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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5-07-08 11:18
장주열(1923.5.4~1983.12.18) 목사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4,022  
장주열 목사(1923.5.4-1983.12.18)

장주열은 최요한 목사의 큰 동서로 불교가정에서 자랐으나, 결혼하기 위해서 선을 본 여자가 예수를 믿지 않으면 결혼을 할 수 없다기에 그 여자와 결혼할 욕심으로 예수를 믿겠다고 약속하였다. 장주열은 약속대로 전남 함평군 엄다면 영흥리 영흥교회에서 학습세례를 받고 김순례와 혼인을 하였다.

1946년 1월에 전남지방을 순회하며 부흥회를 인도하던 김은석에게 큰 은혜를 받고, 영흥교회 장로를 설득하여 1946년 2월에 영흥교회에서 김은석이 인도하는 부흥회를 갖도록 하였으며, 손아래 동서인 최요한과 처제 김정녀를 그 부흥회에 초청하였다. 그 부흥회에서 최요한과 사모 김정녀, 장주열과 사모 김순례는 교우들과 함께 큰 은혜를 받았다. 그로 인해 일주일 하려 했던 부흥회가 열흘로 연장되었다.

이후 장주열은 최요한이 전남 함평군 손불면 신흥리에서 신흥 그리스도의 교회를 개척할 때 직접 교회당을 지었고, 10여리 떨어진 곳에서 신흥교회를 걸어 다니며 봉사하였다.

장주열은 동서 최요한, 함태영, 김재순과 함께 광주와 목포 신화신학 성경연구회에서 공부하였고, 1951년 늦봄에 광주에서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 교역자회로부터 김은석의 주례로 최요한, 김재순, 함태영, 이신, 김동열과 함께 목사안수를 받았다.

장주열이 충북 괴산군 소수면 수리교회에 부임하여 목회할 때 아들 장복남이 폭격을 맞아 위급한 상태였는데도, 기도하고 교회에 뉘어 놓고 전도를 나갔으며, 15일이 지나자 깨끗하게 치유되었고, 주일 날 성만찬을 하려고 잔에 물을 부으면 곧 예수님의 피같이 되었다고 김순례 사모는 회고하였다. 또 공산군에 잡혀 인민재판 중에도 몇 번이고 풀려났으며, 부산에서 성령 대부흥회를 인도할 때에는 조용기 목사까지도 장주열의 안수를 받았다고 김순례 사모는 회고하였다.

이후의 행적을 보면, 그는 1958년 5월 5일에 김은석 목사로부터 집중강의 일정을 통보받았고, 1961년 8월 17일 부강교회에서 ‘신약교회로의 환원’이란 주제로 그리스도의 교회 연합회가 개최되었을 때 참석하였으며, 60년대 중반에 한국성서신학교에서 개최된 그리스도의 교회 연합회에도 참석하였다. 1961년 3월 19일에는 힐 요한(통역 김찬영)을 초청하여 경기도 시흥군 안양읍 내천동 706번지에 소재한 안양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침례식을 거행하였고, 이듬해인 1962년에는 안양교회 예배당을 건축하였다.

장주열 목사는 청주교회, 수원교회, 안양교회 등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1983년 소천 하였다. 자녀로는 복남, 성순, 성례, 성님이 있다.


장주열(1923.5.4~1983.12.18) 목사

장주열 목사는 불교가정에서 자랐으나, 결혼하기 위해서 선을 본 여자가 예수를 믿지 않으면 결혼을 할 수 없다기에 그 여자와 결혼할 욕심으로 예수를 믿겠다고 약속하였다. 장주열은 약속대로 전남 함평군 엄다면 영흥리 영흥교회에서 학습세례를 받고 김순례와 혼인을 하였다.

예수를 믿고 난 후로는 얼마나 열심이었든지, 믿은 지 얼마 못되어 집사로 피택을 받았다. 한 예로 새벽 예배가 마치면 사택의 물독에 물을 채웠으며, 젊은이로써 담임 목회자의 손발이 되었다.

어느 날 인근지방에서 열린 부흥회에 열심히 참석하였는데, 그 집회가 바로 김은석 목사가 인도하는 집회였다. 그는 그 때 큰 은혜를 받고 영흥교회 담임 목회자에게 권하여 김은석 목사를 초청하여 부흥회를 열도록 하였다. 부흥회 기간에 성령의 역사가 강하게 일어나자 일주일 하려 했던 집회가 열흘로 연장되었다.

장주열은 은혜를 받고부터 도저히 예배참석만 하고 있을 수가 없어서 교회에서 나와 후에 목사가 된 최요한의 가정과 함께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다가 부흥이 되자 신흥리에 개척하였고, 수리교회로 옮겨 전도하다가 6.25를 맞게 되었다.

이 때 아들 복남이 폭격을 맞아 위급한 상태에서 교회에 뉘어 놓았는데, 15일이 지나자 깨끗하게 나음을 입었다. 장주열은 전쟁의 난리 중에서도 전도를 다녔고, 주일 날 가족과 함께 성만찬을 하려고 잔에 물을 부으면 곧 예수의 피같이 되었다고 김순례 사모는 회고하였다. 또 인민재판 중에도 몇 번이고 풀려나 청주교회, 수원교회, 안양교회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1983년 소천하였다. 자녀로는 복남, 성순, 성례, 성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