씀을 나누며

1.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1-3절).

여호람(요람)은 북왕국 이스라엘의 제9대 왕으로서 12년(852-841 BC)동안 통치하였습니다. 그가 왕이 된 때는 아버지 아합의 사돈 유다 왕 여호사밧의 통치 18년째 된 해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왕 여호람은 형 아하시야가 왕이 된지 2년째 된 해에 요절하였기 때문에 그를 이어 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열왕기하 1장 17절에서는 여호람(요람)이 이스라엘의 왕이 된 때가 유다의 왕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이 왕이 된지 둘째 해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사밧의 통치 기간은 25년(872-848 BC)이었습니다(왕상 22:42). 그런데 또 8장 16절에서는 유다의 왕 여호람(848-841 BC)이 왕이 된 해를 이스라엘의 왕 여호람이 왕이 된지 5년째 되는 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유다의 왕 여호람이 단독 왕이 된 해가 이스라엘의 왕 여호람이 왕이 된지 5년째 되는 주전 848년이란 뜻이고, 유다의 왕 여호람은 이미 주전 854년경부터 즉 이스라엘의 왕 여호람이 왕이 되기 1년여 전부터 아버지 여호사밧과 유다를 공동으로 통치하였다는 뜻으로 볼 수 있습니다.

2-3절에서 이스라엘의 왕 여호람(요람)이 아버지 아합이 만든 바알의 주상을 제거했으나 “그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그 죄를 따라 행하고 떠나지 아니하였더라.”는 여로보암이 여호와의 발등상으로 단과 벧엘의 성소들에 세운 황금송아지를 제거하지 않았다는 뜻으로 추정됩니다. 여로보암은 이스라엘왕국 사람들이 유다왕국의 예루살렘 성전에 출입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 못된 짓을 한 것입니다. 유다왕국의 관점에서 볼 때, 황금송아지는 가나안의 주신인 엘과 바알의 형상이었을 뿐 아니라 단 한곳 예루살렘 성전이외의 성소나 성전은 모두 불법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단과 벧엘의 성소들은 모두 철거되어야할 것들이었습니다. 여호람(요람)이 아버지 아합이 세운 바알의 주상들을 제거한 것은 여호와 보시기에 옳은 행동이었으나 단과 벧엘의 성소들을 철거하지 않은 것은 여호와 보시기에 여전히 악한 일이었습니다.

2. “아합이 죽은 후에 모압 왕이 이스라엘 왕을 배반한지라”(4-20절).

4-20절은 매년 바치던 조공을 거부하고 이스라엘의 지배에서 벗어나려고 한 모압과 전쟁하는 내용입니다. 4-5절을 보면, “모압 왕 메사는 양을 치는 자라. 새끼 양 십만 마리의 털과 숫양 십만 마리의 털을 이스라엘 왕에게 바치더니, 아합이 죽은 후에 모압 왕이 이스라엘 왕을 배반한지라.”고 적고 있습니다. 양 한 마리는 매년 대략 750g의 양모를 생산한다고 합니다. 이를 근거로 볼 때, 모압은 40여 년간 매해 150여 톤의 양모를 이스라엘에게 조공으로 바쳐왔습니다. 아합이 죽자 모압의 왕 메사는 이를 거부하고 나선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왕 여호람은 이스라엘에 종속되어 있던 에돔과 아버지 아합과 결혼동맹을 맺은 유다와 연합군을 결성하여 모압을 치려고 원정에 나섰습니다.

연합군은 에돔 광야에 결집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남쪽으로 유다와 모압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었고, 에돔은 북쪽으로 유다와 모압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었습니다. 유다는 이스라엘과 에돔 사이 사해 서편에 있었고, 모압은 이스라엘과 에돔 사이 사해 동편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연합군의 공격은 에돔 광야 길을 통해서 이뤄졌습니다. 많은 수의 병거와 그 병거를 끄는 말들과 보병들로 구성된 연합군은 7일간 행군을 이어갔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광야에 마실 물이 없었습니다. 아무리 막강한 군대라도 먹을 양식과 마실 물이 없다면, 적과 싸워 이길 수가 없습니다. 이에 유다의 왕 여호사밧은 “여호와께 물을 만한 선지자가 없느냐”(11절)고 물었습니다. 여호와 신앙인이었던 여호사밧은 문제를 해결해 줄 여호와의 선지자를 찾았고, 영감에 따른 것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엘리사가 연합군에 섞여 있었다는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결과적으로 “여호와의 손이 엘리사 위에 임했고”(15절), 엘리사는 물 문제해결뿐 아니라 “여호와께서 모압 사람도 당신의 손에 넘기시리니, 당신들이 모든 견고한 성읍과 모든 아름다운 성읍을 치고, 모든 좋은 나무를 베고, 모든 샘을 메우고, 돌로 모든 좋은 밭을 헐 것입니다.”(18-19절)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이 축복은 위기의 때에 여호와께 해답을 구한 여호사밧의 여호와 신앙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3. “이스라엘에게 크게 격노함이 임하매”(21-27절).

엘리사의 예언이 그대로 이뤄지는 듯싶었습니다. 24-25절은 “이스라엘 사람이 일어나 모압 사람을 쳐서 그들 앞에서 도망하게 하고, 그 지경에 들어가며 모압 사람을 치고, 그 성읍들을 쳐서 헐고, 각기 돌을 던져 모든 좋은 밭에 가득하게 하고, 모든 샘을 메우고, 모든 좋은 나무를 베고, 길하레셋(Kir Hareseth)의 돌들은 남기고 물매꾼이 두루 다니며 치니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길하레셋(Kir Hareseth)의 돌들”은 모압 왕 메사와 그의 남은 군사들이 집결한 높은 지역의 성벽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돌들을 그 자리로 그대로 남겨놓았다는 것은 그 성벽을 고의로 허물지 않았다는 뜻일 수 있습니다. 성벽은 그대로 두고 포위한 채, 물매(무릿매)를 쓰는 병사들을 시켜서 성안에 돌을 던지는 것에 그쳤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돌들은 남기고”라고 한 부분에 이스라엘 연합군이 전쟁을 승리로 장식하지 못한 원인이 있지 않았는가라고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든 요새화된 성읍을 허물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모압의 왕 메사는 길하레셋 성이 포위되자 정예병 700명을 뽑아서 포위망을 뚫어 에돔 왕에게로 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실패하자 성벽 위에서 자신의 왕위를 물려받을 세자를 죽여 모압의 신 그모스에게 바쳤습니다. 이것은 그모스 신이 진노했기 때문에 자신이 패배한 것이라고 여긴 때문입니다. 또 그모스를 달래려면 자신이 가장 아끼는 것을 제물로 바쳐야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인신공양은 인간의 감정을 격분시킵니다. 그러므로 인신공양을 지켜본 모압 사람들의 적개심은 하늘을 찔렀고, 연합군은 심리적으로 위축되었을 것입니다. 그모스의 진노가 자신들에게 미치지 않을까하는 두려움 때문에 신경도 날카로워졌을 것입니다. 승리를 눈앞에 두고 있었지만, 이 돌변상황 때문에 연합군은 전쟁을 포기하고 본국으로 철수하였습니다. 고대 전쟁이 신들의 전쟁이었다는 점, 게다가 이스라엘의 왕이나 에돔의 왕은 우상숭배자들이었다는 점, 상당수의 연합군 병사들도 우상숭배자들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들이 예상되는 그모스 신의 진노를 두려워했을 가능성은 큽니다. 엘리사도 이스라엘의 승리를 그 정도까지만 예언했던 것 같습니다.

말씀을 마치며

열왕기를 쓴 신명기 역사가의 판단이나 평가기준은 여호와(야훼) 신앙에 있습니다. 유다의 왕 여호사밧과 유다 군사들을 빼면 나머지는 대부분 우상숭배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요새화된 성읍을 허물라”는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모압을 크게 응징한 후 패배하지 않고 철수할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여호와를 신뢰하는 여호사밧과 엘리사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후 이스라엘의 왕 여호람은 엘리사의 쿠데타 때 예후가 쏜 화살을 맞고 사망하였고, 가문이 괴멸되었습니다(왕하 9:24).

말씀을 새기며

1. 이스라엘 연합군이 모압의 성 ‘길하레셋’을 정복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 말해봅시다.

2. 신명기 역사가는 이스라엘의 살 길이 무엇이라고 생각했는지 말해봅시다.

3. 나라의 안녕에 미치는 신앙과 외교력과 군사력의 중요성에 대해서 이야기해봅시다.

 

제9과 여호와는 자비를 베푸시는 하나님

오늘의 말씀 : 열왕기하 4장 1-44절

찬송: 91장(통91장), 93장(통93장)

간직할 말씀 : “그가 그들 앞에 주었더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먹고 남았더라.” (왕하 4:44)

주제 : 여호와 그분은 자비를 베푸시는 하나님이시다.

말씀 앞에서

모세는 광야생활 40년간 백성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게 하였습니다. 이것은 모세가 히브리인들의 메시아였음을 입증하는 여호와의 표적이었습니다. 표적이란 그것을 행하는 자가 여호와의 종인 것과 여호와의 살아계심을 입증하는 기적의 목적을 말합니다. 엘리야도 이 같은 표적을 행하였습니다. 그것이 사르밧 과부의 집에서 일어난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 한”(왕상 17:16) 기적입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그 같은 표적을 두 번이나 행하였습니다. 첫 번째가 적은 양의 기름으로 이웃들에게 빌려온 많은 그릇(항아리)들을 채운 것이고, 두 번째가 보리떡 20개와 약간의 이삭으로 선지자의 제자들 100명을 먹이고 부스러기를 남긴 것입니다. 이 같은 표적들은 메시아의 표적들로써 모두 예수님이 행하신 오병이어 표적의 예표였습니다.

말씀을 나누며

1. “계집종의 집에 기름 한 그릇 외에는 아무것도 없나이다”(1-7절).

1-7절은 가난한 선지자의 미망인을 돕기 위해서 적은 양의 기름으로 이웃들에게 빌려온 그릇(항아리)들에 기름을 채워주어 그것을 팔아 빚을 갚고 생활비에 보태도록 한 기적이야기입니다. 선지자의 제자들은 독신을 고집했거나 공동체생활을 했던 것으로는 여겨지지 않습니다. 그들은 각자의 가정을 가지고 생업에 종사하다가 선지자가 오시면 모여 집회를 가졌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성전을 섬기던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이 각자의 가정을 가지고 생업에 종사하다가 당번 주간에만 나와 봉사했던 것과 비슷합니다. 선지자의 제자들이 하는 일이 무엇이었는지, 무엇을 배웠는지, 왜 그렇게 많았는지는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 게다가 엘리야와 엘리사시대는 여호와(야훼) 신앙이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었던 때였습니다. 아직 이세벨이 살아 있었고, 엘리야의 후계자인 엘리사를 향해서 칼을 갈고 있을 때였습니다. 언제 또 칼바람이 전국에 불어 닥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1-7절에서 부인에게 빚더미를 남기고 죽은 선지자의 제자가 아합의 왕궁 맡은 자였던 오바댜(왕상 18:3-4)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아람어 구약성경인 탈굼(Targum)과 요세푸스의 <고대사>(Antiquities, 제9권 4.2)가 그렇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특히 요세푸스는 오바댜가 아합과 이세벨의 박해 때 여호와의 선지자 100명을 굴에 숨기고 먹이기 위해서 돈을 빌렸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가 누구였던 간에 그의 부인은 빚더미 때문에 두 아들을 채권자에게 종으로 빼앗길 처지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여인이 하나님의 마음을 얻을만했다는 점이고, 하나님은 엘리사를 통해서 그녀의 문제를 해결해주셨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여인에게 선지자의 마음을 얻고, 하나님의 자비를 입을만한 착함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2. “엘리사가 이르되, 네 아들을 데리고 가라”(8-37절).

8-37절은 부유하지만 대를 이를 아들을 낳지 못한 수넴 여인이 하나님의 거룩한 종 엘리사를 정성껏 섬김으로써 아들도 얻고 또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아들을 품에 안게 된 기적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을 환대한 수넴 여인은 엘리사의 마음을 얻기에 충분하였습니다. 엘리사는 그녀에게 보답하고 싶었고, 그녀에게 대를 이를 아들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엘리사는 그녀에게 일 년 후면 그녀가 아들을 낳게 될 것이라고 축복하였습니다. 그 축복은 그러나 여호와의 뜻과 일치된 것이라야 이뤄질 수 있는 특별한 은총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수넴 여인이 엘리사에게 선행을 베풂으로써 엘리사의 마음을 얻었고, 그녀가 엘리사의 마음을 얻은 그 선행은 또 하나님의 마음을 얻기에 충분한 것이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는 분명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을 얻는 것이고,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 곧 하나님의 마음을 얻는 것임을 말해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마음을 얻는 한 가지 방법은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입니다.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의 집은 지붕이 평평한 복층으로써 2층 다락은 식사, 잠자리, 손님접대에 사용되었습니다. 부엌은 아래층에 있었고, 가축도 한 지붕 아래층에서 함께 생활했습니다. 그리고 옥상은 땔감을 쌓아두거나 곡식 등을 말리는데 유용하게 쓰였습니다. 부엌이나 가축이 사는 곳의 천장은 옥상과 맞닿아 있었고, 그 옥상은 덮개로 덮여 있어서 덮개를 열어젖히고 물건을 달아 내리기도하고 끌어올리기도하였습니다. 수넴 여인이 엘리사를 위해서 거처를 마련한 곳은 바로 이 옥상 한켠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닥에서 2층 다락으로, 또 다락에서 다시 옥상으로 오르는 계단이 있었습니다.

수넴 여인의 어린 아들이 추수하는 아버지를 보려고 들로 나갔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초막절 즈음에 밀, 보리, 대추야자열매, 석류, 포도, 무화과 등을 수확합니다. 이 때 한 낮의 온도가 30도를 오르내립니다. 아이는 아마 일사병에 걸려 죽은 듯싶습니다. 아이가 죽자 여인은 그를 엘리사의 침상에 눕혀놓고 1백리 떨어진 갈멜산으로 엘리사를 찾아갔습니다. 자비를 베푸시고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녀의 이 믿음이 여호와의 마음을 움직였고, 엘리사를 통해서 죽은 아이를 살리게 하셨습니다.

3. “여호와의 말씀이 그들이 먹고 남으리라 하셨느니라”(38-44절).

38-44절은 집회에 모인 100여명의 선지자의 제자들이 먹을 국에 든 독을 제거한 것과 보리떡 20개와 약간의 이삭으로 100여명을 먹이고 남긴 기적이야기입니다.

38-41절에서는 한 선지자의 제자가 들호박을 채취하여 썰어서 국솥에 넣었습니다. 이 열매는 요단강 계곡지대에 많은데 먹으면 구토증을 일으킨다고 합니다. 엘리사는 국솥에 든 독을 제거하기 위해서 곡식가루를 넣었습니다. 곡식가루가 들호박의 독성을 중화시켰는지, 아니면 독성을 제거하기 위한 단순한 상징적인 행위에 불과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엘리사는 여리고의 물을 고칠 때에 물 근원에 소금을 뿌렸고, 죽은 아이를 살릴 때에도 지팡이를 이용하거나 체온을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죄인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사망의 독을 제거하시려고 그리스도의 보혈을 사용하십니다. 소금, 지팡이, 가루 또는 피가 어떤 독성을 직접 제거한다기보다는 그런 상징적 매개를 통해서 자비하신 여호와께서 능력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42-44절에서는 보리떡 20개와 약간의 이삭으로 선지자의 제자들 100명을 먹이고 부스러기를 남기고 있습니다. 이 같은 표적들은 메시아의 표적들로써 예수님이 행하신 오병이어 표적의 예표였습니다. 복음서들을 보면, 예수님은 큰 능력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행하였지만,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여전히 메시아이신 것을 입증할 표적을 보여 달라고 요구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례 요한이 사망한 후에야 자신이 메시아이신 것을 드러내십니다. 그것이 바로 오병이어의 표적이었습니다. 오병이어 표적 직후에 사람들이 예수님을 붙잡아 왕으로 삼으려고 했는데, 그 이유는 오병이어의 표적이 모세와 엘리야와 엘리사가 행하였던 것 같은 메시아의 표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같은 표적들은 예수님이 행하실 표적의 예표였던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며

열왕기하 4장에 실린 5개의 기적의 특징은 메시아의 특성과 닮아있다는 점입니다. 또 다른 특징은 기적은 하나님의 마음을 얻을 때 일어나는데, 하나님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게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행하는 일들은 실상 모두가 사람 앞에 행하는 일들입니다. 그만큼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 중요한데, 그것은 자비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얻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새기며

1.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사람의 마음을 얻어서 하나님의 자비를 입게 된 경험들이 있다면 말해봅시다.

2. 수넴 여인이 아들을 얻게 된 것과 죽었던 아들을 다시 살리게 된 이유를 말해봅시다.

3.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44절)와 관련해서 엘리사가 행한 기적들이 누구로부터 온 것인지를 말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