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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5-01 10:38
장성우 목사 자전적 에세이(6-10)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4,069  

 

장성우 목사의 자전적 에세이(6): 군대생활을 마치고 목사안수를 받다

장성우목사 가족사진, 장지은, 김순옥, 장성우, 장혁, 장지나

믿음에 내 인생을 걸고 하나님 편에 서서 살게 되었다. 전남 해남 동리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했고, 목사가 되어 장씨 가문에서 최초목사가 되었다. 유교적인 전통에 할아버지는 대처승으로 불교인으로 사신 분이기에 내가 신앙인이 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1979년 12월 13일 홍제동교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립보서 4장 13절) 하나님께 힘을 공급 받으면 불가능이 없다. 나는 그것을 믿는다. 결코 짧지 않은 생을 통해서 체험했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서서히 돌리고 계신 그분의 손을 믿는다. 아브라함에게 꿈을 주신 하나님, 이삭에게 복을 주신 하나님, 야곱에게 은혜를 주신 하나님, 그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셨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들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24:15)

1979년은 내가 목사안수를 받은 해가 되기도 하지만, 그리스도의 교회가 총회와 협의회로 분리되었던 해이기도 하다. 총회에서 조충연 목사가 총회장으로 선출되자 대한기독교신학교를 중심으로 별도로 최윤권 목사가 중심이 되어 신학교측인 그리스도의교회협의회를 구성했다. 총회측에는 김찬영 목사, 이종만 목사, 김규상 목사, 김진문 목사, 김태수 목사, 김정만 목사, 최순운 목사, 김철수 목사, 김용웅 목사, 등이 있었고, 후에 미국에서 돌아온 이신 목사가 합류했다. 나는 홍제동교회에서 그리스도의교회총회(총회장: 조충연 목사)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당시 목사고시위원장은 대한기독교신학교 교수였던 강병천 목사였다. 목사고시는 논문을 써서 심사통과를 봤는데, 이때 목사심사위원장은 해남교회를 개척해서 오랫동안 장로로 시무를 했던 김동수 목사였다. 안수위원으로는 조충연 목사, 김동수 목사, 김진문 목사, 김정만 목사, 최순운 목사 였다.

장성우 목사 안수 사진
서울 홍제동교회에서 안수원원 좌로부터 김정만 목사,
김진문 목사, 조충연 목사, 최순운 목사

서울에서 교회를 개척하고 초기에는 설교 준비를 하느라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설교를 해야 하고 심방해야 하는 것이 사역자의 길이었다. 설교하는 순간에는 거추장스러운 포장을 풀고 하나님 앞에 알몸으로 선 느낌이었다. 하나님 앞에 혼자서 서있는 기분이었다.

교수로서 신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면서 이러한 압박에서 많이 풀렸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서 사역하는 것과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것 중에 어느 것이 좋으냐고 묻는다. 어느 것이 더 좋으냐고 물으면 대답하기 쉽지 않다. 가치와 장단점이 다르니까 그렇다. 교회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모임이지만, 신학교는 교육을 통하여 사역을 하는 목회자를 양성하는 귀한 일을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내가 서울에서 개척한 교회를 계속 사역했다면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가장 큰 교회를 세울 수 있지 않을까...하는 아쉬움도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교회에서 사역도 하고 신학교에서 목회자를 양성하는 두 가지 일을 행하게 된 행운을 가졌다. 전국에서 목회하는 제자들이 많다. 섬에서 목회하는 제자들로부터 서울의 큰 교회까지 사역하는 제자들이 다양하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신학을 하면 만날 수 있을까, 교리를 깊이 연구하면 만날 수 있을까, 수백억을 들여 화려하게 지은 교회를 찾아가면 만날 수 있을까하고 생각한다. 하지만 주님은 그런 곳에 계시지 않는다. 신학의 무덤, 교리의 무덤, 교회당의 무덤에서 부활해서 주님은 그곳에 계시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신앙인의 마음속에 계신다. 이 평범한 진리를 알지 못해서 많은 사람이 방황을 한다.

생각해 보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복이 많다.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다. 많은 복중의 가장 큰 복은 '믿음'이다. 나도 사는 것이 힘들어 죽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두문불출하며 고통스러운 때를 보냈던 적이 있다. 그 때 어느 날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난 너를 쓸거야, 너는 사는 가치를 알게 될거야’ 나는 깨달았다. 나는 죽을 수 없고 살아날 것이며 결국은 승리하고 성공할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씨름했던 문제로부터 벗어났고 일어설 수 있었다. 죽지 않고 달려올 수 있었다. 그래서 '믿음'이 축복인 것이다.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 지 난 알 수 없도다. 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내 모든 형편 아시는 주님 늘 보호해주실 것을 나는 확실히 아네’

인기연예인이 군에 가기를 싫어해서 별의 별 방법으로 군에 안 가려고 하는데, 내가 군대 갈 때도 권력 있는 사람들은 군대에 가는 것이 싫어서 손을 써서 입대를 기피하려고 했다. 나는 5,16혁명이 나고 동대문 경찰서에 잡혀 들어가서 군대에 가겠다는 각서를 쓰고 나와서 군에 입대하게 되었지만, 논산훈련소에서 군인이 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훈련에 잘 적응되어 갔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 많이 들어 왔는데 같은 훈련병 중에는 훈련 받는 것을 무서워하면서 피하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훈련을 받으면서 ‘받을만하구나’ 생각했다. 표적을 향하여 M1 소총을 쏘는 훈련에서 명중을 하여서 좋은 성적을 받았다. 아! 나도 제법 잘하는구나! 감탄했다. 진흙 속을 기어가는 포복을 하면서, 머리 위에 총알이 쌩쌩 날아가는데 대열에 맞추어서 열심히 기었다. 내무반 생활도 잘 적응하고 논산훈련소 훈련을 끝냈다.

논산훈련소를 마치고 영천부관학교를 졸업하고 광주예비사단인 31사단 부관부행정과에서 군 생활할 때도 즐겁게 했다. 특별히 감사한 것은 부관학교를 나오고 부관부행정과에 근무하면서 군의 행정에 대하여 체계적으로 배워서 행정에 대하여 자신을 가지게 되어 행정에 관심을 가지고 행정학박사가 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충청도에서 자란 나는 남쪽에는 처음으로 광주에서 생활하는 계기가 되었다. 영외에 교회가 있었는데, 시골 동네 일반인들도 교회에 참석해서 시골교회처럼 정겨웠다. 저녁에는 철조망을 넘어 규칙을 어기면서 마을에 나가서 맛있는 것을 사다가, 군대 친구들과 함께 먹으면서 즐거워하기도 했다. 대학 출신이 많이 들어 왔다. 젊은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에 잘 적응하고 어울렸다. 그리고 사단군종부에서 교회회지를 발간했고, 신앙을 가진 훌륭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는데, 사회 나와서도 좋은 관계를 가지게 되었다. 1964년 6월 20일에 육군하사로 제대 했다.

교회는 에클레시아, 세상으로부터 불러 모은 무리이다. 소외된 사람들이 사는 곳에 주님이 찾아오신다. 나는 시를 쓴다. 목사로, 교수로, 촛불이 몸을 태움으로 빛을 발하듯이 주님의 희생을 본받아서 열정으로 목양에 불태웠다. 가슴에 사랑과 평화의 샘물을 퍼서 지친 영혼에게 나누어주기를 소망했다. 삶에 지친 이웃들이 살맛을 되찾을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 나사로 사역의 의미였다. 흙탕물 같은 설교가 난무하는 한국교회 강단에서 ‘나’ 만이라도 말씀의 순수성을 지키고자 하나님의 말씀이 연꽃처럼 빛을 내야 하기에, 진지하게 말씀에 사설을 붙이지 않고 설교하는 설교자와 교수로, 글쟁이로 살고자 노력했다.

내가 약해질 때, 주님을 바라보며

한없이 약해졌습니다
모두가 나를 멀리 떠날 때
외로움이 가슴에 가득합니다

십자가를 의지하고, 십자가만 붙잡노라 하면서
나약한 인간을 의지할 때 초라했습니다

모두가 떠난 자리에 서서
공허한 영혼으로 텅 빈 세상을 보며
슬픔이 가슴에 가득합니다

우리 주님도 이 땅에서
제자들의 배신과 인생의 고달픔 속에서
슬프고 또 외로웠지요

외로움에 떨며
십자가의 고통에 아파하시던 주님
오셔서 내 영혼에 위로가 되시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게 하옵소서

오늘 십자가를 붙잡고
당신 앞에 꿇어 엎드리오니
나를 받아 주소서

 

장성우 목사의 자전적 에세이(7): 목회의 시작과 해남 동리교회

가족과 함께

신학교 동문이던 김정부 목사가 사역하는 화산면 평오리 교회에서 하루를 묵으며, 서로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김목사와 함께 시골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를 먼지를 날리며 버스를 타고 해남 옥천면 영산리 사거리에 내려서 이곳에도 목회자가 없다는 시골 작은 교회, 영신그리스도의교회에 들려서 교인들을 만난 후에, 10리 길이 되는 하루에 두 번만 버스가 다닌다는 시골길을 걸어서 동리교회에 와서 짐을 풀었다.(후에 동리교회는 주경림 목사가 사역하며 학동교회와 합하여 중간지점에 아름답게 교회를 세웠다)

짐이라야 성경, 찬송과 세면도구와 읽고 있던 책 몇 권뿐인 큰 가방 하나뿐이었다. 교회마당에는 10년 이상 된 큰 동백나무가 빨간 동백꽃잎이 바람 때문인지 맨몸으로 떨어져 땅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너무 붉어서 피 흘리듯이 이곳저곳 동백꽃잎은 마당 주변에 떨어져 있고, 조용한 시골교회는 그림 같은 아름다움으로 세태에 지쳐있던 가슴에 넉넉함과 포근함을 넣어 주었다. 교인들이 산에서 지게로 지어 날라서 쌓아 놓은 땔감 솔가지가 마당에 가득하다. 재래식으로 된 부엌에서는 소식을 들었는지 내가 온다고 방에 불을 지피는지 하아얀 연기가 하늘로 곱게 오르고 있었다. 순수하고 소박하게 생긴, 수집사인 윤집사가 반긴다. 30호가 될까 말까한 아름다운 동네에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시골교회로 처음 보는 교회지만 오래전부터 정들었던 것처럼 눈에 익고 정겹다.

작은 예배당 안에는 의자는 없고 10여평 남짓한 크기에 강대상 하나 덩그러니 놓여 있다. 오랫동안 목회자가 없어서 비워 놓아서 교회당에 붙은 사택 방바닥은 한기가 가득한데 바닥을 녹이기 위하여 깔아놓은 방석에는 교인들이 여기저기 둘러앉아 초롱초롱한 눈으로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다. 사택 벽은 신문지로 도배를 해서 울퉁불퉁하니 볼만하다. 모두 윤씨 성을 가진 동네이다. 이곳은 해남 윤씨 가문이 오랫동안 한동네에 살고 있었다.

교회는 그동안 목회자가 없어서 주일에는 수집사가 설교하고 교회를 이끌었다는데 교인은 10여명도 채 안 된다. 군 생활을 광주에서 했지만, 목회를 하면서 전라도 사람들의 열정적인 모습을 보았다. 순수하게 말씀에 은혜 받는 모습에 내가 도리어 은혜를 받았다. 보잘 것 없는 설교에 저렇게 은혜를 받다니..., 그 순수성에 감동이 되었다. 후에 전라도에서 올라온 교인들이 서울에서 교회를 개척할 때에 중심 멤버가 되었다. 사람은 진정성과 내면을 알아야만 진정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해남, 옛 선비들이 귀양 와서 살던 애끓는 사연 많은 이 고장을 사랑한다. 이렇게 나의 첫 목회는 시작되었다.

해남 옥천면에 있는 동리교회에서 1977년 10월 2일부터 1978년 5월 15까지 짧은 기간을 목회 했지만, 목회의 출발은 나를 흥분으로 이끌었고 ‘목회란 값진 것이구나.’ 하는 깨달음을 주는 목회였다. 나의 첫 목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좋은 추억을 가지게 되었다.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작은 십자가가 시골교회 종탑에 달려 있으니 윤동주의 ‘십자가’ 시가 생각난다.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읍니다.
첨탑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왔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읍니다.‘

목회를 시작한 동리교회는 아름다운 시골교회 전형이었다. 몇 명의 목회자가 거쳐 간 교회지만 오랫동안 목회자가 없어서 사택이 비워져 있었다. 교회 바로 옆에는 산으로 오르는 길이 있고 둘레에는 대나무 밭이 있다. 서울 북쪽에는 대나무 밭이 없는데 여기는 남쪽이라 대나무 밭이 무성하여 굵은 대나무가 많이 있고, 충청도에서는 볼 수 없는 무화과나무가 있어서 무화과를 맛볼 수 있는 지역으로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새로운 풍경으로 이색적이다.

어머니와 딸

저녁이면 교회에 붙어있는 사택에 모여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주일이 되면 몇 명 되지 않지만 설교를 하면서 행복했고 성만찬을 집례하면서 한없는 은혜를 받았다. 동리교회의 목회는 나의 첫사랑이었다. 내가 앞으로 목회를 해야 하겠다고 결심을 하게 만든 교회이기도 하다. 성도들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긴긴밤에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며 초대교회처럼 지냈던 내 삶에 교회가 천국이었던 첫 목회이다. 참으로 감사하고 고마웠던 사역이다.

전남 해남에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10여개가 있는데, 모두 읍 단위에 세워져 있었다. 이유를 들어보니 그리스도의 교회 부흥사이던 김재순 목사가 6.25때 피난 와서 겨울에 할 일 없이 시골사랑방에서 화투놀음을 하던 사람들에게 성경을 가르쳐 세워진 교회란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도시나 면 단위에는 별로 없고 읍 단위에 많이 있다. 이때 해남에서 목회하는 목회자를 많이 만났는데 배기주 목사, 김동수 목사, 화산교회 목회자, 양 목회자 등이다. 해남에 있는 해남그리스도의 교회는 김동수 장로가 세운 교회인데, 지금은 해남에서 제일 큰 교회로 성장하여 주경림 목사가 시무하고 있다.

하늘 줄, 땅의 줄

정말로 땅에서의 질긴 줄
그것은 인연이라는 깊은 하늘 줄로 맺어지나니
사랑이란 영겁의 실타래같이 엉킨 줄에서
유일하게 찾을 수 있는 하늘에서 내리는
새벽이슬을 맞으며 곱게 뻗은 풀잎이려니...

세상 줄로 맺어져서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것은
하늘 줄로도 맺어 졌기 때문입니다
헤어질래야 헤어질 수 없는 인연은
하늘과 땅에서 맺어진 천륜처럼 질긴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며 아파하는 마음은
모진 인연의 줄에서 놓였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인연에 매여
모진 세월을 원망하며 지내고
또 헤어지는 아픔으로 괴로워하고 있는가
그러나 이것이 세상의 줄인 것을...
헤어나려해도 헤어날 수 없는 하늘 줄인 것을...

우리는 인연에 매이고 인연에서 사랑한다
그것이 땅에서는 땅의 줄인 것을
그리고 하늘에서 하늘 줄인 것을
사랑하면서 괴로워하고 아파하는 것은
이 줄에 매여 있기 때문이다

 

장성우 목사의 자전적 에세이(8): 왜 나는 그리스도의 교회 교인인가?

서울성서신학교에서 분리되면서 대한기독교신학교 1회 졸업식,
뒤편 중앙 여자 혼자 졸업하는 김순옥사모, 김규상, 심영진, 이신,
최윤권, 강병천, 김진문 등의 교수가 앞줄에 있다.

‘왜 나는 그리스도의 교회 교인인가?(Why I Am a Member of The Church of Christ’)는 레로이 부라운로우(Leroy Brownlow) 교수가 저술한 책을 1993년에 내가 번역한 책제목이다. 이 물음은 나에게 중요한 문제였다.

군에서 막 제대하고 서울 영천에 있는 교회에 출석했는데 이현래 전도사가 사역하고 있었다. 그는 나중에 대학생선교회(C.C.C) 대구지역간사로 일하면서, 그 모임을 성장시켜 1000여명이 모이는 대구교회를 세웠다. 영천교회가 소속된 교단은 교단중앙위원회라는 교권적 조직에 의하여서 개교회 목회자인 이현래 전도사를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면직을 시켰다. 그 이유는 신학교에서 윤리학을 가르치는 전도사가 ‘혼전 성교를 해도 되는가’ 라는 학생 질문에 상황적인 예를 들어 대답했는데, 이것을 시비로 면직시켰다는 허망한 이야기였다. 영천교회에 속해 있던 나는 총무집사였는데, 교회 집사들이 일방적인 면직처리에 대하여 교단에 항의를 하여도 받아들이지 않았고 다른 목회자를 파송했다. 한 교회에 두 명의 목회자의 기괴한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서울성서신학교에서 분리하여 사용했던 용산 초창기
대한기독교신학교 교사

개교회가 중앙교권으로 인하여 부흥하던 교회가 혼란에 빠지는 것을 보면서 중앙집권적 조직의 부조리를 알게 되었다. 교권의 횡포의 잘못을 알게 되면서 분노를 느꼈다. 이러한 문제를 겪고 나서 나는 교파를 연구하면서 개교회적 자유를 가진 그리스도의 교회의 좋은 점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더 알기 원하여 신학을 하기로 결심을 하고 그리스도의 교회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성낙소 목사의 아들인 성수경 목사의 ‘초대교회교리요강’을 편집하여 출판하게 되었다. 그리스도의 교회의 장점들에 대하여 확신을 가진 나는 후에 신학교에서 ‘환원운동’과 ‘그리스도의 교회’를 가르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성경적이고 이념적으로 뛰어난 교회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나는 한국기독교교역자협의회를 구성하면서 타교단 목회자로부터 ‘장목사는 일반대학도 하고 공부도 많이 했는데, 왜 그리스도의 교회에 있는가?’ 하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나는 그리스도의 교회의 교리에 우월성에 대하여 확신을 가지고 있다.

개인에 대하여 평가할 때, 그 사람의 삶과 인격을 객관적으로, 또 종합적으로 판단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하물며 수많은 사람이 믿고 따르는 공동체의 인격을 평가할 때는 더더욱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객관적이고 종합적인 판단을 해야 한다. 교회의 정체를 연구할 때 종합적이고 객관적인 관점에서 그리스도의 교회의 기본적인 신앙을 정확히 밝힐 필요를 느낀다. 왜냐하면 이것이 전제 되어야만 공정하고 정확한 비판 논쟁의 장이 마련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신자들의 공동체이다. 세상에서 불러내신바 되었고, 예배의 친교, 말씀의 교훈과 성만찬의 거행, 온 인류에의 봉사와 전 세계적인 복음의 선포에 동참한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그의 권위를 성육하신 말씀이신 그리스도와 기록된 말씀인 성경으로부터 받는다. 교회는 하나님의 가족이며 그리스도인은 그분의 자녀로 입양되었고 새 언약의 기초 위에서 산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승리자로 오실 때 당신의 피로 사셨고, 티나 주름 잡힌 것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으며, 모든 시대를 통하여 충성을 다할 영광스러운 교회이다.

나는 그리스도의 교회의 목회자로서 살아온 것에 대하여 자부심을 느낀다. 그동안 수없이 다른 교단으로 간 동료와 제자들을 보면서... 진리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하는 것을 느끼며... 물론 나도 수없는 유혹을 받았다.. 몇 백 명이 되는 다른 교단의 초빙을 거절도 하고... 내가 오직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지금까지 걸어 온 길을 감사하고 있다.

한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와 그리스도, 그리고 상호간의 친교에로 결속시키는 그리스도 안에서 동등하다. 침례를 받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는 신앙을 고백하고, 죄에 대하여 죽고 새로 거듭난 사람들의 공동체, 그리스도인인 것이다. 성만찬은 예수를 주로 믿는 믿음을 나타내는, 몸과 피의 상징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백성을 만나시고 능력을 주시기 위하여 성만찬에 참여하신다. 이 예식에 참여함으로 주의 죽으심을 다시 오실 때까지 기쁨으로 선포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한 몸의 지체일 뿐, 두 몸 이상의 지체일 수 없다. 그러므로 이 땅위에는 두 개 이상의 그리스도의 교회가 존재할 수 없다. 분명히 그리스도는 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하나일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분파를 용납하지 않는다.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뇨,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뇨.’(고전1:10-17)

그리스도의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그 몸을 이루는 그리스도인은 몸의 각 지체이며 지체의 역할은 하나님께 받은 은사에 따라 역할 분담적인 직임을 수행하는 곳이 곧 교회다. 한 몸의 각 지체는 높고 낮음이 있을 수 없으며 귀하고 천함도 있을 수 없다. “너희는 선생이나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는 다 형제니라. 너희 선생이나 지도자는 하나이니 곧 그리스도니라”(마23:)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세운 교회는 하늘나라에 속한 그리스도인의 나라로 어떤 특정 인물이나 특정 신학을 내세우는 교파가 있을 수 없다. 이 땅위에는 오직 하나밖에 없는 그리스도인들의 교회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오직 하나일 뿐이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택하신 그의 백성으로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인 그의 성전들이다.(벧전 2:9, 고전 3:16) 그들이 존재하는 곳은 시간과 공간에 관계없이, 조직과 제도에 관계없이 예수님이 세운 그리스도의 교회이다.

웬 말인가 날 위하여 주 돌아가셨나, 이 벌레 같은 나 위해 주 보혈 흘렸네/ 내 지은 죄 다 지시고 못 박히셨으니 웬 일인가 웬 은혠가 그 사랑 크셔라/ 주 십자가 못 박힐 때 그 해도 빛 잃고 그 밝은 빛 가리 워서 캄캄케 되었네/ 나 십자가 대할 때에 그 일이 고마워 내 얼굴 감히 못 들고 눈물 흘립니다/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갚을 줄 알아 몸 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

찬송가 141장은 많이 불리어지는 찬송가이다. 이 찬송을 통해 많은 성도들이 은혜를 받고 자신을 발견하였다. 맹인 작곡가 패니 크로스비도 수많은 찬송가를 작곡했지만, 그가 진정으로 거듭나 찬송가를 작곡하게 된 것은 이 곡을 듣고 회개한 30세후였다고 한다.

한국교회가 필요로 하는 것은 자신을 발견하는 것,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 그것이다. 그리스도의교회는 사도행전2장에 나타난 초대교회를 교회의 본체로 보고 초대교회로의 ‘환원운동’을 기본지침으로 삼고 있다. 이것은 어느 교파에서 볼 수 없는 멋진 모형이며 매력적인 것인데 목회자들은 작다는 관점에서 그리스도의 교회를 관과 하고 있다. 12명을 데리고 사역하신 그리스도가 세상을 정복한 것을 생각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교회 주장은 훌륭한 것이다.

제16회 그리스도의교회 총회

환원운동의 지침은

△책은 성경만 △신조는 그리스도만 △명칭은 하나님의 것으로만 △주장은 복음만 △일치는 성경적으로만 △의견에는 자유를 △매사는 사랑으로 한다는 것 등이다. △성경이 말하는 것은 말하고 성경이 침묵하고 있는 것은 침묵한다는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정신이다.

아름다운 이름으로

지금까지 내가
그댈 기억하고 있다는 것 알고 있나요

당신을 늘 그리워하면서도
먼 곳에서 가슴으로만
그리운 이름을 부르고 있다는 것을

어쩔 수 없는 그리움으로
보이지 않게 앓았던 마음은
세상 끝나는 순간까지
가슴에 품고 갈 것이기에

그대와 잠시의 만남에도
차마 눈을 맞추지 못한 사랑은
언제나
내 영혼 깊은 곳에서 아쉬움으로 떨고

그대의 가련한 눈망울과
생명 같았던 그대 이름은
영원히 기억하며 사는 날까지
내 안에서 녹슬지 않고 남아 있다는 것을

 

장성우 목사의 자전적 에세이(9): 그리스도의교회 이상과 교파연합운동

한국기독교교역자협의회 년두 기자회견(1983년)

한국기독교교역자협의회 년두 기자회견(1984년)

한교협에서 김찬영 목사에게
대전지역 대표선정
임명장 전달식

사실 이상이란 실현하기 어렵다. 현실의 장벽이 너무 높기 때문에... 그러나 꿈을 포기 한다는 것은 삶을 포기하는 것이다. 내가 서울에서 그리스도의 교회를 개척하면서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그리스도의교회를 이상적 교회라고 생각하면서 어떻게 하면 모든 교회가 원초적인 그리스도의 교회로 돌아갈 수 있는가 고민하다가 한국교회연합운동의 필요성을 절감하면서 한국에서 모든 교단의 연합운동을 실현해야 하겠다고 결심을 하게 되었다.

교파란 인간이 만든 것이요, 하나님과 성경에는 교파가 없으며 교리도 없다. 종교 개혁자들이 개혁할 때는 성경으로 돌아가자고 외치지 않았는가? 교파는 인간이 만든 것이다. 분파는 죄이다. 인위적인 교리를 버리고 성경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 내가 비록 부족하여 이런 교회연합의 이상이 불가능할지라고 나에게 부여된 평생의 사명으로 버릴 수가 없는 것이 되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교회 이상은 ‘하나의 교회’ 초대교회를 지향하는 것이고, 이 신념을 포기 할 수 없다.

예루살렘 성전에는 장사하는 장사치들이 시끄럽다. 성전은 경건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이들의 이권의 장소가 되었다. 예루살렘 성전 안에서 소와 양,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과 환전상들을 보고는 예수님은 채찍을 휘두르며 가판대를 거친 숨결로 몰아친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이 성전은 사십 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요 2:19-21). 예수님은 내가 성전을 초토화 시키겠다고 했다. 그리고 다시 세우겠다고 했다.

교회가 너무 인위적으로 조직화. 거대화. 산업화. 물질화 되어 가는데 이젠 헐고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해야 한다. ‘아드 폰테스(Ad Fontes)’는 라틴어로,

‘근본으로 돌아가자’는 뜻이다. 근본이 잘못된 어떤 것도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득권의 횡포로 말미암아 성전에 모이던 예수님을 따르던 신실한 무리들은 차츰 성전 밖으로 쫓겨났고, 예루살렘 밖으로, 유대땅 밖으로, 사마리아 밖으로 밀려나야 했다. 소아시아로, 로마로 쫓겨난 그들은 결국 세상에서 발붙일 곳이 없었다. 많은 사람들은 호화로운 성전을 택했지만, 영문 밖의 예수그리스도는 십자가를 택하셨다. 성전에서 영화를 누리던 많은 사람들이 조롱하며 침을 뱉고 성전에서 쫓아냈지만, 하나님은 그를 가장 거룩한 곳으로 초대했다. 이것이 초대교회의 시작이 되었다.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주도 한 분이시오,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엡4장4∼6절).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는 하나이고 유일하다. 많은 교파들이 저마다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상속자라고 내세우고, 모든 이가 자신이 주님의 제자라고 공언하지만, 그리스도 자신이 갈라지기라도 한 것처럼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길을 걷고 있다. 분명코 이러한 분열은 그리스도의 뜻에 어긋나며, 세상에는 걸림돌이 되고,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선포하여야할 거룩한 대의를 손상시키고 있다.

1948년에 환원운동의 일환으로 미국에서 Disciples of Christ(제자파)의 주도로 창설된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는 교회일치운동에 로마가톨릭교회는 정식회원교단은 아니지만, ‘신앙과 직제위원회(Faith and Order)’의 정식회원으로서 신학적 대화에 동참하고 있으며, 세계교회 차원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공동의 소명과 신앙적 유산을 발견하고 보존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미국 선교사들을 통해 시작된 독특한 개신교 선교의 역사 때문에 서구교회가 보여주는 일치운동의 결실들을 충분히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진보성을 띄고 있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일치운동을 추진하면서 다양한 관점에서 교회일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한국 현실에서는 보수적 교단의 호응을 얻지 못하고 N.C.C.K는 사회운동을 하는 단체로 전락하게 되었다.

그리스도의 교회운동은 본래의 교회모습으로 환원하는 운동이다. 나는 오랫동안 ‘환원교리와 역사’를 신학교에서 가르쳤지만, 교회가 하나 되는 방법으로 이상적인 것은 교회가 교파를 만들지 말고, 본래의 교회로 돌아가는 방법이다. 한국교회는 교파의 장벽이 높은 분열된 교회이다. 교파의 벽은 높고, 보수와 진보의 대결이 심각하고 심지어 보수적인 교단끼리도 강단과 인적교류가 없었다.

1982년에 나는 교단의 벽을 헐고 소통하기 위하여 각 교단의 대표들과 소통하기 시작했다. 감리교, 예장, 기장, 합동, 루터교, 그리스도의교회, 침례교, 성결교의 8개 교단 대표들을 모아서 실행위원회를 만들어 한국기독교교역자협의회를 구성하는 일을 주도하여 기독교회관 802호에 사무실을 개설하고, 전국적으로 지회를 조직했다. 세미나의 개최와 교단교류를 통하여 벽을 헐려고 노력했다. 정말 교회의 벽은 세상의 것보다 훨씬 견고했다. 교회의 벽을 허물기 위해서 교단의 중추적인 목회자들을 모으는 일을 했다. 각 교단의 중추적인 교단 대표인 최훈 목사(합동), 김선도 목사(감리교), 지덕 목사(침례교), 정진경 목사(성결교), 김찬영 목사(그리스도의교회), 조원길 목사(기장), 문은식 목사(통합), 정인도 목사(침례교), 허송 목사(루터교) 등과 교회연합운동을 전개했다. 세미나, 메시지 발표, 강단교류, 공동신학강좌, 회지발간, 지회창립, 등의 연합사업을 전개했다. 교회연합운동의 좋은 모델이 되었다. 그리고 4년간 전국 지회를 조직하여 제주도까지 조직을 완료했다. 그러나 내가 대전 한성신학교전임으로 오면서 한교협 조직은 침체되어 지금까지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로마서 8장 28절).

교회는 ‘예배당 건물’이나 ‘사람의 조직체’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성도들이 말씀대로 살고자하여 하나님께 부름 받은 무리들의 모임이다. 그리스도인은 한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기에 하나님의 자녀이고, 같은 형제이며, 그리스도의 지체들이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곧, “남을 위하여 사는 존재”가 되는 것이라고 독일의 신학자 본회퍼는 말하였다.

현대교회는 병들고 부패하였다. 그리스도인은 교회를 초대교회로 환원해야 한다. 교회는 온전한 성경말씀인 믿음과 행위로 회복하고 평등하고 자유롭게 운영되어야 한다. 교권적 조직으로부터 해방되어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되심을 선포해야 한다. 교회재정은 연보로 회복하여야 한다.

나는 그리스도의 교회에 있으면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어떤 때는 갈등으로 아픔도 겪었다. 그러나 나는 그리스도의 교회와 동료 목회자들을 사랑한다. 이 길을 걸어 온 것을 행복하게 생각한다.

죽음, 다시 사는 영광으로

사람은 왜 죽는 것인가?
사람은 왜 "고통"을 경험해야만 하는가?
사람은 누구나 죽습니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며,
그리고, "다시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죽음과 고난에는
자기 폭발과 자기 해체의 "아픔"이 따릅니다
역사적 사실 앞에 최대의 고민이요 고뇌입니다.
죽음과 고난은
영광과 새 생명을 창조하기 위한 필연적인 전제조건입니다

대속적 희생이 없이 새로워질 수 없고
거듭나는 창조를 이룩할 수가 없습니다.
죄를 소멸시키고 그 죄의 근원적 회개와
철저한 자기부정이 없이는 부활의 재창조와
구원의 은총이란 우리에게 결단코 주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스스로 썩어지지 않으면
그 어떤 밀알도 결코 열매를 맺을 수는 없습니다.
철저한 회개의 "아픔"을 통하여야만
비로소 다시 사는 영광에 이를 수 있는 진리며
이 사실은 다시 사는 영광으로 인도할 수 있는 원리입니다.

 

장성우 목사의 자전적 에세이(10): 이상적인 목회와 교회를 지향하며

강남제일교회 주일학생들이
선생님을 따라 율동하며 즐거워하고 있다(1980)

시간이 나면 산을 오르는 것을 좋아한다. 산을 오르면서 좌우에 피어있는 꽃들을 바라보는 것이 좋고, 우뚝 서있는 나무들을 바라보는 것이 좋고, 산 정상에 올라 사방에 펼쳐 있는 경관을 바라보는 것이 좋다.

대전에 와서 인근 산을 자주 오르곤 했는데, 사방으로 펼쳐 있는 경관을 바라볼 때, 가슴이 확 트이는 시원함을 만끽한다. 산을 좋아하는 것은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자연과 친밀한 교감을 느끼며 신앙적인 정서를 함양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노래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 121:1).

그렇다. 산처럼 우뚝 서야한다. 그리스도의 핏값으로 세워진 교회가 진리를 밝혀주는 사명으로 우뚝 서야 한다. 나의 목회와 신학교의 교육은 주제는 ‘이상적 교회’ 이다. 대형교회의 문제점, 성장 이데올로기의 문제점, 교회의 사명의 방치와 표류, 이에 대한 치유 방안은 지역사회에 대한 봉사와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웃에게 구제의 손길을 펴나가는 방법이다. 목회자는 건강한 영성을 회복하는 공동체가 되어서 교회재정은 교회와 사회의 가난한 자들을 위한 구제와 사회봉사를 위하여 사용해야 한다. 교회가 개혁되지 않으면 화려한 교회건물이나 많은 교인의 모임이 소용없다.

서울지역그리스도의교회 체육대회에서
강남제일교회 교인들이 응원하고 있다

어느 목사님이 여행을 하며 미국의 광활한 대지에 아름다운 환경에 ‘여기가 천국이구나’ 하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 신문을 보니 젖소 7000마리를 가진 목장 주인이 자살했다는 보도이다. 미국에 오기 전에 자기가 목회하던 시골에서 젖소 한 마리를 키우기를 소원하는 가난한 부부가 50만원만 있으면 젖소를 살 수 있는데, 농협에서 돈을 빌려야 하는데, 보증을 서달라고 해서 보증을 서주었다. 그렇게 젖소 한 마리를 사가지고 행복해 하던, 젖소가 병들어서 위급하다고 목사님에게 기도해 달라고 해서 간절히 기도 했더니 젖소가 살아나고 부부는 감사하다고 감사헌금을 드렸던 일을 떠 올리며 7000마리 젖소 농장주인 자살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우리는 젖소 한 마리에 행복해 하는 농부의 삶을 배워야 한다. 큰 교회가 최고의 교회로 잘못 알고, 목회하는 것은 교인 늘이는 작업이라고 잘 못 알고 있는 것이다.

바르게 사역하는 일은 작은 교회지만 값지고 보람되고 행복한 목회인 것이다. 교회가 양적성장 만을 꾀해서 교인의 헌금을 재투자해 더 큰 교회를 세우려는 욕망에서 벗어나야 건전하게 자랄 수 있다. 교회 몸집불리기 대신 헌금을 지역공동체에 투자해야 한다. 교회의 성장을 위하여 몸집 불리기 경쟁에서 탈피해 지역사회 선교에 힘써야 한다. 양적 성장보다 지역주민들과 함께 성숙의 길을 걸어야 한다.

예수께서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오셨듯이 교회는 지역사회에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웃들 속에서, 예수를 찾고 만나야 한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성육신의 정신을 실천하기 위해 끝없는 변화와 혁신해야 한다.

교회의 대형화는 예수의 삶을 실천하는 대신 교회조직의 이익을 위한 것이 되기 쉽다. 교회가 자본주의에 편승하여 개교회의 성장에만 경쟁적으로 몰두해 왔다. 대형교회를 무조건 선호하는 경향과 농어촌의 어려운 교회를 방치한다. 교회는 대형교회주의를 극복하여 형제교회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며 협력하는 공동체를 회복해야 한다.

교회는 끊임없이 갱신되어야 한다. 교회갱신을 꿈꾸는 사람이 모인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민주적 교회운영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예수께서는 낮은 데로 임하셨다. 초대교회의 순수한 신앙을 회복함으로써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야 하며, 복음이 개인이나 가정이나 사회를 회복하는 힘이 되어야 한다.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의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의를 건설해야 한다. 교회는 처음부터 지역 이름을 따서 이름을 사용했다.

성경적인 것으로 ‘고린도교회’ ‘에베소교회’와 같은 교회 전통이었다. 가장 인상적인 이름은 ‘초대교회’일 것이다. 교회갱신을 부르짖는 사람은 초대 교회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성서에 기록된 초대 교회의 모습이 교회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기 때문이다. 초대 교회가 가지고 있던 교회의 본질적인 요소를 현대 교회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영원히 변할 수 없는 교회 고유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2:43-47)

한국교회의 미래는 그리스도의 교회의 이상에 달려 있다. 한국교회는 초대교회로 변화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순수하고 아름다운 초대교회, 성령이 역사하는 교회, 이러한 교회는 교파를 초월한 연합의 교회이고, 자기 갱신과 개혁, 교회 지도자의 깊은 반성과 회개만이 한국교회를 다시 세울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러한 방안은 사도행전 2장의 초대교회에서 비밀을 얻을 수 있다. 환원운동과 초대그리스도의 교회를 통해 유일한 한국교회의 희망이 있기에 그 오랜 시간 환원의 비밀을 감추어온 이유가 있다.

깨지면서 배웠습니다

사랑으로부터 철저한 배신과
광기 들린 세상의 추적을 받을 때
당신만이 진실한 친구임을 배웠습니다

억울하게 깨어지는 아픔 있어도
원수에게 저항하지 않는 교훈과
말보다는 침묵이 우월하다는 것과
원수 짓지 않는 온유가 진정한 승리이며
스스로 낮춤이 나를 세우는 것임을

또한, 자신의 능력을 뽐내는 것보다
너그러움으로 포용하고
내적인 성장을 추구하는 것이
더 값진 보배임을 배웠습니다

날마다 당신의 십자가로
명예를 삼으며
하늘의 때를 기다리는 인내와
나의 도우심 모두
하늘로부터 오는 것임을 믿고
온전히 의지할 때
진정으로 승리하는 삶임을 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