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시문학 개요
정리: 조동호 목사
1.묵시문학(Apocalyptic Literatures)이란?
주전 2세기에서 주후 2세기경에 유대교와 기독교에서 성행하였던 문학 장르이다. 하나님의 승리 즉 하나님의 동터오는 승리와 피조 세계의 임박한 구원에의 희망이 주제이다. ‘이 시대’를 ‘오는 시대’와 대립시킨다. ‘이 시대’에 절망함으로써 ‘오는 시대’에 희망을 건다. 시한부종말론에 가깝다.
묵시문학이 태동한 배경은 이교도들의 침략과 재난 및 종교박해로 인한 위기이다. 선구적으로는 바벨론유배를 들 수 있다. 이사야서, 아모스서, 에스겔서, 스가랴서, 요엘서 등이 묵시문학의 선구적 예언서들이다. 또 다른 구약시대의 배경은 설류키드 왕조의 안티옥쿠스 4세 에피파네스(175-164BC 통치)의 유대교 탄압이다. 이 시대를 반영하고 있는 다니엘서가 대표적인 책이다. 그밖에 책으로는 시빌의 신탁, 이사야의 승천기, 에스라 제5-6서, 제1에녹서, 제2에녹서 등이 있고, 에녹서가 가장 유명하다.
묵시문학이 태동한 배경으로써 신약시대에는 주후 70년 예루살렘의 멸망과 로마에서 주후 64년에 시작된 네로의 기독교 박해를 들 수 있다. 대표적인 책이 요한 계시록이다. 그밖에도 베드로 묵시록, 바울 묵시록, 허마의 목자, 도마 묵시록, 동정녀 묵시록, 스데반 묵시록 등이 있다.
묵시록들은 신앙 때문에 박해와 고난을 당하는 성도들에게 믿음을 저버리지 않도록 용기와 위로와 소망을 주기 위해서 쓰였다. 일례로 요한 계시록은 박해를 이기고 믿음을 지킨 성도를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며,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며(7:17; 21:4), 성도의 기도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며(8:3,4) 최후의 승리가 보장되며(15:2), 피의 보상을 받으며(19:2), 새 하늘과 새 땅의 축복을 보장받는다(21장)고 적고 있다. 묵시문학적 표현들로는 악한 세력의 세상통치, 하늘의 징조들, 핍박, 전쟁, 기근, 염병 등이 있고, 가명과 숫자를 사용하며, 뿔, 용, 뱀, 천사 등이 등장하기도 한다. 선과 악의 싸움은 하나님의 승리로 끝난다.
2.묵시문학들의 개요
유대묵시문학의 특징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에티오피아어의 에녹서 혹은 제1에녹서(the Ethiopic Book of Henoch)
이 책은 에녹의 묵시록(the Apocalypse of Henoch), 또는 제1에녹서(The First Henoch)라고도 불린다. 초대교부들도 이 책을 알고 있었으며, 외경 중 가장 중요한 문서의 하나이다. 이 책의 특징인 메시아사상은 신약성서와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즉 메시아는 ‘선택된 자’, ‘사람의 아들’이라 불리고 그 선재성(先在性), 우주적 지배, 메시아에 의한 ‘새로운 하늘과 새로운 땅’의 도래 등이 설명되고 있다. 이 책은 주전 164년 이후에 쓰인 것으로 추정된다.
(2) 요벨의 서(The Book of Jubilees)
소창세기로 불리어 온 이 책은 창세기 1장부터 출애굽기 12장까지의 유대교적 해설로 유대교의 역사관에 입각해서 구원사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내용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안식일, 축일, 새해, 요벨의 해 등을 거룩히 지내지 않았고, 할례나 이방인들과 야합하지 말라는 규정을 무시해 왔지만, 결국은 참회하여 하나님께 귀의하고 하나님도 그들의 마음속에 할례를 베풀어 그들의 아버지가 되시고 메시아 시대가 출현하게 된다는 것이다.
(3) 열두 족장의 유언(the Testaments of the Twelve Patriarchs)
이 책은 야곱의 아들인 12족장의 유언을 모은 것으로 창세기 49장 1-27절의 야곱의 유언과 비슷한 형식으로 엮어져 있다. 또한 신명 33장의 모세의 축복과도 유사한 데가 있다. 여기서는 요셉을 이상적인 인물로, 지도적인 인격자로 보고 요셉의 유언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대략 주전 2세기경의 작품으로 본다.
(4) 솔로몬의 노래(The Psalms of Solomon)
외경 가운데 유일한 시편이며 42편의 시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의 메시아관은 주목할 만하고, 정경 제2이사야에 묘사된 것과 비슷하게 온 세상에 구원을 가져올 메시아에 관해 말하고 있다. 주전 48년경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5) 모세의 몽소승천기(The Assumption of Moses)
이 책은 모세의 승천에 관한 내용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역사에 관한 모세의 유언을 주로 담고 있다. 그러나 책 끝이 갑자기 끊어진 점으로 보아 본래 원문에는 모세의 승천에 얽힌 이야기와 대천사 미카엘과 악마가 모세의 시체를 서로 차지하려고 싸운 이야기도 적혀 있었다고 본다(유 1:9). 이 책은 주후 6-30년경의 작품으로 저자는 바리새인으로 추측된다. 베드로후서와 유다서에서 인용된 흔적이 보인다.
(6) 이사야의 순교와 승천(The Martyrdom and Ascension of Isaiah)
이 책은 이사야의 순교(1:1-2a. 6b-13a, 2:1-3,12, 5:1b-14), 이사야의 환시(3:13b-4:18), 이사야의 승천(6:1-11,4) 등 세 책의 합본이다. 이 중 이사야의 환시와 이사야의 승천은 기독교인이 엮은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1세기말에 팔레스타인에서 기록된 것으로 추정된다.
(7) 시빌의 신탁(The Sibylline Oracles)
시빌(Sybyl)은 무당이란 뜻으로, 이교의 여예언자를 말한다. 이 책에서 주목할 만한 내용은 예루살렘 멸망, 79년 폼페이시가 묻힌 베수비오 화산의 분화, 네로 황제, 티투스 황제, 하드리아누스 황제 등에 관한 언급과 메시아 시대의 도래를 열망하는 종교적 역사관이 피력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전해지는 시빌의 신탁은 셋째 권(주전 150년 이후), 넷째 권(주후 80년), 다섯째 권(주후 2세기) 등이 있다.
(8) 슬라브어의 에녹서 혹은 제2에녹서(The Slavonic Book of Henoch)
슬라브어 사본으로 남아 있는 이 책은 에녹의 비밀의 책 혹은 제2에녹서로 불린다. 내용은 에티오피아어의 에녹서와 비슷하다. 이 책은 베드로후서와 유다서가 인용한 흔적이 있고, 대략 주후 30년 이후에 쓰인 것으로 본다.
(9) 에스드라2서(The Second Book of Esdras)
이 책은 에스드라1서의 속편이 아니고 주후 1세기 말경 도미티아누스 황제 치세 중(81-96), 즉 요한의 계시록이 쓰인 시대에 나온 묵시문학 작품이므로 시대적으로 신약에 가까운 것이지만, 유대교의 입장에서 에스라의 이름을 빌어 쓰였기 때문에 구약외경의 한 권으로 간주되고 있다. 이 책은 3부로 나뉘어 있고, 1부(1-2장)와 3부(15-16)는 기독교인 편집자가 가필한 것으로 보이고, 2부(3-14장)는 일곱 가지 환상에 관해 말하고 있다.
(10) 시리아어의 바룩 묵시록(The Syriac Apocalypse of Baruch)
에스드라2서와 같은 시대에 쓰인 묵시록으로 바룩서가 있기 때문에 제2바룩서라고 부른다. 이 책은 7부로 구성되어 있고, 그 내용은 주후 70년의 예루살렘 멸망 후 고난과 절망 속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메시아시대가 가까이 다가왔다는 것을 알리고 용기를 북돋우려 했다. 주후 90년경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11) 희랍어의 바룩 묵시록(The Greek Apocalypse of Baruch)
제3바룩서로 불리는 이 책은 바룩의 천상계 여행을 이야기하는데, 제1천에서 제5천까지 여행한 대목에서 중단되고 있다. 내용은 유대교의 입장에서 쓰인 것이지만, 최후만찬에서의 하나님(그리스도)의 피인 포도주에 관해 언급한 점으로 미루어, 기독교인이 가필한 흔적이 엿보인다. 주후 2세기경의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다.
신약묵시문학의 특징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베드로 묵시록
베드로 사후에 쓰인 책으로써 본래의 명칭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죽은 자의 부활’이었다. 요한 계시록이 우주종말론인데 반해, 베드로 묵시록은 개인종말론에 치중한다. 단테의 <신곡>의 선구적인 책이다. 총 17장 300행으로 사후의 세계를 말한다. 선한 자는 사후에 천국에서 영광스런 모습이 되는 것과 악인은 지옥에서 고통스럽고 무서운 광경에 처해지는 것을 대조하고, 후자에 중점을 두었다.
(2) 바울 묵시록
본서는 바울의 셋째 하늘의 경험(고후 12:1-4)을 확대한 것으로 바울이 들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바울의 입을 통하여 말하게 하는 형식으로 저작되고 있다. 총 51장으로 되어있고, 4세기 말경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된다.
(3) 허마의 목자
본서는 환상 편, 계명 편, 비유 편으로 되어 있고, 서신의 형태이나 문체와 환상편으로 인해서 묵시록에 속한다. 허마 혹은 헬마스는 해방노예로서 40년경 로마의 감독이었던 피우스(Pius)의 동생이었다. 다양한 영적 진리를 우화로써 회개와 기도를 장려하였다. 환상 편에서는 저자가 직접 본 다섯 환상으로써 그의 앞에 ‘교회’라는 노부인과 목자가 나타나 여러 가지를 가르쳐주고 있고, 계명 편에서는 당대 교회의 윤리관인 신앙, 소박한 생활, 정직, 순결, 인내, 절제 등 12가지 미덕을 교훈하고 있으며, 비유 편에서는 10가지 유사한 내용을 만담형식으로 교훈하고 있다.
(4) 도마 묵시록
세상의 종말과 7일간의 심판, 그리고 성도들을 하나님의 나라로 모은다는 내용이다.
(5) 동정녀 묵시록
가톨릭 계통의 사본으로써 연옥설의 근거를 제공하려하였고, 헬라 판과 에티오피아 판이 약간 다르다.
(6) 스데반 묵시록
스데반이 돌에 맞을 때 가말리엘과 니고데모가 같이 맞았고, 그때 재판장은 바울이었다고 주장하는 책이다.
3. 다니엘서
(1) 문학적 유형
다니엘서는 12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반부인 1-6장에서는 다니엘과 그의 세 동료들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고, 후반부인 7-12장에는 다니엘이 보았고 천사가 해석한 일련의 환상들이 담겨있다. 이 가운데 후반부인 7-12장을 진보신학자들은 주전 605년에 다니엘이 유배로 끌려갔던 바벨론과 페르시아 시대가 아닌 헬라시대로 본다. 설류키드 왕조의 안티옥쿠스 4세 에피파네스(175-164BC 통치)가 유대교를 탄압한 시기를 반영한 저자 미상의 묵시록이라는 주장이다.
(2) 역사적 배경
주전 323년 알렉산더대왕(356-323 BC)이 죽은 후에 제국이 네 개의 왕조로 쪼개졌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시리아 지역을 통치한 설류키드 왕조였다. 이 왕조에 안티옥쿠스 4세(Antiochus Epiphanes, B.C. 175-164)가 황제에 오르기 전까지만 해도 유대인들에게 일정 부분 자치와 종교의 자유가 허용되어 있었다. 스스로 자신을 ‘신의 계시’라 주장하여 ‘에피파네스’라고 불렀던 안디옥쿠스 4세는 유대교의 대제사장직에 헬라문화에 동화된 제사장을 세우거나 돈을 받고 대제사장직을 팔아먹었고, 나중에는 유대교를 폐지시켰으며, 성전을 약탈하는 등 유대지역을 헬라화 시켰다. 예루살렘 성전을 제우스에게 봉헌하였고, 유대인들이 부정한(treyf) 동물로 생각하는 돼지를 제단에 바치게 함으로써 성전을 더럽혔다. 이 뿐 아니라, 안디옥쿠스는 모든 유대교의식들과 율법서의 소유를 사형으로 금지시켰다. 그 대신 안디옥쿠스는 유대인들에게 연극, 스포츠, 대중탕사용, 나체운동, 테두리 넓은 모자 착용과 같은 헬라문화와 관습을 강요하였고, 이에 젊은 사제들 가운데는 제단을 버리고, 원반던지기를 연습하며, 할례의 흔적을 지우는 수술까지 받았다.
황제 안디옥쿠스에 대항한 유대인들에 두 개의 단체가 있었다. 하스모니안 가문의 제사장 마티타후(Matityahu/Mattathias)와 그의 아들 유다 마카베오(Judah Maccabee)가 주도한 민족주의 열심당원들과 바리새파의 전신인 ‘하시딤’(Chasidim), 곧 유대교의 전통주의자들이 있었다. 이 두 단체가 힘을 합쳐 유대인들이 헬라문화에 물들어가는 것과 설류키드 왕조의 종교탄압에 대항하였다. 주전 167년에 시작된 혁명은 만 3년만인 주전 164년에 성공리에 끝났고, 유대교 금지령을 해제하는 조약이 체결되었으며, 예루살렘 성전은 다시 하나님께 봉헌되었다. 이로써 유대인의 주권이 회복되었고, 주전 64년에 로마제국에 다시 망할 때까지 약 100여 년 동안 하스모니안 왕조가 국민을 통치하였다. 유대교 외경문서인 마카비서가 이때의 일을 적고 있고, 유대인들의 축일인 하누카(Chanukkah)는 이때 성전이 하나님께 재 봉헌된 것을 기념하는 행사이다.
4. 요한 계시록
(1) 구조적인 틀
요한 계시록의 구조적인 틀로써 반복과 분리 이론(Recapitulation Theory)이 설득력을 얻는다. 이 이론은 계시록의 내용이 천상과 지상의 분리 또는 사건의 반복으로 전개된다고 주장하는 이론이다. 도날드 거쓰리는 빅토리누스(Victorinus)가 처음 반복이론을 사용하였으며, 어거스틴이 지지하였다고 말한다. A. M. 헌터 역시도 다음의 말로써 이를 지지하였다. “첫째, 요한이 사용한 드라마상의 기법 중의 하나는 ‘삽화(揷話)의 원칙(principle of parenthesis)이다. 마치 음악가가 두 개의 중후한 악장 사이에 가벼운 리듬의 악장을 도입하듯이 요한도 그의 심판 환상들이 거의 견딜 수 없게 될 때 지상의 고통의 장면에서 하늘의 축복에로 장면을 전환시킴으로써 긴장을 해소시키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둘째, 요한 계시록의 특징은 ‘이중 사건’(double happenings)이다. 즉 천상의 사건들 속에는 그와 대칭 되는 지상의 사건들이 있다는 말이다.”
(2) 역사적 배경
황제의 신격화는 로마 제국에 지배적이었다. 율리우스 시저 이후 로마의 황제들은 사후에 로마 상원에 의해서 신으로 선포되었다. 몇몇 황제들은 생존기간에도 주화에 DIVUS(神)란 말을 사용하였다. 동로마 제국에서도 가끔 헬라어로 THEOS(神)를 실었다. 아시아도의 큰 도시들에서는 황제숭배를 위해서 황제께 바쳐진 성전을 갖는 영광을 누리려고 서로 우열을 다투었다. 가장 분명하게 신으로 주장한 황제는 도미티아누스였다. 그는 주와 하나님(DOMINUS ET DEUS)이란 이름으로 불리어 졌다. 네로(Nero/54-68)도 자신을 신으로 착각한 황제 중의 한 사람이었다. 요한 계시록은 바로 이 황제숭배로 인한 배교와 박해에 직면하여 도미티아누스가 죽고 난 96년에 성도들에게 믿음을 저버리지 말도록 격려하기 위해서 저술되었다.
5. 계시(啓示), 예언(豫言), 묵시(黙示), 종말(終末)
‘계시’와 ‘묵시’는 헬라어로 동일하게 ‘아포칼륖시스’(Apocalypse/Ἀποκάλυψις)라 쓴다. 그 뜻은 ‘베일을 벗긴다.’ ‘숨은 것을 드러낸다.’이다. ‘비밀이었던 것이 밝혀진다.’ 또는 ‘숨겨진 사건이 폭로된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신학자들은 구약성서의 다니엘서와 신약성서의 요한 계시록을 묵시록으로 분류한다.
계시록의 성격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는 보통 세 가지로 나타난다. 첫째는 ‘계시록’이고, 둘째는 ‘예언서’이며, 셋째는 ‘묵시록’이다. 그래서 ‘계시’와 ‘예언’과 ‘묵시’의 차이점에 대해서 먼저 살펴보기를 원한다.
(1) 계시(啓示)
‘계시’(Revelation/Ἀποκάλυψις)는 초월자 하나님의 현현(顯現)을 의미한다. 현현(顯現)이란 변신(變身,Theophany)과 거의 같은 뜻이다. 하나님은 다양한 변신으로 자신을 인간에게 드러내신다. 그러니까 계시의 모습은 변신한 모습인데, 하나님의 참 모습, 하나님의 온전한 모습이 아니라, 인간이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범위 내의 모습이다.
그리스신화를 빌리면 계시가 무엇인가를 쉽게 설명할 수 있다. 올림포스의 최고의 신인 제우스는 난봉꾼으로서 예쁜 여신들뿐 아니라, 인간의 딸들까지 넘보곤 했다. 번개였던 제우스가 자신의 본모습으로 인간에게 나타날 경우, 인간은 새까맣게 타죽고 만다. 그래서 백조나 황소나 건장한 청년으로 변신해서 인간 세상에 나타나 알크메네와 세멜레와 같은 인간 여성들을 꼬드겨서 임신을 시키곤 했는데, 그들의 아이들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들이 헤라클레스와 디오니소스이다. 디오니소스를 임신한 세멜레는 유모로 변신해서 인간 세상에 나타난 제우스의 부인 헤라에게 속아서 제우스에게 스튁스강에 맹세케 하고 본모습을 보여줄 것을 간청한다. 죽음의 세계인 음부 한가운데를 흐르는 증오의 강인 스튁스강에 대고 맹세하면, 제우스라도 돌이킬 수 없는 것이어서 제우스는 세멜레 앞에 번개로 나타나게 되고, 세멜레는 디오니소스를 임신한 채로 새까맣게 타죽고 만다. 제우스는 5개월밖에 안된 디오니소스를 세멜레한테서 끄집어내어 자신의 허벅지 속에 숨겨 남은 5개월을 채워 출산시키고 있다.
그리스신화에서 보듯이 성서에서도 하나님이 여러 형태의 변신한 모습으로 인간들에게 보이시고 말씀하셨다.
첫 번째 계시의 형태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이다. 성서는 천지만물의 창조주이시고, 인류의 구세주이신 하나님을 드러내 보인다.
두 번째 계시의 형태는 하나님이 예수님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과 속성들을 드러내셨다. 예수님 안에서 죄로 인해 죽어 마땅한 우리 대신에 십자가에 못 박히신 하나님, 그 사실을 믿는 자들에게 영생의 복을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 발견된다.
세 번째 계시의 형태는 인간 안에서 활동하시는 성령님이시다. 하나님의 깊은 것조차 통달하시는 성령님은(고전 2:10)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도록 일깨워준다.
네 번째 계시의 형태는 머지않은 장래에 다시 오실 그리스도님이시다. 하나님의 우편 보좌에 앉으신 그리스도님의 모습도 계시의 한 형태이다.
다섯 번째 계시의 형태는 인간의 역사 속에 개입하신 사건들이다. 만물을 존재케 하신 창조사건, 출애굽사건과 십자가사건과 같은 구원사건이 계시적 사건들이다. 이밖에도 모세시대의 구름기둥, 불기둥, 불붙는 떨기나무, 예수님의 부활사건, 능력 행하심이 다 계시적 사건들이다.
이런 다섯 가지 측면에서 볼 때, 요한계시록은 하나님의 계시의 글이다. 계시록이 하나님의 역사경륜과 계획을 환상과 말씀으로써 드러내 보이기 때문이다.
(2) 예언(豫言)과 묵시(黙示)의 공통점
예언(Prophecy)과 묵시(Apocalypse/Ἀποκάλυψις)의 공통점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첫 번째 공통점에서 예언과 묵시는 하나님의 뜻을 민중에게 전한다는 점에서 같다. 그러나 예언에서는 민중의 기대와는 관계없이 하나님의 뜻만을 전하고, 묵시에서는 세상에서 좌절한 민중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두 번째 공통점에서 예언과 묵시는 박해나 배교의 위기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같다.
세 번째 공통점에서 예언과 묵시는 점차적으로 전 세계, 전 역사의 운명을 논한다는 점에서 같다. 그러나 예언에서는 주로 회개와 사회개조를 부르짖고, 묵시에서는 우주의 개조와 천상의 비밀을 공개한다.
네 번째 공통점에서 예언과 묵시는 목적과 시대환경과 방향에 있어서 유사성이 있다. 예언자들은 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들이고, 묵시록 저자들은 주로 하나님의 계시를 보는 자들이다.
다섯 번째 공통점에서 예언자나 묵시록 저자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신의 영감, 곧 성령님의 감동과 감화를 경험한 자들이다.
(3) 예언(豫言)과 묵시(黙示)의 차이점
예언(Prophecy)과 묵시(Apocalypse/Ἀποκάλυψις)의 차이점들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첫 번째 차이점에서 예언자들은 시내산 언약(토라율법,Torah)의 내용을 성찰한 해석자들이었고, 묵시록 저자들은 구약성서에 기록된 역사적 사건들을 성찰한 해석자들이다.
두 번째 차이점에서 예언은 단편적인 글인데 반해서 묵시록은 사상체계에 있어서 비교적 통일성을 이루고 있다.
세 번째 차이점에서 예언은 그 목표가 국민생활 전체에 관한 것이 많은 데 반해서 묵시록은 개인의 신앙생활이 문제가 되고 있다. 신학자 몰트만은 예언을 민족경륜으로 묵시록을 시대경륜으로 분류하였다. 따라서 예언은 언제나 현재적인 상황에서 각 시대의 요청에 따랐고, 묵시록은 역사성을 무시한 채 종말론적인 세계관을 제시한다.
네 번째 차이점에서 예언과 묵시록의 형성 시기는 각각 다르다. 예언은 주로 바벨론유배전후시대인 주전 7-5세기로 볼 수 있으나, 묵시록은 주전 2세기에서 주후 1세기말까지로 볼 수 있다.
다섯 번째 차이점에서 예언은 저자 자신의 이름으로 되어 있으나, 대개의 묵시록은 가명으로 되어 있다. 가명을 쓴 이유는 문헌의 권위를 내세우기 위함이었거나, 박해 때문이었을 것이다.
계시와 예언과 묵시 모두가 다 하나님의 본질과 속성과 구원의 뜻과 역사경륜과 섭리와 계획을 선포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고, 각각의 장르가 독특하다는 점에서 다르다. 계시는 하나님의 본질과 속성과 뜻이 변신의 형태로 나타나거나 예언자들의 입과 묵시록 저자들의 글을 통해서도 나타나지만, 하나님의 구원활동 그 자체를 계시로 볼 수 있다. 한편, 예언은 예언자들의 회개운동과 회복운동에서 나타나게 되는데, 회개운동은 현재적이고, 예언은 미래적이다.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올 때 하나님께서 베푸실 회복프로그램에 관한 내용이 예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묵시는 문학적인 글에 가까운 것으로써 예언보다는 희망을 담은 권면(설교)의 성격이 강하다. 이런 여러 가지 측면에서 볼 때, 요한계시록은 하나님의 계시의 글이면서, 예언의 글이기도 하지만, 묵시적 성격이 훨씬 강한 글이다.
(4) 묵시(黙示)와 종말(終末)의 차이점
종말은 ‘끝’이라는 말에서 왔고, 세상 역사의 마지막을 의미한다. 그러나 묵시는 종말의 시간 속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환상과 상징적인 현상을 말한다. 그러므로 종말은 시간의 문제이고, 묵시는 종말의 시간 내에 일어나는 현상의 문제이다.
신약성서에서의 종말론은 유대교의 미래종말론이나 일부 기독교인들의 시한부종말론과는 크게 다르다. 신약성서 종말론의 특징은 현재종말론이다. 현재종말론이란 종말이 성령의 오심과 능력으로 ‘이미’ 지상의 교회 안에서 출범했다는 가르침이다. 이를 다른 말로 시작된 종말이라고 부른다. 유대교에는 이 시작된 종말론이 없다. 신약성서가 ‘아직’ 이뤄지지 않은 미래종말을 여전히 희망한다는 점에서 묵시문학사상에 한발을 걸치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전통적인 묵시문학사상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미래에 있을 하나님의 영광 또는 하나님의 승리가 그리스도인들의 현재적 삶속에서 이미 영적으로 성취된 사실을 강조하면서 종말은 이미 그리스도인의 삶속에 현존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기뻐할 수 있고, 새로운 피조물임을 선언할 수 있으며, 환란과 핍박을 막연히 견디거나 종말의 축복을 막연히 기다리지 않고, 오히려 성령의 능력과 인도하심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평화를 미리 맛보고, 누리며 바랄 수 있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