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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7-09-20 23:10
유대인들의 추석명절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4,662  
유대인들의 추석명절(레 23:39-43, 요 7:37-39)

유대인들의 추석명절이란 ‘숙콧’(Sukkot)이라 불리는 초막절을 두고 하는 말이다. 숙콧 초막절은 우리나라의 추석명절과 같은 날에 같은 의미로 지켜진다. 다만 유대월력의 윤달인 ‘제2아달’월이 있는 달이면 우리보다 한 달 뒤진 다음 달 보름에 지켜진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추석명절인 초막절을 유대월력인 티쉬리월 15일부터 21일까지 7일간의 축제로 성대하게 지킨다.
초막절의 첫 이틀과 마지막 날에는 특별한 예배가 거행되며 전통적인 성결의식이 행하여진다. 따라서 처음 이틀간은 일할 수 없다. 또 각 가정과 회당에서는 매일 아침 간략한 예식이 행하여진다. 오른손에는 버드나무로 연결한 종려가지를 들고, 왼손에는 이스라엘 소산의 아름다운 과일인 시트론을 들고 축복서가 낭송되며 그 후 그것을 동쪽인 전방을 향해서 흔들고, 남쪽인 오른쪽, 서쪽인 뒤쪽, 북쪽인 왼쪽, 그리고 위와 아래에서 각각 흔든다.
초막절 첫날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초막(숙콧)을 짓고, 과일로 장식하며 식탁과 의자 등을 설치한다. 초막은 대개 천으로 만들며 바닥은 널빤지를 지붕은 나뭇잎과 가지들을 이용하여 만든다. 초막을 짓는 이유는 조상들이 애급 땅에서 탈출하여 광야(사막)에서 40년간 천막생활 했던 것을 상기하기 위한 것이다. 유대인들은 이 7일간 초막에 촛불을 켜놓고 절기음식을 먹으며 노래하거나 대화를 나눈다. 여건이 허락하는 한 초막에서 먹고 자면서 최대한 오랜 시간을 보낸다.
초막절을 지키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조상들을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구원하신 것과 조상들이 광야에서 40년 동안 천막에서 생활한 것을 잊지 않기 위한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이집트를 탈출하여 바로 가나안 땅으로 향하지 못했고, 사람이 살기 어려운 광야에서 40년간 유랑하며 천막생활을 하였다. 광야라서 달리 먹고 살만한 식물도 없었고 물도 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그토록 어려운 환경을 오랫동안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 반석에서 생수를 내어 마시게 하셨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 먹게 하셨으며, 옷과 신발이 닳아 해어지지 않게 하셨다. 40년 후 그들은 드디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 살게 되었는데, 마치 미국인들이 추수감사절 때 그들의 조상 청교도들이 미 대륙에 건너가 초기에 겪었던 어려움을 기리기 위해서 그들이 먹었던 칠면조와 호박파이를 만들어먹고 기념하듯이, 유대인들도 조상들이 광야에서 천막생활을 하며 고생 중에 하나님의 은혜로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고 반석에서 나는 생수를 마셨던 일들을 상기하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둘째 이유는 가나안 땅을 선물로 주시고 비를 내려주셔서 열매를 맺게 하시고 곡식을 거두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바치기 위한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한해에 세 번 추수감사제를 드린다. 초실절이라 하여 3-4월 달에 닿는 유월절 안식일 다음날에 첫 수확한 보릿단을 바치는 축일이 있고, 맥추절이라 하여 초실절로부터 50일째가 되는 날, 즉 5-6월 달에 닿는 오순절 날에 첫 수확한 밀을 봉헌하는 축일이 있다. 그리고 유대인의 추석명절이자 추수감사절인 9-10월에 닿는 초막절이 있다.
유대인의 추석명절인 초막절은 수확을 마치고 먹고 쓸 것이 풍성한 바로 그 순간에 가난하고 힘들었던 때를 회상하고 체험하는 뜻 깊은 축제이다. 오곡백과를 거두게 하시고, 조상들을 시련 가운데서 살아남게 하신 하나님께서 자기들과도 영원토록 함께 하실 것을 기원하면서 기쁨으로 드리는 감사축제이다.
유대인은 초막절에 이어서 제8-9일째 날, 곧 티리쉬월 22-23일 이틀간 ‘심핫 토라’(Simhat Torah)라 불리는 특별한 ‘토라축제,’ 즉 말씀축제를 갖는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제8일째 날은 '제8일째 날의 모임'이란 뜻을 가진 '쉐미니 앝제렛'(Shemini Atzeret)이고. 제9일째 날이 '심핫 토라'이다.
이스라엘에서는 초막절 직후에 지키는 ‘쉐미니 앝제렛’이 ‘심핫 토라’ 즉 말씀축제에 속하고, 이스라엘 밖에서는 ‘심핫 토라’가 ‘쉐미니 앝제렛’에 속하는 날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밖에 사는 해외교포 유대인들은 초막절이 끝나고 이틀째 되는 날, 곧 티리쉬월 23일에 말씀축제를 갖는다.
초막절 직후에 지키는 ‘쉐미니 앝제렛’은 '제8일째 날의 모임'이란 뜻인데, 그 의미에 대해서 랍비들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은 마치 축일 때에 자기 집을 찾아와준 방문객들과 여러 날을 즐겁게 보낸 후에 떠나려는 방문객들에게 하루 더 묵어갈 것을 권하는 집주인과 같아서 온 인류를 위한 초막절 축제가 끝난 후에도 특별히 유대인들에게만 더 긴밀한 사귐을 위해서 하루 더 묵어가도록 초대하신다는 것이다. 그 특별한 날이 바로 초막절 직후인 제8일째 날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8이란 숫자가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과 관심과 하나님의 특별한 초대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초창기 기독교인들은 제7일째 날인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제8일째 날인 일요일을 주님의 날로 지켰다. 공교롭게도 예수님의 이름이 헬라어음가로 888이고, 기독교인의 상징인 물고기를 세워놓은 숫자가 또 8이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과 메시아로 소개한 마태는 예수님의 8복과 8개의 천국비유와 8개의 종말비유를 소개하고 있다.
초막절이 끝나고 이틀째 날에 지키는 ‘심핫 토라’는 ‘토라 속에서의 기쁨,’ 곧 ‘말씀을 통한 기쁨’이란 뜻이다. 유대인들은 일 년에 한차례씩 토라, 곧 모세오경을 완독하게 되는데, 이날이 바로 그 날이다. 매주 회당예배 때에 창세기 1장부터 시작하여 신명기 34장까지 공개적으로 몇 장씩 읽는다. 심핫 토라 때, 곧 초막절이 끝난 이틀째 날에 그 마지막 부분을 읽게 되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즉시 다시 창세기 1장에로 돌아간다. 토라는 일년주기로 읽히는 일종의 사이클(원)이기 때문에 결코 끝나지 않는다는 점을 상기시키기 위한 것이다.
이날 토라읽기를 다 마치면 토라 두루마리 성경을 들고 회당주변을 행진하면서 충만한 기쁨으로 마음껏 노래하고, 토라와 더불어 회당에서 춤도 추고, 와인도 마시며 축하한다. 이 때 가능한 한 많은 사람에게 토라 두루마리 성경을 운반하는 명예가 주어진다. 어린아이들은 토라 두루마리 성경이 무겁기 때문에 가벼운 모조품 두루마리를 이용한다. 이날은 특별한 날이기 때문에 안식일 여부에 관계없이 일을 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조상들을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구원하시고, 그들을 광야에서 40년 동안 보살펴주셨으며, 가나안 복지로 인도하셨다. 또 때를 따라 비를 내려주셔서 풍성한 오곡백과를 거두게 하신다. 그래서 초막절 축제 때 하나님께 감사를 돌리고, 이어서 '쉐미니 앝제렛'축일을 두어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과 사랑과 선택에 대해서 느낄 수 있게 하며, 또 다음 날 ‘심핫 토라’ 축일을 두어 하나님이 언약으로 주신 계명의 말씀들을 완독하여 영광을 돌리며, 그 기쁨을 마음껏 발산하게 한다. 이렇게 유대인들은 추석명절을 뜻 깊게 지키면서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와 찬미를 돌리며 추수감사절을 지킨다.
예루살렘에 성전이 있던 시절에는 초막절 날 제단에 제물을 올려놓고 물을 부었다. 보통은 포도주를 붓지만 이때만큼은 실로암 연못에서 떠온 물을 부었다. 물을 부을 때, 이사야서와 시편의 말씀을 낭송하면서, “풍성한 비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년(유대력으로는 금년)에도 풍성한 비를 주셔서 농사가 잘 되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원했다. 특히 초막절의 마지막 날을 ‘Hoshanah Rabbah’라 부르는데, ‘Hoshanah’는 ‘제발 우리를 구원하소서! 란 뜻이고, ‘Rabbah’는 ‘큰’이란 뜻이다. 따라서 ‘호산나 라바’는 ‘큰 구원’이란 뜻을 갖는다. 그렇지만 이 날은 ‘심판의 날,’ 혹은 하나님의 ‘사죄의 날,’ 곧 구원을 위한 ‘통회의 날’로도 알려져 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미 그들이 ‘심판의 날들’로 여기는 ‘설날’(Rosh ha-Shanah)부터 ‘대속죄일’(Yom Kippur)까지의 열흘 동안 충분히 회개의 눈물을 흘렸고, 또 생명책이 인봉되는 ‘대속죄일’을 심판의 날로 보기 때문에 초막절 제7일째 날을 ‘심판의 날’로 보는 입장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문제가 남는다.
이스라엘에서는 초막절 때로부터 시작되어 주로 한 겨울에 비가 내린다. 이 기간에 강수량이 얼마만큼이 되는가에 따라서 한 해 농사의 성패가 달려 있다. 그런데 티쉬리월 1일부터 21일까지, 즉 설날인 ‘로쉬 하샤나’로부터 대속죄일인 ‘욤 키프르’를 거쳐 초막절 마지막 날인 ‘호산나 라바’에 이르는 21일 동안에 유대인들이 흘리는 회개의 눈물에 따라 한 해 농사에 필요한 강수량이 결정되는 심판의 기초가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초막절 마지막 날의 심판은 강수량에 관한 심판의 날이 되는 셈이다. 결국 초막절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풍성한 비를 간구하는 기원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초막절 마지막 날에는 실로암 연못에서 떠온 물을 계속해서 제단에 붓고 내년에도 풍성한 비를 주실 것을 기원하였다.
이 특별한 날 곧 초막절 마지막 날에, 요한복음 7장 37-39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37-38절)고 외치셨다. 성경은 “생수의 강”을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39절)고 설명해 놓고 있다.
왜 예수님은 이 큰 축제의 날에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고 외치셨을까? 추수와 관련해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물은 정말 황금보다 귀한 것이었다. 메마른 대지를 적실 수 있는 것은 물이다. 타는 목마름을 해소할 수 있는 것도 물이다. 자라나는 식물들을 키워낼 수 있는 것도 물이다.
그러나 근원적인 문제에 접근하셨던 우리 예수님은 인생의 추수를 식물의 추수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년(유대력으로는 금년) 추수를 결정 짓을 풍성한 비를 비는 기원제가 진행되는 시점에서 물을 성령 충만의 상징으로 인식하시고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고 외치셨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했을지 알 수 없지만,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은 의식주나 유대교가 채워주지 못한 2프로(퍼센트) 부족을, 다시 말하면, 마시고 또 마시고 아무리 마셔도 해소되지 않는 민중의 갈증을 근원적으로 해결시킬 수 있는 어떤 방법을 제시하신 것이다.
성서에서 예수님은 반석의 물로 표현되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0장 4절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마신 반석의 물이 신령한 반석이신 그리스도의 모형이라고 말씀하셨다. 또 요한복음 4장 14절에서 예수님은 영적으로 목말라하는 수가성의 여인에게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말씀하셨다. 또 요한복음 7장 39절에서는 우리 속에서 흘러나올 생수의 강이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받게 될 성령님을 뜻한다고 하셨다. 그러시면서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말씀하셨다.
이 뜻밖의 외침은 초막절 추석명절을 지키던 유대인들이 여전히 목말라했던 것, 여전히 그들의 갈증을 채우지 못했던 것을 예수님이 채워주시겠다는 선포였다. 배운 자나 못 배운 자나, 가진 자나 못 가진 자나, 고귀한 자나 천한 자나 다 같이 느끼는 그 타는 목마름을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께서 성령님을 주셔서 생수의 강물로 시원하게 해갈시켜 주시겠다는 것이다. 포도주가 떨어져서 어찌할 바를 몰라 했던 가나혼인잔치의 혼주처럼, 참된 진리에 목말라했던 율법학자 니고데모처럼, 애정에 목말라했던 수가성의 여인처럼, 죽어가는 아들을 살리고 싶은 목마름에 한순간도 눈을 부칠 수가 없었던 왕의 신하처럼, 38년간이나 도움의 손길을 목 타게 기다렸던 베데스다 연못가의 환자처럼, 살아남으려고 안간힘을 썼던 폭풍만난 제자들처럼, 목자 없는 양떼처럼 유리방황하는 민중처럼, 채울 수 없는 타는 목마름에 허덕이는 사람들에게 외치셨던 것이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