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작성일 : 09-02-05 08:07
문제의 실상을 보는 힘
|
|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5,148
|
▶문제의 실상을 보는 힘◀
죽음을 앞에 둔 사람들은 대부분 마음이 너그러워진다. 왜 그럴까? 죽음을 앞두면, 살았다는 이름만 갖고 있었지, 실상은 죽어 있어서 볼 수 없었던 진실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죽음을 앞둔 사람들은 너그러워지게 되고, 미움을 버리게 되고, 두려움 없이 사랑하게 된다.
아동문학가 이현이 쓴 책 가운데 장수 만세란 것이 있다. 죽은 후에 자기 가정의 실상을 보게 된 초등학교 6학년짜리 혜수가 오빠의 자살을 막고 가정을 살리기 위해서 펼치는 모험담이다.
혜수네 가정은 한마디로 평범한 가정이다. 주류회사 영업부 ‘만년 과장’인 아버지는 업무상 술을 자주 마시지만, 가족부양의 책임을 묵묵히 다하는 성실한 가장이다. 엄마는 ‘내 인생은 아이들의 것’이라며 자식의 학교 성적에 목매달고, 대출금 갚기 위해 억척스럽게 사는 이 시대의 대표적인 ‘아줌마’이다. 고등학교 1학년생인 아들 장수는 초등학교 때부터 전교 1등을 놓쳐본 적 없는 재원이라 거는 기대가 컸다. 그러나 특별한 재능이 없는 혜수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학원 ‘뺑뺑이’를 돌고, 학습지와 숙제를 하느라 밤늦도록 책상 앞에서 씨름하는 엄마의 꼭두각시였다.
그런 혜수가 필리핀영어연수를 앞두고 자신의 집 17층 베란다에서 늦은 밤에 정체불명의 시커먼 물체를 유심히 살핀다고 창밖으로 상채를 내밀었다가 떨어져 죽었다. 그런데 혜수가 죽은 것은 저승사자들의 실수였다. 죽을 사람은 혜수가 아니라 오빠인 장수였던 것이다. 혜수는 자신이 염라국 입국심사과장의 착오로 죽게 된 것과 오빠가 자살을 하려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혜수는 염라국 입국심사과장에게 “오빠의 죽음을 일주일 뒤로 미뤄주지 않으면, 염라대왕에게 이 중대한 실수를 일러바치겠다.”고 협박을 한다. 결국 혼령으로 이승에 살아 돌아온 혜수는 비로소 자기 가족의 실상을 보게 된다.
혜수네 집은 한마디로 ‘지옥’이었다. 누구도 행복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가족들을 위해 충분한 돈을 벌지 못하는 처지를 비관하고, 이를 만회해보려고 주식에 손을 댔다가 어렵게 마련한 집마저 날릴 처지였고, 어머니는 자신의 인생을 아이들에게 바친 대가로 ‘고맙다’는 말은커녕 ‘아이들을 닦달하는 지긋지긋한 엄마’로 취급받았다. 오빠 장수는 최악이었다.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으려고 지나치게 공부하다가 난독증에 걸려 글자를 읽을 수 없게 되었고, 모의고사에서 전국 최하위의 성적을 받게 되자, 자살을 결심하게 된다. 혜수네 집은 사랑한다는 이유로 서로를 옭죄고, 악하고 음란한 세상이 만들어 놓은 기준에 ‘싫어!’(No!)라고 외치지 못하고, 스스로를 감옥에 가두는 바람에 모두의 ‘지옥’이 되었다. 이후의 이야기는 현실을 직시한 혜수가 오빠를 살리기 위해서 기발하고 발랄한 모험을 펼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 작품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우리가 진실로 죽기를 각오할 때, 살날이 한 달도 남지 않은 사람처럼 모든 것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문제의 실상이 눈에 보이게 되고, 그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