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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2-01-27 08:56
버지니아 힐 선교사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1,633  

Hill, Carol Virginia 미국 그리스도의교회(Christian Churches and Churches of Christ) 선교사.

존 J. 힐(John Jesse Hill)과 에스더 에벌린 비반즈(Esther Evelyn Beavans)의 맏딸로서 오자크기독대학(Ozark Christian College)에서 기독교교육학을 전공한 후, 독립선교사의 자격으로 ‘한국크리스챤밋숀’(Christian Mission to South Korea)에서 사역하기 위해, 1966년 8월 29일 입국하였다. 한국성서신학교(Korea Bible Seminary)에서 기독교교육, 영어회화, 영어성경을 강의하였고, 여성3중창을 지도하여 조 가맨(Joe R. Garman) 선교사의 부흥전도여행(1967년 10월 18일부터 12월 30일까지) 때 찬양을 불렀다. 이밖에도 충남대학교에서 영어회화를 매주 4시간씩 강의하고, 선교사 자녀, 의사, 직업군인, 간호실습생에게, 또 대학생친목회(University Fellowship Club)에서 영어성경을 가르쳤다. 또한 틈틈이 영아원, 논산 에덴보육원, 부산 성광원, 임홍만 목사의 장호원, 기독중학교, 교회들을 방문하고, 극빈 속에서 헐벗고 굶주리는 신학생, 목회자, 영아, 고아, 복음중학교 학생, 대전 수침교 아래 거지들의 의식주를 걱정하며, 지속적으로 미국의 형제들에게 목적헌금(임홍만 목사의 기독중학교, 논산에덴보육원, 부산 성광원, 한국성서신학교 운영기금, 목회자 후원기금 등), 특별지원(헌옷가지, 겨울옷가지, 기독교서적, 각종 사전류, 성서지리 궤도, 성경, 카메라 필름 등) 등을 요청하였다. 

버지니아는 1968년 4월 22일 논산 에덴보육원으로부터 인수받은 15명의 고아와 당진에서 온 2명의 남자아이를 데리고, ‘버지니아의 보육원’(Virginia's Orphange)으로 알려진 ‘대전 크리스천 보육원’(Taejon Christian Orphanage)을 개원하였다. 보모로는 김은미, 김부금, 조선희, 김은희, 유문자 등이 수고하였다. 보육원은 원래 세계보건기구 공무원인 엘리자베스 멈이 임대하여 거주하던 선교부의 일층에 있었는데, 후에 한국성서신학교 교내에 건립된 ‘스나이더 홀’이라는 단층 주택에 입주하였다. 

버지니아는 1969년 5월 30일에 안식년을 맞아 미국으로 돌아가는 힐 부부와 함께 본국으로 돌아갔다. 미국에서 1971년 10월 7일 하비 벤두어(Harvey Bendure)와 결혼하고 미국에 정착했지만, 한동안 대전 보육원의 후원금을 관리하는 현지 대리인으로 수고했다. 자녀로는 딸 에이미(Aimee,) 수산나(Susannah), 룻(Ruth)을 두었다.

[주요저술]

“A Typical ‘CHU_IL’ (Lord’s Day) for a Korean Christian,” Christian Mission to South Korea Missionary Virginia Hill, 1967년말: 3; “Dear Friends,” Christian Envoy to South Korea, October 14, 1967: 2.; Christian Envoy to South Korea, 1968년초: 2; Christian Envoy To South Korea: Virginia Hill-Missionary's Newsletter, Jun. 1966-May 1969.

[참고문헌]

백종구, 조동호, 『한국 그리스도의교회의 역사』, 쿰란, 2018; 존 J. 힐, "韓國 「그리스도의 교회」 略史", 「쎄메론」7호(1972), http://kccs.info/rmp002.htm; 노봉욱 편저, 『힐 요한 선교사의 한국선교』, (재단법인)한국그리스도의교회 유지재단, 2006.

백종구(전 서울기독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