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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7-05 16:10
윤낙영 목사(자료 추가)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2,733  

윤낙영 목사는 1930-40년대 동안 그리스도(인)의교회에서 목회하였다. 윤낙영 목사는 1920년에 세례를 받고 동경성서학원(성결교)에서 공부하였고, 슬하에 9명의 자녀를 두었다. 1927년 3월에 동경기독교회(성결교)를 설립하여 28년까지 시무하였고 풍교교회와 3개의 기도처를 개설하였다<‘기독교대한성결교회 해외선교위원회,’ http://kcm.kr/dic_view.php?nid=40150: 208.11.28 입력> 1930년대에는 그리스도(인)의교회 선교사 윌리엄 커닝햄이 세운 도쿄 요츠야선교부에 고용되어 조선선교회 기독교회(포교관리자 이인범 목사) 산하 기독교회들(아현정, 영등포)을 개척하였다. 

요츠야선교부의 조선선교회 기독교회 서울 제4교회였던 아현정기독교회는 윤낙영 목사에 의해서 12명이 침례를 받고 1938년 5월 8일 아현정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고되었다. 이권신 여전도사가 이 교회를 도왔다. 그러고 나서 윤낙영은 영등포기독교회의 담임목사로 선정되었다. 이때 비로소 포교관리자 이인범 목사는 1938년 8월 22일 포교규칙 제2조에 의거 기독교회 조선선교회 윤낙영(경기도 경성부 흑석정 37번지)의 포교계를, 기독교회 조선선교회 영등포기독교회(경기도 경성부 영등포정 256번지)의 포교소설치계를 포교규칙 제9조에 의거 계출하였다. 또 포교규칙 제10조에 의거 영등포기독교회에 윤낙영(경기도 경성부 흑석정 37번지)의 포교담임자선정계를 계출하였다<조선총독부관보 제3567호 4-6면(소화 13년 12월 8일)>.

해방 이듬해인 1946년에는 한국기독교장로회 증평교회에서 목회하였다. 그리고 존 T. 채이스(John T. Chase) 선교사가 1948년 10월 17일에 서울에 도착하여 1949년 2월 중순까지 한국에 체류할 당시에 윤낙영 목사와 그의 아현동교회는 성낙소의 인도로 ‘기독교회선교부’의 교회들에 합류되어 있었고 1940년대 말까지 아현동에서 목회하였다.

윤낙영 목사의 아현동 그리스도(인)의교회는 좁고 가파른 흙길 언덕에 있었다. 채이스는 1949년 1월 12일 수요일 밤에 설교하기 위하여 이 교회에 가야했다. 감기에 걸린 상태인데다가 눈까지 쌓인 밤이었다. 교회에 오가는 길이 너무 더럽고 미끄러웠다. 그러나 일행이 도착할 무렵에 80여명의 교인들이 2층의 천정이 낮은 두 개의 방을 메우고 있었고 힘차게 찬송을 부르고 있었다. 천정이 너무 낮아 채이스는 상체를 꼿꼿이 세우지 못한 상태에서 설교를 마쳐야했고, 예배 후 아래층에서 다과를 먹는 중에 채이스는 예배가 파했는데도 성도들이 흩어지지 않고 2층에 남아 여전히 힘차게 부르는 찬송소리를 들으면서 집이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을 해야 했다. 1949년 당시 성낙소 목사의 필운동교회가 윤낙영 목사의 생활비를 후원하고 있었다<“Too Many People?” and "The Year 1948" and “May I Introduce to You,” Korean Messenger, 1949년 3월호>. 아현동 그리스도(인)교회의 윤낙영 목사는 1949년 전반기경에 기독교회선교부(존 J. 힐 선교사)가 85달러를 주고 매입한  만리동 소재의 오래된 건물을 수리하여 교회를 새로 개척하였다<John J. Hill, "'Progress of Work in Korea Encouraging,' States John J. Hill, Missionary," Christian Standard, 25 June 1949: 405>.

김성철 목사의 증언에 의하면, 윤낙영 목사(아현동교회)의 집이 병점과 오산사이에 있었다는 것과 김은석 목사(부강교회)와 친분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은석 목사의 서울집이 아현동 금화산 언덕에 있었는데, 1950년에 이화여자대학원에 다니던 윤낙영 목사의 큰 딸과 언니 뒷바라지를 하던 여동생이 건넌방에서 셋방살이를 하고 있었다. 동년 8월에 12세의 김성철이 수개월간 병으로 자리에 누웠다가 겨우 회복된 양아버지 김은석 목사를 모시고 피난을 가던 중에 병점과 오산사이에서 윤낙영 목사의 집을 방문하였으나 둘째 딸만 집에 남아있고 가족이 모두 피신하였기에 만나지 못한바가 있었다[조동호, <한국의 바울 김은석 목사>(도서출판 시시울, 2020): 84-86]. 

1952914일 경기도 평택군 평택읍 평택리에서 기독교한국침례회 평택교회(평택시 비전동)를 개척하였고, 19543월 사임하였다<‘교회연역,’ http://www.ptbc1.net/main/sub.html?pageCode=4>. 1955년 7월 6일에는 기독교한국침례회 영등포교회 제3대 담임목회자로 부임하여 1958년 전반기까지 목회하였다<‘교회연역,’ http://youngchim.com/?page_id=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