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우 목사의
자전적 에세이(38): 한민학교시절 대학승격 좌절과
아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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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호교수사모, 조동호교수사모, 장성우교수사모,
박영배교수사모 |
한성신학교가 한민학교로 교명을 변경했다. ‘5차원 전면교육’의 원동연 박사가 총장을 그만두게 되어, 이사회는 원총장의 잔여
임기에 나를 총장으로 임명했다. 후임 총장에 임명을 받았다. 내 생애에 가장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한성신학교는 1959년 힐 선교사가 세운
학교이고 김찬영 박사가 운영했다. 학력인정을 받고 정식대학으로 승격하지 못했다. 계속 어려움을 겪은 것은 분규가 계속 되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이다. 이 학교에서 정년을 맞게 되고 대전에 거주지가 되어서 모든 자녀들이 대전에 거주하는 계기가 되었다. 어려움 중에 학교의
운영자가 바뀌어서 학교법인 한민족학원에서 운영하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학교환경은 열악하여 헤어나지 못하고 계속 어려움을
겪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언 16장 9절).
하나님의 섭리는 시공을
초월한다.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인간의 생각 너머에서 삶을 조종하신다. 불행한 것은 좋은 대학으로 성장시킬 수 있었는데 기회를 놓친 것이다.
교수로서 정년퇴임을 하고 나는 지금 몹시 행복하다. 과거 재임 중에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교수로서 행복하기는커녕 불만투성이였다. 교수임용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열심히 수업준비하고 학생들과 어울렸지만, 분규로 항상 인간관계의 부족함을 느끼었다. 그리고 부여된 직책을 수행하자면
어려움이 많았다. 지금 나는 인생의 모든 과정을 마치고 생활하고 있다. 나에게 새로운 비전으로 재활의 힘을 준 것은 놀랍게도 ‘교회’이었다.
교회의 발견. 그것은 진정한 발견이었다. 자연이 거기에 있었지만 나중에 자연법칙이 발견되듯이, 교회가 늘 거기에 있었지만, 나는 이제야 깊이
그것을 발견했다.
지금에 와서 내가 걸어온 교육,
연구, 봉사라는 교수의 3대 사명도 다 이해되었다. 무엇을 교육할 것인가, 교회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면 된다. 무엇을 연구할 것인가, 교회에게
도움이 되는 연구를 하면 된다. 무엇을 봉사할 것인가, 교회에 봉사하면 된다. 또 교회를 매개로 교육과 연구와 봉사가 통합될 수 있음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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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보이는 바다에서
조동호교수부부와 같이 사진을 찍다 |
앞으로도 내가 할 일은 교회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연구하고 책을 써서 실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많은
사람과 만나 토론하고, 조직하고, 실천하고 또 이에 관계된 책을 내면 된다. 이러한 교회를 위한 방법이 떠오르기 시작하면서, 이 일은 오래전부터
나에게 무한한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주었다. 교회 위해 일하는 데에 교수직만큼 좋은 것이 드물다는 것을 알았다. 호구지책으로 삼고 있는 교육,
연구, 봉사가 아닌 모두 교회의 것임을 알았다. 교회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무한하고 명분이 서는 일이며 하면 할수록 신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교수생활 과거가 어찌 명예롭지 않을 수 있겠는가.
1977,2,1-1980,7,3
서울무디신학교설립운영,
1980,3,1-1983,2,28 한민대학교(한성신학교)시간강사, 1983,3,1 전임강사로 임명받아 1989,2,28까지 전임강사,
1983,3,1-1988,2,28 신학부장, 1989,3,1 조교수로 승진했다, 1988,3,1-1992,5,30 학생처장,
1992,6,1-192,28 사무처장에 보직, 1992,6,1-1992,8,30 학장 직무대행, 1993,3,1 부교수로 승진하고,
1993.3,1-1994,8,5 교수및 교무처장, 1994,10,1-2000.12.30 사단법인한국교역자협의회 서기및실행위원,
1995,3,1-2000.3.1 도서관장, 1997,8,25-2000.3.1 교목실장 겸보로 발령,
2000.3.1-2001.3.1
한민대학교 교학처장,
1994,3,5-1995,3,10 전국신학대학협의회 기획위원, 2001,3,2-2001, 12, 4 한민대학교 총장재임, 2002,
10,1-2004년 2월28 교수로 21년간 봉직한 학교를 정년퇴직, 2002.4.7-2009.4.7 중부그리스도의교회 설립, 노숙자사역
7년,
2009.10.28-2010.10.14 그리스도의교회총회장, 2011년 6월 1일 명성그리스도의교회
창립,
선교지에 당신을 보내며
-미얀마에 파송예배를 드리며-
인간을 사랑하기 어려운 시대에,
선교를 한다는 것은
생명을 제물로 드리는 헌신이다
아픈 영혼들을 위해
무덥고 낯선 나라에 산다는 것은
외롭고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천하보다 귀하고 값진 영혼을 위해
결코, 저버릴 수 없는
일
꽉 막힌 하수구와 같이,
문화와 언어가 통하지 않지만
버려진 영혼을 사랑하는 일이
십자가의 은혜를 갚는 것이기에
선교사와 현지인 사이 장벽이
쌓여 있어도,
선교의 현장이 밤처럼 어둠과 증오로 가득 차 있어도
주님이 십자가 지시고 빛으로 오셨기에
희생하신 주님이 그러했듯이
하나님의 사람아, 너의 자리를 지키는 순교자로
번제물이 되신 주님의 기도처럼
하늘을 우러러 통곡하며 외쳐지기를
장성우 목사의 자전적 에세이(39): 선교를 위한 후원과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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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규 선교사와
같이 |
선교문제로 중국, 필리핀, 일본 등을 방문했다. 방문하는 도시나 시골에서 한인교회를 찾아가 예배를 드렸다. 교민들과 함께
기도하고 격려하는 것도 또 다른 기쁨이요, 보람이었다. 강희규 선교사는 중국 선교사로 가서 중국 위해에 있는 문등시에서 문등그리스도의교회를
개척하여 선교를 하였는데 선교를 하는 현장에 총회 임원들이 대대적으로 방문했다. 총회장 정일호 목사는 건강도 좋지 않은데,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인천에서 배를 타고 같이 가게 되었다. 총회에서 지원하는 강희규 선교사에 대한 특별한 배려였다. 그곳에 가서 공장도 운영하고 활발하게 선교활동을
하는 모습을 보고 친교력과 사교성이 강한 강희규 선교사는 선교사로서도 적극적이고 활동적인 것이 좋았다. 특별히 사모님이 북한에서 넘어온 사람들에
대한 헌신은 지극하다. 후에 사모님은 노숙자를 돕는 중부그리스도의교회에 와서도 지극정성으로 나사로들을 돌보았다. 강희규 선교사의 선교현장에
우리가 방문 했을 때 문등시시장의 초청도 받고 텔레비전에도 반영이 되어 그 지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모습을 보았다.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다 괴로우나 즐거우나 주만 따라 가오리니 어느 누가 막으리까 죽음인들 막으리까 어느 누가 막으리까 죽음인들 막으리까”(찬송가
323장) 한국교회에서 가장 많이 부르는 찬송 가운데 하나인데,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온전한 순종을 고백하는 찬송이다. 특별히 이 찬송은 부름
받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선명하게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감당해야 할 삶은 “아골 골짝 빈들에도 복음 들고 가는 것”
이다. 그리스도인이 있어야 할 곳은 바로 “아골 골짝” 이다. 아골 꼴짝은 ‘절망의 문’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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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L.A 그리스도의교회 목회자들과 함께 (김정만목사와
김길홍장로는 방문중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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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선교여행중(김종기내외, 장혁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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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출산 밑에 아무도 가지 않는 목회자가 없는 교회가 오랫동안 비어 있었다. 중국에서 선교를 하고 한국에 온 강희규 선교사
내외가 “우리는 섬이나 시골이나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가서 목회를 하겠다. 아무러면 중국에서 선교하는 것보다 더 어렵겠는가” 라고 했다.
그래서 이 교회를 추천해서 누구도 가지 않는 다 무너져 가는 시골교회로 부임해서 지금은 열심히 전도해서 교회가 부흥하여 15명 정도가 모여서
예배를 드린다. 강희규 목사는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에 있는 성심그리스도의교회를 맡아서 열심히 목회하고 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중국에는
중부지방회에서 파송한 곤명시에 박용규 선교사가 있다. 우리는 단기선교로 그곳에 가서 신학교에서 졸업한 학생 목회자들에게 침례식도 하고 목사안수도
주고 왔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시편 121편 1∼3절).
미얀마에서 선교를 하는 임정규
선교사는 서울에서 내가 목회를 할 때 집사였는데, 대전에서 우리 신학교에 편입을 시켜서 졸업을 하고 목사안수를 받고 파송된 선교사이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열심히 선교하고 있다. 한국으로 메일하기도 어렵고 소식 전하기도 어렵다고 한다. 미얀마에는 양곤과 만달레이에서 일하는 선교사들이
있다. 임정규 선교사는 만달레이에서 일한다. 단기선교 현장에 갔던 목사들은 미얀마에서 먹은 음식과 물로 인하여 1종법정전염병인 콜레라에
걸렸는데, 한국에 와서 격리 수용되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고생을 하다가 퇴원을 했다. 미얀마 정부에서 외국인들에게는 10주의 비자만을
내주는데, 비자의 연장을 잘해주지 않는데, 임 선교사는 다행히도 돼지 양돈업자인 것으로 알고 있어 비자 받는데 도움이 되었다.
미얀마 만달레이는 기상관측은
없지만, 수년간 최고의 더위 가운데 가장 덥다고 한다. 더위로 인하여 생명까지 잃어버린 사람들이 생긴다고 한다. 농장에도 더위로 인하여 수십
마리의 돼지들이 죽었다. 공들여 길렀던 돼지들이었는데... 낮에는 물론이고 밤에도 더위로 인하여 잠을 설쳐야 되는 이중고를 겪고 있단다.
소망공동체, 식솔들의 생활 살피기, 건강 돌보기, 농장의 돼지들의 사육 상태를 살피며 새끼들을 낳을 수 있도록 준비시켜가고 있기 등 80여명의
식솔들의 땀방울이 불타고 있는 대지를 적시고 있다. 재봉틀을 밟는 힘찬 소리가 있다. 맨 처음 종이를 실험용 옷감으로 삼아 양재를 시작했던
35명의 양재학원의 학생들, 더위도 아랑곳 하지 않고 땀 흘리며 폐달을 밟고, 바느질을 하고, 숯을 피워 다림질을 하는 학생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종이가 옷감으로, 윗옷으로, 치마로, 바지로 되면서,,, 이제는 자신의 옷을 재단하며, 이웃들의 옷을 만들며, 자신들이 지은 옷가지들을
진열하며 판매도 하면서 마음 뿌듯해하는 소망 양재학원의 학생들의 땀방울과도 함께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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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여행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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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선교중 오사까성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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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에서 수고하시는 변영민선교사도 존경스럽다. 20여개의 교회를 세웠고 유치원부터 신학교까지 운영하며 80살이 넘은
나이에도 열심히 선교하고 있다. 참, 존경스럽다. 사모님도 목사안수를 받아 동남아지역을 다니며 부흥회를 하는데 많은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나는 선교여행 중 혼자서 마닐라에서 택시를 불렀는데 택시기사가 무리하게 많은 돈을 요구하여 혼난 적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세계적으로 많은
선교사를 보내게 된 것을 감사한다. 아프리카 등 미개발 지역에서 선교하는 많은 사람이 있다.
하나님을 믿는 백성에게는 절망이
없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다.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이 움직이고 있음을 믿는다. 희망은 영원한
것이다. 선교하는 모든 분을 위하여 기도하리라. 내가 돕는 그들뿐 아니라 어려운 곳에서 선교하는 모든 분들의 승리를
기원한다.
미얀마에서 온
편지
내가 한국에서 교회를 섬기다가
이제는 더는 헌신할 곳이 한국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나의 뼈를 묻을, 지구에서 가장 어려운 선교지를 찾다가
선택하여 온 나라,
이곳은 불교의 나라, 미얀마
최고를 자부하며 가난하게 사는
곳, 미얀마 만달레이
미얀마 제2의 도시, 사우나탕에서 지내는 것 같은
더위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하루 종일 내리쪼이는 태양열이
무섭기만 하다
더 무서운 것은 전기가 공급되지
않아
자가발전을 하지 않으면 밤이 지옥처럼 무덥기 때문이다
밤바람이라도 쏘이려고 밖에 나가면
모기떼의 공습에 정신이
알알하다
그러나 이곳에도
시내
중심가에는 현대식 쇼핑센터에는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상품이 성시를 이룬다
만달레이 후미진 농촌에 돼지
농장을 만들어
나의 선교는 현지민을 새롭게 살도록 돕고 있는 일이다
돼지를 분양해 주고 새끼를 낳으면 다시 돌려 달라고
한다
불교국가인 이곳의 이른 아침이면
탁발에 나선 동자승들,
이곳 여인들은 독실한 신자여서 가난한 형편에도
아침 공양을 거르지 않는다
석가모니가 다녀간 곳으로 유명한
만달레이 언덕은
9백44개의 계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부처의 일대기를 곳곳에 조각으로
묘사하고 있다
만달레이 근교에는 '캐테이요
파고다'라는 기묘한
불탑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지름 15m가량 되는
자연석의 낭떠러지 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있다
아직 기독교의 선교 자유가
허락되지 않는 이곳에서
선교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벌써 이곳을 선교지로 정하고 온 지가 7년째이다
이제 많이 적응이 되어서
현지민도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다
아프면 죽을 수밖에 없는 이들에게 의료선교는 큰 힘이 되고 있다.
장성우 목사의
자전적 에세이(40): 어머니 무언의 헌신된 삶과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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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같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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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 여행중인
어머니 (싱카폴식물원에서,94,1,25) |
어머니 이야기가 나오면 눈물이 난다. 제대로 효도를 못했는데... 4남매를 키워온 질곡의 세월을 살아 온 한 여인,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86세로 생을 마감한 것이다. 어머니는 참 건강한 분이셨다. 별세하실 때까지도 자신의 옷을 스스로 빨아 입으시던 분이었다.
노인정에 다녀오시다 넘어지신 후에 일어나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우리 어머니는 세상의 어머니처럼 그렇게 자상하신 분은 아니었다. 무언으로 말하고
무언으로 행동하시는 분이었다.
내가 아파서 누워 있으면
좋아하는 수제비를 해서 누워 있는 방안에 놓고 나가신다. 내가 먹지 않으면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상을 가지고 나가서 다시 다른 음식을 만들어서
아무 말 없이 들여 놓는다. 이런 어머니 밑에서 자라서 나도 과묵한 편이다. 어머니는 신앙을 가지지 않았다. 아들이 교회를 시작하고부터는 교회에
다니셔서 권사님이 되셨다. 누구에게 표현도 잘 하시지 않는 무언의 신앙으로 평생을 살았다. 어머니는 나의 영원한 마음의 고향이다. 모든 분들이
그렇겠지만, 어머니는 하나님의 마음을 가장 많이 닮은 존재다. ‘천사의 슬픔’ 유상옥 시가 생각난다.
‘어머니의 기도는/ 목련꽃 자식
몸에 고름 빨며/ 썩는 가슴에 맺힌 얼음 덩어리 한겨울에도 피고/ 여름에도 벙그는/ 두 손안에 봉오리/ 자식 앞에 없던 눈물/ 가지마다
가득하여/ 하늘 향해 활짝 입 열고/ 두 팔 뻗어 뽀얗게 절규하는 천사꽃/ 송이송이 가득한 세상 슬픔/ 수 만 리 살 길 멀어 가슴에 솟으면/
봉오리 펑펑 터진다/ 눈을 감아도 하얀 명주실 언어/ 청솔 연기 가득한 부엌 휘돌아/ 부엌 문틈으로 들린다/ 꽃으로 피어라 내 자식아/겨울
이기고 맑게 피어/ 한 세상 등불 아니어도 두 손안에/ 별빛 가득하게 밝아라 내 자식아’/
어머니 장례식 날, 나는 목회를
하며 성도들에게 고인은 천국에 가셨으니 울지 말라고 했다. 고향 선산에 어머니를 묻었다.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이처럼 슬픈 일이 또
어디 있을까. 어머니는 이미 천국에 올라갔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그 말은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다. 결국 하관식에서 나는 무너져 버렸다. 교인이
보는 가운데 쓰러져서 통곡하고 말았다. 세상의 이별도 슬픈 것은 어쩔 수 없다. 죽음은 끝이 아니다. 부활의 아침에 다시 어머니를 만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이별도 너무나 슬프다. 왜냐하면 그분은 나를 낳아주시고 생명처럼 소중하게 키워주신 분이니까. 어머니는 아버지 묘지에 합장을
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요한복음 11장 25∼26절)
말없는 헌신, 우리 어머니시다.
그러나 장모님, 김묘암 권사님은 다른 모습의 어머니시다. 기도의 어머니셨다. 새벽 4시면 일어나셔서 평생을 교회당에서 기도하신 어머니시다. 내가
사역을 하게 된 동기도 장모님의 기도 덕분이다. 서울에서 개척교회를 시작했을 때 항상 먼저 나와서 기도 하셨다. 장모님은 4남 1녀를
키우셨는데, 모두 신학교를 보냈다. 아들은 목사 3명, 장로 1명, 딸은 신학을 마치고 사모가 되었다.
자녀를 키울 때, 나도 장모님을
생각하고 자녀를 신학교에 입학을 시켰다. 첫째 딸은 선교학박사로, 둘째는 딸은 사회복지사로, 셋째 아들은 목사가 되었다. 감사한 일이다. 돌이켜
보면 내가 한 일이 아니다. 하나님이 섭리하셨다. 만세전에 하나님이 준비하고 계셨다. 참,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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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붉은 사원 앞에서 막내동생 장인숙과
어머니(94,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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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산호성에서
어머니(94,1,24) |
자녀교육을 말할 때는 오상진 목사님을 생각한다. 오상진 목사님은 인품이 후덕해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서울
사랑의 교회 오정현 목사와 대전 새로남 교회 오정호 목사가 아들이다. 가끔 질문을 던졌다. "오 목사님은 자제분들을 참 잘 키우셨어요. 자녀교육
비결이 뭡니까?" 항상 똑같은 대답을 한다. "여러분의 기도 덕분이지요."
자성대교회 김경근 장로는
1970년대 초창기에 부산 광안리에서 전파사를 경영하면서 80년대 교회마다 차임벨이 유행하던 시절에 앰프를 제작하였다. ‘부산가야교회’도
차임벨을 설치를 하는데 담임목사께서 점심시간을 맞춰 옥상에 올라오셨다. 점심대접을 하신다기에 목사님 내외분과 같이 식당에서 말씀을 나누었다.
“목사님! 많이 바쁘신데 저는
아무데나 식사해도 됩니다.” “아니, 기사양반이 수고를 하시는데 의당히 대접을 해야지요.” “기사양반은 어느 교회입니까?” “저는 자성대교회
김경근 집사입니다.” “목사님은 겸손과 인자하심이 얼굴만 보아도 은혜스럽습니다. 사모님하고 어찌나 닮으셨는지 누가 봐도 남매간인줄 오해
하겠습니다” “(웃으시며)감사합니다.” “자제분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꺼?” “큰아들이 미국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님의 기도하신대로
나중에 한국의 훌륭한 목회자가 될 겁니더.” 그 유학을 하던 아드님이 서울 사랑의 교회 오정현 목사이시다.
우리 장모님도 자녀 키우는 일을
성공하신 분이다. 한 때 먹을 것이 없어서 자녀를 고아원에 맡기고 머리에 포목을 이고 다니며 장사를 했지만...., 장모님이 대단하신 것은
노트에 꼼꼼히 자서전을 쓰셨다. 별로 공부도 하지 않으셨는데, 자서전을 쓰시다니..정말 놀랍다.
내 생명 다하는
날까지
내가 살고 있다는 건
힘들고 아픈 이들에게
길동무를 해 주라는 것임을 난 압니다
내가 살고 있다는 건
고달프고 힘든 이 땅의 삶이 끝이 아니라
영생이 있음을 일러주기 위한 것임을 압니다
내가 오늘 살고 있음은
허허벌판에 외로이 서 있는
허수아비 같은 인생들에게
공허한 가슴을 채워 주라는 명령임을 압니다
우리의 삶은 허무 속을 떠도는
나그네이기에
세월의 흐름을 뒤로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받아
이웃의 눈물을 씻어 주라는 것임을 압니다
가장 지친 순간에
당신이
나를 찾아 와 주신 것처럼
마음에 상처들 안고 사는 영혼들에게
영원한 소망의 꿈을 심으라는 명령인 줄 압니다
칠흑 같은 어두움을 지나 새벽이
오는 것은
또다시 희망이 있다는 것을 전하라는
주님의 지상 명령임을 난 압니다.
장성우 목사의
자전적 에세이(41): 고난을 돌아보며
-전화위복(轉火爲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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쾀의 이호선사장, 학생시절 남북통일연구소위원장을 맡고
있었는데, 대통령에 출마할 때 이사장은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었다. 그는 나를 수소문해서 비행기표를 보내주어서 쾀에서 상면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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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로서 축복을 위하여 안수기도를 하고
있다 |
고난은 실패가 아니었다. 그것이 오히려 복이었다. ‘축복은 고난의 보자기를 풀면 그곳에 있다’ 라는 이야기가 있다. 나중에야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었는데, 그때는 실패처럼 보였으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큰 사랑이었다. 사업을 실패했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것처럼 아프고
이것으로 나의 인생이 끝나는 줄 알았다. 재기하기에는 어려운 여건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하여 아픔으로 피 흘리는 고통의
훈련을 시키고 연단하여 사용하셨다. 그 즈음 나는 외국에 기술자로 쿠웨이트에 나가는데 선발되어 출발하게 될 즈음에 모든 세상의 일과 계획을
포기하고 서울에서 교회개척을 놓고 기도하였다. 물론 1970년도 후반기, 그때도 교회를 개척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건물을 구입한다던지, 지역을
선정한다던지, 개척을 계획하고 시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열심히 기도하면서 건물을 임대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교인을
확보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가족만 데리고 예배를 드렸는데 개척한지 6개월이 되면서 중 2학년 서화순 자매가 처음으로 교회에 들어왔다. 내
평생에 잊을 수없는 기쁨이었다. 개척교회를 시작하고 처음 얻은 교인이니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인가,
교회가 교인을 확보하여 자립하는
꿈은 좀처럼 실현되지 않았다. 영안모자회사가 옆에 있는데 거기서 일하던 학생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여동생들과 필운동교회에 같이 다니던 김성숙
권사와 집사람의 친구 어머니 이요순 권사가 교회에 출석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강영자 집사 가족들, 주일학생의 어머니인 박주자 집사, 과거에
시무하던 해남 동리교회에 다니던 여학생들이 서울로 왔다. 동리교회 윤기창 집사 가족이 교회에 나오게 되면서, 어느 정도 교인이 모이기 시작했다.
1년 정도 지난 후에 많은 교인이 모이면서 교회규모를 갖추게 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내 평생에 주제가 되는 말씀이 나에게
주어줬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4;7~8)
하나님은 꿈을 주신다. 꿈은
기도를 통해 선명하게 현실로 나타난다. 게으른 사람은 꿈을 현실로 만들 수 없다. 하나님은 부지런한 사람, 준비된 사람을 사용하신다.
신학대학교수는 교육의 토대 위에 신앙이 바탕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교수로 재직하면서 깊은 신앙을 중심했다. 서울에서 개척할 때 목회에 대한
체험은 학생들에게 좋은 교훈이 되었다. 신앙을 중심하지 않는다면 신학교육은 죽은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신학은 영적 에너지를 생산하는
신앙의 발전소가 있어야 한다. 모아진 에너지가 신학에 송전되어 기도의 불을 밝혀야 한다. 기도소리가 멈추지 않는 한 신학캠퍼스는 계속 영적인
빛을 발하며 발전할 것을 믿는다. 나는 교수이지만 목사다. 하나님의 종으로 부름을 받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영혼을 구원하는 사역을 중단할 수
없다. 그래서 병행하여 교회에서 사역을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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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순례에서 새벽에 시내산 정상에 올라서 멀리 바라보고
있다.. 또다시 꿈을 잡으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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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세례 받은
세례터이다 |
학생들에게 세계를 바라보는 눈을 갖게 해주고 싶었다. 그것은 나의 삶을 통해 체득한 소중한 경험들이다. 의지할 곳도, 충분한
돈도 없는 내가 미국에 유학할 수 있었던 것은 넓은 세계를 바라보는 눈을 여는 계기가 되었다. 학생들에게 항상 자신감을 심어주려고 했다. 예수를
믿고 기도하면 불가능이 없음을 알려주고 싶었다.
나의 삶을 통해 얻어진 소중한
경험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에게는 불가능이 없다는 것이다. 왜? 우주의 창조자인 하나님은 모든 것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립보서 4장 13절) 믿음을 가진 자에게는 불가능이 없다. 그동안 삶을 돌아보면 기도는 모든
것을 이루게 만들었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잘나서 쓰겠다, 하겠습니까
하늘이 나를 부를 때
내가
완전하고 잘나서 쓰시겠다 하시겠습니까
못나고 약하고, 겁쟁이 되어도
당신의 부름은
나를 도구로 사용해서 일하시겠다는
것이겠지요
하늘이 나를 부를
때
값있고 착하고 선해서 부르는 것이겠습니까
나를 벼리고 다듬어서
선한 도구로 사용해서 쓰려고
보잘 것 없어도, 못
되었어도
아름답다, 착하다 칭찬해서 쓰시려는 것이겠지요
하늘이 나를 부를
때
버림받고 쓸모없는 자 되어
방황하다가 당신을 만나서
영원한 소명을 받고 당신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세상을 살면서
악을
이기는 지혜를 하늘로부터 얻고
그래서 보잘 것 없는 나를
귀하다, 보배롭다, 아름답다, 하시니
장성우 목사의
자전적 에세이(42): 다시한번 꿈을 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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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대학교에서 정년퇴임을 하면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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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450회 정도 주례를 서면서 외국인 주례를
처음으로 영어로 하고 있다 |
세상을 사는데 참으로 중요한 것이 많다. 나에게 단 한가지만을 꼽으라고 한다면 그것은 ‘꿈’이다. 꿈은 우리가 실현하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을 말한다. 꿈을 갖는다는 것은 미래를 품는다는 뜻이다. 미래를 가슴에 담고 산다는 것은 현실의 의미를 날마다 해석하고 그 삶을
목적에 맞춰서 조정하며 산다는 뜻이다. 오직 사람만이 꿈을 꾸고 꿈을 품고 꿈을 향해 달려간다. 나의 꿈은 꾸는 대로 실현되었다. 모든 것은
원하는 대로 되었다. 정말 꿈은 위대하다.
열정의 뿌리도 능력이 아니라
꿈이다. 꿈을 지녔기에 젊게 살고 꿈을 접지 않았기에 열정이 넘친다. 사람이 먼저 꿈을 품지만 일단 꿈이 사람의 가슴을 차지하면 꿈이 사람을
움직인다. 꿈이 사람을 이끌어가고 꿈이 꺼지지 않는 열정을 불러일으키고 꿈이 필요한 힘도 공급한다.
꿈꾸는 사람들은 다르다. 꿈꾸는
사람들에게 빠지지 않고 찾아오는 손님이 있다. 고난이라는 불청객이다. 꿈을 꾸기 시작하면 신기하게도 고난이 그치지 않는다. 그러나 파도처럼
밀려오는 고난이 결코 꿈을 멈추지 못한다. 꿈은 그렇게 이루어진다. 될 것 같지 않았는데, 불가능해 보였는데, 내 생애 가운데 이런 일이
이루어지리라 기대하지 않았는데 그런 일들이 실제 눈앞에 펼쳐지는 것을 본다. 얼마나 감사하고 얼마나 감동하는지.. 망하는 이유는 오직 한가지다.
꿈을 잃을 때이다. 성경의 잠언이 다시 우리를 깨운다. '비전이 없으면 백성들이 망한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잠언 16:9)
절대 순종하는 아브라함의 신앙,
적극적이고 전투적인 야곱의 신앙,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요셉의 신앙이 그것이다. 구약에 있는 하나님의 종 가운데서 아마도 요셉이 가장 완전한
자일 것이다. 성경은 그의 성격상의 어떠한 결함도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우리는 그가 걸어온 길이 얼마나 험난했는지를 안다. 그의 환난은 의심할
것도 없이 그가 꿈을 꾼 때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꿈속에서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을 보았으며, 또한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알았다.
요셉은 그가 본 것으로 인하여
가히 두려워할 만한 모든 체험 가운데서 굳게 설 수 있었으며, 그를 통하여 하나님은 이 땅에서 그분의 백성을 위한 그분의 계획을 완성하셨다.
나는 요셉처럼 하나님의 섭리에 순응하며 살았다. 그러다 보니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성격을 갖게 됐다. 성경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말한다. 정말 공의를 위해 헌신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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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신학교에 같이 교수로 있던 현정규목사 내외와 같이
미국 신시내티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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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친구로 서울성서신학교에서 같이 교수로 있던
최순운목사 내외와 같이 미국 시카고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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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싸우스베이한인그리스도의교회 안대진목사내외는 귀한 사역을
하고 있다. 여러번 미국 집회를 했지만
150여명이 모이는 싸우스베이교회에서 집회는 잊을 수 없다. |
목사의 거룩한 삶을 지키기 위해 기도했다.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운 종이 될 수 없었다. 오직 기도 덕분이었다. 나의 기도뿐만
아니라, 주위의 중보기도 덕분이었다. 기도하는 부모의 자녀는 반드시 복을 받는다. 우리는 자녀들을 위해 매일 기도하고 있다. 기도의 위력을 믿기
때문이다. 나의 자녀들이 목회하기 때문에 더욱 간절히 기도한다.
두드림(Do Dream)
꿈을 두드려라. 꿈이 너를
결정한다
꿈꾸는 것은 사람이지만,
사람을 만들어 가는 것은 꿈
소망을 두드림(Do Dream)하면 미래가 북소리를
낸다
꿈은 긍정적 말과 함께 간다, 긍정적 말만 하라
시련에도 꿈은 결코 실패할 수
없다
꿈은 시련이라는 물을 먹고 자라기에
꿈꾸는 사람은 고난이라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고난이 위대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고난 가운데 꿈의 반응에 따라 너의 미래가 결정된다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찾아오고
형통은 기회와 준비가 만나는 교차로이다
방황을 이길 힘은 참된 꿈을 가지는 것
자신뿐 아니라 모두를 유익하게 할 수
있는 꿈을 꾸어야 한다
꿈을 꾸는 자, 축복 담을 그릇
준비하고
멀리 보고, 넓게 보고, 깊게 보아야
먼지 같은 인생도 태양 반사의 빛으로 새롭게 된다
꿈의 완성은 사건이나 성취
속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꿈의 인격 속에 나타나서 찬란하게 빛나게 되는 것이다.
장성우 목사의
자전적 에세이(43·끝): 살아온 발자국을 돌아보며 -은총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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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온 길을 돌아보고 또다시 앞을 보며 꿈을
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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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은 아론과 훌이 모세의 손을
들어주었던 곳이다(출17:1-16). 협력하여 선을 이룬다 |
걸어온 발자국을 여기서 멈추려한다. 세상에 남기고 걸어간 발자국이, 그리고 살아서 선명하게 찍혔던 눈 위에 흔적 발자국,
햇빛이 나고 계절이 바뀌면 없어질 것을 안다. 아직은 내가 걸어온 길, 뒤 돌아보면 발자국이 선명히 남아 있다.
인생의 길목에서 뒤돌아서서 내가
지내왔던 길을 되새겨 본다. 삶에서 나는 나름대로 본 것도 있고, 겪은 것도 있어서 보고 겪은 것을 담담하게 풀어왔는데, 많은 선조가 걸어갔던
그 길을 보면서, 이런 부끄러운 발자국을 남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회의한다. 선배 목사는 이렇게 말했는데....
‘나의 이름은 없어지고 오직
그리스도의 이름만 남기를..., 내가 죽는 날, 나의 한 일들은 모두 흔적 없이 거두시고, 그리스도의 이름만 남기를..., 그 이름만 영원하기를
바랍니다.’
네덜란드의 화가 렘브란트를
좋아한다. 그의 그림에는 삶의 곤고함과 비참함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그는 실존의 근저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고통을 숨기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어둡다. 하지만 그의 그림이 암담하지 않은 것은 캄캄한 어둠 속에 비치는 한 줄기 빛이 있기 때문이다. 그가 그린
<십자가 처형>을 볼 때마다 감동한다. 골고다 언덕 위에 세 개의 십자가가 서 있다.
잔혹한 형벌의 현장인 그곳은
어둡기 이를 데 없지만,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환한 빛살로 인해 그곳은 은총의 자리가 되고 있다. 낙원에 들어가실 때 나를 기억해달라고
부탁했던 한 강도의 얼굴에도 빛이 가득하다. 하지만 예수님을 조롱했던 다른 강도의 얼굴은 짙은 어둠 속에 잠겨 있다. 골고다 언덕에 쏟아진 그
빛으로 인해 십자가는 구원의 상징이 되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그 빛을 받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바울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그 빛과 만나 새 사람이 되었다. 어두운 밤하늘을 환하게 만드는 성좌들처럼, 인간 세상에 희망을 안겨 주었던 성인들 역시 빛과 만난 사람들이다.
빛과 만난 사람들은 대개 어둠의 심연 앞에서 절망했던 사람이다.
체칠리아는 오랫동안 꿈꿔왔던
종신서원을 앞두고 가슴 벅찬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래된 통조림을 먹고 식중독에 걸렸다. 치료를 받아봤지만 낫지 않았고,
오히려 병은 점점 악화되어 갔다. 고열을 떨어뜨리기 위해 페니실린을 과다하게 투여했고, 그 후유증으로 그만 실명하게 되었다. 좌절의 나날이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었고, 느닷없이 닥쳐온 불행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했다. 그 어둡던 시간 체칠리아는 사울의 다메섹 체험을
했다.
진실함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성실한 순종이다. 예수님의 삶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아멘’이었다. 그것이 고난이라 해도 신실하게 그 뜻을 받드는 것이다.
‘나의 생각은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너희의 길은 나의 길과 다르다’(사55:8) 그 다름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다. 어려운 것은 내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진실이다. 빛의 자녀는 그 뜻을 따른다. 빛의 자녀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분별하는 사람이다. 내 뜻을 위해 하나님을 동원하는 것은 불신앙이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나를 바치는 것이 믿음이다. 주어진 시간이
얼마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기에 바울은 ‘세월을 아끼라’고 신신당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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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대 졸업식에서 총장으로 치사를 하고 있다. 신학교
교수로 살아온 삶이 보람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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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교협이 마지막 지부의 결성인 제주도지부를 결성하고
동료 목회자와 같이 관광을 하고 있다 |
신앙이란 ‘깨어남’이다. 우리 삶이 뭔가에 ‘도취된’ 삶인 것을 깨달을 때 자유로운 삶이 시작된다. 삶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는 ‘더’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덜’의 길이다. ‘더’의 길을 걷는 이들은 늘 결핍감에 시달린다. 그래서 감사가 없다.
이미 많은 것을 가지고 있지만 빈곤하다. 남과 나눌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덜’의 길을 걷는 이는 지금 누리고 있는 것에 감사한다. 가진
것이 많지 않아도 풍요롭다. 남과 나눌 것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절대적 빈곤이나 고통은 우리를 부자유하게 만든다. 그것은 극복되어야 할
문제이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십시오.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서로 화답하며, 여러분의 가슴으로 주님께 노래하며, 찬송하십시오.’(에베소서 5장
18b-19절)
성령을 설명하기 위해 동원되는
많은 말이 있다. 충남 보령에서 목회하는 김영진 목사는 술만 마시면 찾아오는 마을 주민을 반갑게 맞으면서 "술 마시고 다른데 가지 않고 교회로
와서 다행' 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 주민은 술 취할 때마다 조용필의 <일편단심 민들레야>를 불렀는데, 그때마다 김 목사는 기타
반주를 해주었다. 그 주민은 지금은 그 교회의 안수 집사가 되었다. 빛 안에서 조심조심 걸으며, 어둠에 유폐된 사람을 이끌어내는 것이 우리의
소명이다. 주님의 은총 가운데서 빛의 자녀다운 삶을 향해 걸어가야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나의 걸어온 발자국을
사진을 넣어서 ‘그리스도의교회연구소’에 넣어 준 조동호 교수에게 감사를 드린다.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묵묵히 어렵고 험난한 길을 일심으로 ‘빛과
생명교회’와 함께 지켜온 것을 감사한다. 내가 직접 대놓고 한 번도 교수후배이지만 동료인 조동호 교수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 그러나
깊은 가슴 속에는 항상 감사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자서전 이야기’를 이렇게 잘 마무리 하여 발자국을 정리해 준 조동호 교수에게 감사를
드린다. 묵묵히 뒤에서 내조해 주시는 조동호 교수의 사모님에게도 감사를 드리며 이제 모든 자전거 에세이를 마치려 한다. 하나님께, 그리고
모두에게 감사를 드린다.
별이 빛나는 밤에
가슴에
오직, 별
하나
그리움으로 빛나는 밤에,
모두가 떠난
텅 빈
자리에
벌거벗은 나무처럼 외롭게 서 있는데,
만날 수 있기에
꿈이 있어
좋은 날
밤하늘에 눈물방울 애틋하게 반짝이고,
상큼한
네 향기를 느낄 수
있는
까만 밤이면
내 영혼에 감격의 노래가 넘쳐 흐른다.
이렇게
그리움이 출렁이는
밤
창 앞에 별
파란빛을 침실에 비춰 속삭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