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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2-10-08 08:26
마틴 Martin, Hal H.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878  

마틴 Martin, Hal H. 미국 그리스도(인)의교회(Christian Churches and Churches of Christ) 군목

할 마틴(Hal H. Martin)은 미국 그리스도(인)의교회 소속의 목사였다. 애리조나 주에서 1910년경에 출생하였고, 부인 에블린(Evelyn)은 마틴보다 한 살 많았다. 군목이 되기 전에는 캘리포니아 주 린제이(Lindsay)에서 목회하였다. 공군 군목으로 입대하여 대령까지 진급하였다. 마틴 가족은 군인이었기 때문에 수없이 옮겨 다녀야했다.

할 마틴(Hal Martin)은 일본 큐슈에서 복무하고 있을 당시인 1947년 1월초에 일본에 도착한 채이스를 마중 나갔고, 1947년 초가을에는 한국근무를 명받고 부인 에블린과 아들 게리(Gary)를 데리고 한국에 왔으며, 김포 항공기지에서 근무하였다. 마틴은 선교사가 없었던 1947-48년에 최상현 목사를 비롯하여 그리스도(인)의교회 관련자들을 자주 만났고 그들에게 도움을 주었다. 채이스 선교사는, 1947년 말까지도 미국정부가 한국에 선교사 가족들이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으므로, 하나님께서 일본에 주둔하고 있던 군목 할 마틴을 한국으로 보내 내국인 사역자들과 교회들을 돕게 하신 것이라고 믿었다. 마틴은 최상현 목사와 함께 부강에 내려가 1946년에 환원한 김은석 목사와 그곳에서 진행된 신화신학 성경연구회 신학생들에게 그리스도(인)의교회에 대해서 가르쳤다. 신화신학 성경연구회는 김은석 목사와 의사였던 신현창 장로가 합심하여 부강그리스도(인)교회에서 조직한 이동(移動) 목회자양성소였다. 1950년대에 충청이남지역에 수십 개의 그리스도(인)의교회들을 개척한 목회자들이 대부분 이 신화신학연구회 출신들이었다.

할 마틴은 탁구선수였기 때문에 사병들로부터 인기가 좋았다. 마틴이 미군정시대에 김포 항공기지에서 근무할 당시에 그에게 영향을 받아 제대 후 신학교에 입학한 어린 사병이 있었다. 그가 바로 한국전쟁 중에 선교사로 돌아와 존 힐(John J. Hill)과 함께 서울 송월동 기독교회선교부에서 사역한 폴 잉그램(Paul Earnest Ingram)이다. 그는 14살에 권투선수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많은 경기에서 승리하였으나 학업을 중단하고 16세 때 군에 입대하여 한국에서 근무하였다. 1948년 4월에 잉그램은 다른 네 명의 군인과 함께 마틴으로부터 침례를 받았다. 그리고 한국에 선교사가 되어 돌아오겠다고 결심한 잉그램은 이렇게 말했다. “저는 한국에서 그리스도를 찾았습니다. 그분을 그곳으로 다시 모셔가겠습니다. 그곳은 갈기갈기 찢긴 나라입니다”(I found Christ in Korea. I'm going to take him back there. It’s a torn-apart country). 그리고 잉그램은 19세 때 제대를 하고, 링컨성경학교(1944년 설립, 현 Lincoln Christian University)에 입학하여 23세 때인 1952년에 졸업하였다. 잉그램은 학생시절부터 인디애나 주 코빙턴(Covington)에서 이미 3년째 목회를 하고 있었다. 목사안수를 받은 후 부인 조안(Joan)과 어린 두 자녀들을 데리고 한국에 선교사로 왔다. 입국 당시에는 한국이 전쟁기간이어서 존 힐 가족과 함께 일본에 거주지를 정하고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선교하였다.

마틴의 아들 게리(Gary F.)는 1938년 11월 5일 캘리포니아 주 메이필드에서 태어났다. 게리도 아버지처럼 미 공군에서 현역 및 예비군으로 30년 넘게 근무하였다. 퇴역 후 오랜 투병 끝에 2004년 1월 2일 별세하였다.

Gary Martin Obituary (2004) - Las Vegas, NV - Las Vegas Review-Journal (legac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