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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2-05-19 11:18
성경과 역사 속에서의 교회(4_1)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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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역사 속에서의 교회(The Church in the Bible and in History)

강연: 하비 C. 브림 2세(Harvey C. Bream, Jr.)

번역: 조동호

역자 서문

이 자료는 신시내티기독대학교 및 성경대학원(Cincinnati Christian University and Cincinnati Bible Seminary)의 총장을 역임했던 하비 C. 브림 2세(Harvey Cleveland Bream, Jr.) 목사가 1989년 9월 10일부터 13일까지 총 4회에 걸쳐서 플로리다 올랜도에 위치한 싸우스이스트그리스도의교회(Southeast Christian Church in Orlando Florida)에서 행한 강연, ‘성경과 역사 속에서의 교회’(The Church in the Bible and in History)를 녹음한 4개의 오디오테이프들에 담긴 내용을 번역한 것이다. 역자는 이들 오디오테이프들을 오디오 파일들로 변환하였고, 이것들을 다시, 불완전하고 오류가 많을 테지만, 아무튼 문자화하였다. 그리고 이 오디오테이프들을 손에 넣은 지 20여년이 흐른 지금에 와서야 우리말로 번역을 시작하게 되었다. 오디오 파일들과 텍스트들은 그리스도의 교회 연구소(http://kccs.info) <그리스도의 교회>난 게시판 46-54, 81-89번에서 듣고 읽고 다운로드할 수 있다.

http://kccs.info/with_home/bbs/board.php?bo_table=history

하비 C. 브림 목사는 95세를 일기(一期)로 2018년 12월 1일 소천하였다. 하비 브림은 영감을 주는 교사, 설교자, 전도자, 찬양리더, 저자, 편집자, 학장, 총장, 이사였다. 그는 76주 이상 산상집회(Christian Service Camp)와 452주 이상 부흥집회를 인도하였고, 세 개의 교회들을 설립하였으며, 일곱 개의 교회들의 설립을 후원하였다. 그밖에도 그는 수많은 컨벤션들, 모금을 위한 집회들(faith-promise rallies), 세미나들, 부흥회들, 청소년 집회들, 남성 집회들, 리더십 집회들에서 강연하였다. 신시내티 기독대학교에서는 22년간 개인전도학을 강의하였고, 67년간 ‘그리스도인환원협회’(Christian Restoration Association, 독립 그리스도의교회들 곧 Christian Churches and Churches of Christ의 후원을 위한 단체)의 이사로 섬겼다.

강연내용은 총 6부로 나뉘어져 있다.

제1부 개론(INTRODUCTION): 신약성경교회, 어떻게 시작되었는가?(The New Testament Church: How It All Began). 

제2부 배도(100-1517) [THE APOSTASY(100-1517)]: 무엇이 교회에 잘못되었는가?(What Went Wrong with the Church?).

제3부 그리스도교(개신교) 개혁(1517-1800) [THE PROTESTANT REFORMATION(1517-1800)]: 돌아가는 길(The Road Back). 

제4부 환원운동(1793-1900)(출범과 성장) [THE RESTORATION MOVEMENT(1793-1900) (Beginnings and Growth)]: 하나의 새로운 시작(The Restoration Movement: A New Beginning). 

제5부 환원운동(1900-1969) (배도) [THE RESTORATION MOVEMENT(1900-1969) (Apostasy)]: 제20세기 배도, 또 다른 잘못된 회전(The 20th Century Apostasy: Another Wrong Turn). 

제6부 환원운동(1923-1974) (부활) [THE RESTORATION MOVEMENT(1923-1974) (Resurgence)].

아래의 강사소개는 플로리다 올랜도에 위치한 싸우스이스트그리스도의교회 목사가 1989년 9월 10일 저녁 집회 때 초청강사인 하비 C. 브림 2세를 집회 참석자들에게 소개한 내용이다.

강사 소개

우리는 여러분을 초대하였습니다. 연속해서 말씀들을 전해주실 하비 C. 브림(Harvey C. Bream)은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에 위치한 포레스트 대일 그리스도의 교회(Forest Dale Church of Christ in Cincinnati Ohio)의 목사입니다. 그분은 신시내티 성경 대학의 학장과 동기관의 총장(chancellor)을 역임하셨습니다. 그는 이전에 300회 정도, 부흥회들, 주간 집회들, 산상집회들(camps) 및 그 같은 수백회의 집회들에서 설교하셨던 전반적으로 부흥전도자이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4명의 자녀를 둔 아버지입니다. 그의 가족은 근본적으로 설교자들의 집안입니다. 제가 기억하기로는 그의 아버지, 그의 형제, 세 명의 동서들, 두 명의 아들들, 한 명의 삼촌, 두 명의 조카들, 한 명의 사위가 설교자이고, 세 명의 손자들이 장래의 설교자들입니다. 그간 그를 우리 교회에 모실 기회가 없었는데, 우리는 이번에 하비 목사님을 모시고 말씀을 듣게 되어 기쁩니다. 그는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에 소재한 ‘그리스도인환원협회’(the Christian Restoration Association in Cincinnati Ohio)를 위해 전 미주(美洲)들을 순회한 전도자로 섬겼고, 3개 교회들을 세우는 일을 도왔습니다. 그 가운데 한 곳이 포레스트 대일 그리스도의 교회인데, 1989년 신시내티 성경 대학의 총장직에서 은퇴하신 후 설교 목사로 복귀하셨습니다. 그리고 브림 형제님이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나오실 때 우리 모두 기쁨으로 그분을 환영합시다. 그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기 위해서 나오실 때 그분을 열렬히 맞이합시다.

환원운동사(RESTORATION HISTORY)

신약성경교회로의 환원(RESTORATION TO THE NEW TESTAMENT CHURCH)


제5부 환원운동(1900-1969) (배도) [THE RESTORATION MOVEMENT(1900-1969) (Apostasy)]: 제20세기 배도, 또 다른 잘못된 회전(The 20th Century Apostasy: Another Wrong Turn). 

서론[INTRODUCTION]

I. 정의 - 이탈, 원칙들이나 믿음의 포기[I. Definition - the falling away, the abandonment of principle or faith.]

강의 시리즈의 제목은 ‘성경과 역사 속에서의 교회’입니다. 우리의 첫 번째 강의에서 우리는 그것이 전부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떻게 교회가 설립되었으며, 어디에서 설립되었는지에 대해 공부하였습니다. AD 30년 예루살렘에서였습니다. 우리는 또한 그 강의에서 우리가 오늘날 회복하려고 힘쓴 신약성경에서의 교회의 여섯 가지 주요 특성을 고려하였습니다. 두 번째 강의에서 우리는 교회에 무엇이 잘못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우리는 신약성경의 규범이나 기준의 배도 즉 포기를 살펴보았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역사가가 세계사의 암흑기 또는 중세시대라고 부른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런 다음 세 번째 강의에서 우리는 돌아가는 길, 그리스도교(개신교) 개혁, 교회의 남용을 개혁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이러한 운동이 많이 발생하게 된 방법과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런 다음 네 번째 강의는 새로운 시작인 환원운동에 대해서 다뤘고, 부분적으로 여러 인물들과 여러 교단들에 관해서 신약성경의 이상과 그 교리들, 의식들(침례와 주의 만찬), 삶 그리고 후속적으로 이 운동의 역사를 채움에 따라 교회를 회복하려고 힘썼습니다. 이제 우리는 다섯 번째 강의, 잘못된 방향전환, 또 다른 하나의 잘못된 방향전환에 다다릅니다. 그것은 20세기의 배도이며, 모든 교회 역사에서 가장 암울한 장(章)들 중 하나입니다. 배도라는 그 말의 정의는 다시 단순히 원칙들이나 믿음에서 이탈하거나 포기하는 것입니다.

Ⅱ. 성경적 경고 - 사도행전 20:28-31; 로마서 16:17, 18[II. scriptural warning - Acts 20:28-31; Romans 16:17, 18.]

이제 그러한 배도는 예언되어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20장에서 사도 바울이 위대한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불러서 그들에게 강론할 때 28절부터 시작하여 이렇게 말해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여기 로마 그리스도인들에게 쓴 편지에서 사도 바울은 16장 17-18절에서 이렇게 말해야 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 이 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들의 배만 섬기나니, 교활한(good) 말과 아첨(fair)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

III. 배경[III. Backgrounds:]

A. 선교회들의 결성[A. Formation of missionary societies.]

이 신약성경의 호소를 국내외에 전파하기 위해서 시행하기 위해서 그것을 상기하십시오. 그것들은 선교회들의 결성이었습니다.

1. 미국그리스도인선교회(American Christian Missionary Society) - 1849.

첫 번째는 1849년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 대회에서 출범된 미국 그리스도인 선교회였습니다.

2. 그리스도인여성선교국(Christian Women’s Board of Missions) - 1874.

1874년에 그리스도인 여성 선교국이 설립되었습니다.

3. 해외그리스도인선교회(Foreign Christian Missionary Society) - 1875.

바로 이듬해인 1875년에 해외그리스도인선교회가 설립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다음 곧이어 교회확장위원회(the Board of Church Extension), 전국자선협회(National Benevolent Association), 목회자구호위원회(the Board of Ministerial Relief)와 같은 다른 선교 기관들과 단체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다양한 기관들이나 기구들에 대한 불만이 커지는 것이 분명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B. 악기사용 문제 - 1850[B. Instrumental question - 1850.]

이러한 혼란의 복합 속에서 악기사용 문제가 1850년에 발생했습니다. 그 문제는 예배드릴 때 악기를 사용하느냐 마느냐에 관한 것입니다.

C. 캠벨학회(Campbell Institute)의 결성 - 1896. "신(新)학습 또는 지식" - 합리주의(모더니즘)[C. Formation of Campbell Institute - 1896. The “new learning or knowledge” - Rationalism (Modernism).]

그러나 이제 우리는 극적인 전환기에 다다릅니다. 그것은 1896년에 결성된 캠벨학회(Campbell Institute)라고 불린 것의 결성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에드워드 스크리브너 애임즈(Edward Scribner Ames)는 1917년 이 캠벨학회의 <발전사: (20년사의 성취에 관한 캠벨학회의) 기념서>(Progress: Anniversary Volume of the Campbell Institute on the Completion of Twenty Years of History)를 쓰면서 35-43페이지에서 이 흥미롭고 중요한 배경을 설명합니다. 인용합니다.

“1892년 가을, 예일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던 다섯 명의 제자들(Disciples)이 [역자 주: 여기에서 “제자들”이란 그리스도의교회(Disciples of Christ)에 소속된 사람들을 말한다. 분열이 있기 이전에는 소속된 그리스도인들이 주로 “제자들”(알렉산더 캠벨 쪽에서 선호) 혹은 “그리스도인들”(발톤 스톤 쪽에서 선호)로 불렸고, “Disciples of Christ”는 널리 알려진 교단명칭의 하나였다. 1906년에 예배 때 악기사용을 거부한 미국 남부 그리스도인들이 떨어져나가 “Churches of Christ”(근본주의)가 되었고, 이후 다시 진보성향의 지도부가 장악한 “Disciples of Christ”에서 보수주의 그리스도인들이 탈퇴하기 시작하여 “Christian Churches and Churches of Christ”가 되었다. 그리고 원뿌리였던 “Disciples of Christ”는 1968년에 “Christian Church(Disciples of Christ)”(진보주의)로 교단을 재구성하였다. 영어 명칭에 쓰인 단수와 복수에 유의해야 한다.] 그리스도의제자들(Disciples of Christ)의 대학들에서와 대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목회자들의 조직결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였다.... 그 후 3년 동안 이 학생들 대부분은 같은 생각을 가진 다른 제자들과 연합하여 시카고대학교에서 그들의 학업을 계속하였다. [역자 주: 예일대학교에서 학위과정을 밟던 제자들이 시카고대학교로 옮겨간 배경에는 예일대학교 구약학 교수였던 윌리엄 레이니 하퍼(William Rainey Harper, 셈족어 권위자, 침례교 목사, 14세에 대학을 졸업한 천재)가 있다. 하퍼는 록펠러(John D. Rockefeller)가 1891년에 세운 시카고대학교 초대총장으로 1893년 35세의 나이에 발탁되어 갔는데, 베다니대학(알렉산더 캠벨이 세운 제자들 소속)을 나온 후 하퍼 밑에서 학업을 하던 헐버트 락우드 윌레트(Herbert Lockwood Willett)가 하퍼를 따라 시카고대학교로 옮겼고, 하퍼는 그에게 시카고대학교 영내에 제자들신학원을 세우도록 권유하였다. 헐버트 락우드 윌레트와 에드워드 스크리브너 애임즈는 시카고대학교 교수들이 되었고, 제자들신학원의 원장을 차례로 역임하였다.]  제자들신학원(Disciples' Divinity House) [역자 주: 제자들신학원은 시카고대학교와 밴더빌트대학교 구내에 설치된 제자들 교육기관으로써 이들 대학교들에서 목회사역을 준비하고 있는 석박사학위 과정의 제자들에게 숙식과 장학금을 지원하고 별도로 교단 정체성 확립에 필요한 교과목들을 이들 대학교들과 연계하여 교육한다.]이 1894년에 그곳에 설립되었다. 제자들의 역사(History of the Disciples)와 제자들의 교리사(History of Doctrine)에 있는 그것의 과정은 제자들에게 현대 학문에 비춰서 이 역사를 조사할 기회를 제공하였다.... 캠벨학회는 1896년 10월 19일 일리노이 주 스프링필드에서 그리스도의제자들의 전국 대회 회기들 중에 조직되었고 창립멤버는 14명이었다.... 이 사람들은 더 넓은 문화세계가 그들의 신앙(종교적) 유산에 미치는 영향을 느꼈던 공통 경험에 의해 뭉쳤다.... 그들은 신앙(종교) 활동의 재해석과 새로운 방법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였다....”

이 글을 지속하면서 세 개의 목적들 가운데 세 번째는 학회의 결성과 그 중요성에 대해 설명하였습니다. 들어보십시오. 인용합니다.  

“그리스도의제자들의 문헌과 사고(사상)에 항구적인 가치를 기여할 목적으로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일(저술)을 장려하려는 것이다.”

나중에 우리는 이것이 취한 방향과 형태를 주목할 것입니다. 1906년 <회보>에 실은 짧은 글에서 그 단체는 다음과 같은 말로써 이 개념을 자체적으로 제공하였습니다. 인용합니다.

“그 학회는 지난 25년간 훌륭한 대학교들을 특징지어온 신지식에 대한 의식의 산물이었다.”

여기에 18세기 기간에 신세계의 해안에 도달한 프로이센 합리주의(Prussian Rationalism)에 대한 환상이 있습니다. 물론 합리주의 공격의 중심점은 미국의 교육기관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의식하시다시피, 미국에 있는 거의 모든 초창기 대학들과 대학교들은 교회들에 의해 설립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전파하고 수호하기 위해 설립되었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이들 대학교들과 대학들에서 그것들의 본래의 정관들에 담겼던 그것들 본래의 설립취지(헌장)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 [목회자 양성을 목적으로 출발한 신학교들이 점차 진보신학에 경도되면서 갈라지는 현상들이 나타나곤 했는데, 그 대표적인 사례가 하버드대학교에 불만을 품은 보수신학자들이 프린스턴신학교를 세웠고, 프린스턴신학교에 불만을 품은 보수신학자들이 웨스트민스터신학교를 세운 경우이다.]

엘스워스 훼리스(Ellsworth Faris)는 1917년 <발전사 기념서>(Progress Volume)에서 캠벨학회에 관한 질문과 답변 난(欄)을 가졌습니다. 그는 이것을 질문번호 7로 게시하고 답변을 제시하였습니다.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무엇이 그들(즉 캠벨학회)을 조직하게 만들었습니까?” 대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제자들의 사역과 교육 사업에서 길을 잃고 있거나 길을 잃을 위험에 처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고등 교육이 형제지간에 단절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자, 엘스워스 훼리스(Ellsworth Faris)가 말하고 있었던 것은 이것입니다. 예일, 하버드, 시카고대학교와 같은 이들 더 큰 대학원들에서 목회를 위해 공부하고 있었던 또 이 합리주의를 소개받고 있었던 이들 젊은이들의 상당수가 목회를 중도 포기했거나, 또는 그들이 더 이상 환원운동의 원리들을 고수하지 않으면서 환원운동에 남아 위선자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으며, 또는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목회사역들을 위해 교파교단들로 옮겨가고 있었고, 그곳에서 그들은 그것이 그들이 새로 발견한 지식과 훨씬 더 일치하는 것을 발견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래서 그들의 캠벨학회는 이 신지식, 이 신학습, 이 합리주의를 환원운동의 원리들과 합리화시키려고 완전히 눈이 멀어서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들이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를 우리는 향후 문서에서 보게 될 것입니다.

신학계에서 이 신학습 또는 신지식은 무엇보다도 먼저 모더니즘(modernism)으로 불렸고, 그런 다음 나중에는 자유주의 신학(liberal theology)으로 불렸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사람들이 이 신지식을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 합리화하려는 많은 노력이 있었을 때 그것이 여기서 다시 언급되었음을 발견합니다.

D. 미국종교인구조사국에 별개로 등록 - 1906년[D. Separate U.S. Religious Census listings - 1906.]

그러나 제가 그것에 도달하기 전에, 저는 여기에 일종의 태도 혼란을 야기한 또 다른 것을 추가하고 싶습니다. 1850년에 이 논쟁이 불거진 결과로 야기된 그 뒤에 분열이 뒤따른 것은 그 같은 악기사용 논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러고 나서 이 논쟁은 데이비드 립스콤(David Lipscomb)이란 이름의 저명한 인물인 무악기 설교자에 주로 집중되었습니다. 그는 미국종교인구조사국(the United States Religious Census Bureau)에 접촉하여 이들 무악기 교회들이 그리스도의교회들(the Churches of Christ)로 별개로 목록에 실리도록 요청하였습니다. 이때가 1906년이었습니다.

같은 해에 그리스도의제자들(Disciples of Christ)의 몇몇 중요한 지도자들이 그때 미국종교인구조사국에 접촉하여 다른 모든 그리스도의교회들(Churches of Christ)과 그리스도인의교회들(Christian Churches)이 그리스도의제자들(Disciples of Christ)이란 이름(caption)으로 목록에 실리도록 요청하였습니다.

E. 100주년 기념대회, 펜실베이니아 주 피츠버그 - 1909년[E. Centennial Convention, Pittsburgh, Pennsylvania - 1909.]

그런 다음 이 자유주의 신학이 이 환원운동 속으로 침입했다는 첫 번째 징후가 공개적으로 있었던 것은 이때로부터 3년 후인 1909년 펜실베이니아 주 피츠버그에서 열린 100주년 기념대회 때였습니다. 저의 부모님들은 그 특별한 대회에 참석하셨습니다. 저는 저의 유년시절에 저의 어머니께서 이 대회기간에 피츠버그 시내 거리 모퉁이들에서 50명에서 500명에 이르는 군중이 어떻게 그곳에 서서 웅장하고 오래된 시온의 노래들을 불렀는지를 말씀하셨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녀는 그것이 짜릿한 기분(감동적)이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이 운동은 매우 괴롭힘을 당하였고 크게 비방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여전히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신앙(종교)운동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유주의 신학이 침투한 첫 징후가 있었던 것은 이 대회였습니다. 주요 연사 중 일부는 동정녀 탄생 신화,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부활에 대한 신화를 언급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커널 새뮤얼 하든 처치(Colonel Samuel Harden Church)라는 이름의 피츠버그 변호사가 행한 한 특정 연설은 [역자 주: 커널 새뮤얼 하든 처치(Colonel Samuel Harden Church, 1858-1943)의 강연주제는 ‘일백년의 진보와 성취들’(Progress and Achievements of a Hundred Years)이었다.] 그의 신학이 너무 급진적이어서 전례 없는 방식으로 그 대회에 참석한 수많은 청중이 야유를 보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것은 너무 급진적이어서 그의 연설문은 인쇄될 그 대회의 다른(후속) 연설문들에 끼지 못하고 출판물에 게재도 되지 않았습니다.

F. 연합그리스도인선교회의 결성[F. Formation of United Christian Missionary Society - 1919.]

그 직후인 1911년에 당시 해외그리스도인선교회 집행위원회의 통신 또는 기록 서기였던 로버트 엘모어(Robert E. Elmore)가 해외그리스도인선교회로부터 해외에 파송된 선교사들과 서신을 주고받으면서 여기 미국에 있는 교회들에게는 아직 생기도 않았고 알려지지도 않은 소위 개방회원제(open membership)란 것을 선교사들이 실행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자, 개방회원제란 것은 우리가 경건한 미침수자들(pious unimmersed) [역자 주: ‘경건한 미침수자들’(pious unimmersed)이란 표현은 1837년에 알렉산더 캠벨이 약식세례를 받은 자들에게 “경건한 미침수 그리스도인”이란 지위를 부여한데서 비롯되었고, 이로 인해서 ‘루넨버그 서신’(Lunenburg Letter) 논쟁이 있었다. http://kccs.info/rh13lessons_Teaching_Materials.pdf, 229-253쪽.]이라고 일컫는 자들을 교인(membership)으로 받아드리는 관행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교회들에서 전도자들과 장로들과 또 다른 지도자로 쓰임받기 위해서 받아드려졌습니다. 엘모어 형제는 이 사실을 형제들에게 알려야한다고 선교회에 요청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거절하였습니다. 그는 도덕적 무결함을 누리기 위해서 마침내 자신의 직(職)에서 사임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이 사실들에 관한 이 모든 주고받은 서신들이 출판되었고, 형제들은 이 상황에 불타올랐습니다.

그런 다음 다시 소위 연합그리스도인선교회(United Christian Missionary Society)라는 하나의 형태(조직)가 된 것은 1919년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에서였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앞서 언급했거나 인용한 모든 전술한 여섯 개 기관들의 통합으로 구성되었습니다. 그것들은 모두 이 하나의 기관으로 통합되었습니다. 다시 저는 저의 부모님께서 이 대회에 참석하셨던 것을 기억해냈습니다. 그분들은 (그것이) 극도로 논란의 여지가 있는 문제(이슈)였기 때문에 그들이 투표를 했을 때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분들은 반대(nays)가 우세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장은 찬성(ayes)이 통과됐다고 선언하였습니다. 그 투표를 마쳤을 때 마침내 켄터키 주 조지타운에 있는 역사적인 제일그리스도인의교회(First Christian Church)의 목사인 빨간 머리칼의 설교자가 연설하기 위해서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그는 물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이 아기를 낳았다면, 우리는 그것을 위해 무엇을 만들 것입니까? 하나의 요람입니까? 또는 하나의 케이지(cage)입니까?” 그 만장일치의 질문은 곧바로 역사적 사실에서 지지를 받아 그들은 빠르게 진행을 시작하였습니다.

IV. 환원운동의 고유(固有)의 원리들[IV. Original principles in the Restoration Movement:]

A. 성경 - 성령의 영감으로 된, 무류(無謬)한 - 하나님의 권위 있는 말씀 - 믿음과 실천의 유일하고도 전적으로 충분한 규범(성경의 백성, 성경책의 백성).[A. The Bible - Holy Spirit inspired, infallible - the authoritative Word of God - the only and all-sufficient rule of faith and practice (a Bible people; a people of the Book).]

이 시점에서 저는 여기서 다시 불쑥 끼어 넣고 싶습니다. “이 시점에서 모든 그리스도인의교회들(Christian Churches)과 그리스도의교회들(Churches of Christ)이 믿어야만 했던 것들이 무엇이었습니까?” 첫째로 그들은 성경이 성령의 영감(靈感)으로 된, 무류(無謬)한, 하나님의 권위 있는 말씀이며, 믿음과 실천 모두에 있어서 유일하고도 전적으로 충분한 규범이란 것을 믿었습니다. 그것이 그들이 성경의 백성 또는 성경책의 백성으로 그들이 언급된 이유입니다.

B. 예수 그리스도 - 메시아와 죄에서 구원자,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독생자” - 성령으로 잉태되시고 동정녀에게 태어나심[B. Jesus the Christ - the Messiah and Savior from sin, “the only begotten Son of the living God” - Holy Spirit conceived, virgin born.]

둘째로 모두 다 그들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시요, 메시야시요, 죄에서 구원자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독생자시요, 성령님으로 잉태되셨고, 동정녀에게 나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과 죽으셨고 장사지낸바 되셨으며, 다시 사셨고, 시작하셨으며, 승천하셨고, 다시 오실 것을 믿었습니다.

C. 교리와 의식들과 삶에서 신약성경의 모범을 따른 교회의 환원[C. The restoration of the church after the New Testament pattern - in doctrine, ordinances, and life.]

셋째로 그들은 모두 교리와 의식들(침례와 주의 만찬)과 삶에서 신약성경의 이상을 따르는 교회의 환원을 주창하였습니다.

D. 신약성경 - 일치의 유일한 실제적인 기준[D. The New Testament - the only practical basis of unity.]

넷째로 그들은 모두 신약성경이 일치의 유일한 실천적 기준이라고 믿었습니다.

E. 인위적인 수단들은 하나님이 제정하신 것들이 아니므로 교제의 시금석들이 되지 못함[E. Human expedients not permitted to become tests of fellowship, as they were not of divine origin.]

다섯째로 그들은 또한 인위적인 수단들은 하나님이 제정하신 것들이 아니므로 결코 교제의 시금석들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믿었습니다.

F. 세기의 전환기에 이 기준 위에서 진행 - 오순절 이후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신앙 운동[F. Proceeding on this basis, at the turn of the century - fastest growing religious movement since Pentecost.]

여섯째로 세기의 전환기에 이 기준 위에서 진행되면서 이 운동은 북미 대륙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였습니다. 이제 모든 그리스도의 교회들(Churches of Christ)과 그리스도인의 교회들(Christian Churches)은 금세기가 오기 전까지 이 모든 전술한 것들을 믿었습니다.

I. 합리주의의 침투(불신앙)[I. Infiltration of Rationalism (Infidelity).]

그런 다음 합리주의 또는 불신앙과 불신의 심각한 침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A. R. E. 오스본(R. E. Osborn)에 의해 인정됨 - 국제 대회 - 1958[A. Admitted by R. E. Osborn - International Convention - 1958.]

이것은 1958년 (세인트루이스에서 모임) 그리스도의제자들국제대회에서 로널드 E. 오스본(Ronald E. Osborn)에 의해 인정되었습니다. 그의 연설 제목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의 미래와 에큐메니칼 항해(航海)”(Future of the Disciples of Christ and Ecumenical Voyage)였습니다. 그 연설에서 그는 캠벨(Campbell), 밀리건(Milligan), 맥가비(McGarvey), 앨런(Allen?) 및 필립스(Phillips)의 교리적 개요를 언급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용합니다.

“오늘날 이들 목소리들은 다른 세계에서 곧 대중정신에 현대과학이 영향을 미치기 전, 성경비평과 양식비평(Form Criticism)이 있기 전, 미개척영역이 지나가기 전, 우리의 비대해진 기관들의 오류가 있기 전, 우리의 전문 목사직이 발전하기 전, 에큐메니칼 펠로우십(ecumenical fellowship)이 출현하기 이전의 세계에서 울려 퍼졌다.”

그런 다음 그는 말할 때 이 탈선을 공개적으로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인용합니다.

“이미 20세기로 접어들면서 우리 입장의 전통적인 공식은 일반적으로 현대사상과 특별히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으로 흔들려왔다. 그러나 큰 초교파 대학원들에서 공부한 우리 남성들은”(여기서 그는 예일, 하버드, 시카고대학교와 같은 학교들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자유주의의 관점에서 제자들의 입장을 설득력 있게 재구성하였다. 그리고 금세기 초 수십 년에 걸쳐서 우리는 신흥 에큐메니칼 운동에 신학적으로는 물론 행정적으로도 중요한 리더십을 제공하였다.”

B. 교육자들과 학자들의 견해. 학자들의 패널의 저술들 - <교회 갱신> - 1963년에 출판됨[B. Views of educators and scholars. Published works of Panel of Scholars - The Renewal of Church - 1963.]

1956년에 연합그리스도인선교회(United Christian Missionary Society)와 그리스도의제자들 고등교육위원회(Board of Higher Education of Disciple of Christ)가 소위 학자들의 패널(Panel of Scholars)이란 것을 선발하였습니다. 이 학자들의 패널은 환원운동의 원리들을 재연구하고 그것들이 수정을 필요로 한 것들을 수정하도록 위임되었습니다. 7년 후인 1963년에 이 학자들의 패널은 <교회갱신>(The Renewal of Church)이라는 세 권으로 엮은 한 질의 책을 출판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세 권으로 엮은 한 질의 책에서 그들은 로널드 오스본(Ronald Osborn)이 여기 그의 연설에서 확언한 모든 것에 대한 확증을 밝혔습니다.

1. 성경의 영감과 무류성에 대한 부인[1. Repudiation of Bible’s inspiration and infallibility.]

우선 이들 책들에서, 이들 책들은, 그런데, 주로 이전에 이미 여러 출판물에 실렸던 이들 학자들의 글들로 구성되었습니다. 우선, 시리즈에서 그들은 성경의 영감과 무류성을 부인하였습니다. 그것에 대해 언급된 것을 여기에서 저와 함께 주목해 주십시오. 랄프 G. 윌번(Ralph G. Wilburn)은 당시 켄터키 주 렉싱턴(Lexington Kentucky)에 소재한 칼리지 오브 더 바이블(College of the Bible. Lexington Theological Seminary로 변경됨)의 과장(dean)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1959년 1월호 <칼리지 오브 더 바이블 계간지>(the College of the Bible Quarterly)에 실은 ‘그리스도로서 예수의 경험에 있어서 전통의 역할’(The Role of Tradition in the Experience of Jesus as Christ) 12쪽에서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인용합니다.

“성경말씀의 난공불락의 바위는 성경비평학 덕분에 더 이상 난공불락이 아니다.”

같은 글에서 그는 다시 이렇게 말합니다. 인용합니다.

“옛 그리스도교(개신교)의 무류(無謬)한 책은 지성을 위한 비평적 사고(思考)를 위해 영원히 사라졌다.”

그런 다음 그는 또한 이렇게 말합니다. 인용합니다.

“최근의 성경비평에 의해 도달된 결론들에 비추어 볼 때, 신학적 정직(integrity)은 무류(無謬)한 책에 대한 이 잘못된 믿음, 선구자들(fathers)의 관점에서 대단히 모호한 믿음, 신약성경 문서의 틀리지 않을 수 없는 역사적 성격의 포기를 작성하도록 더 많은 힘을 제자들 교단(Discipledom)에게 일으켰다.”

이것은 <인카운터>(Encounter) 1959년 여름호 342쪽에 실린 ‘환원 원리 비평’(A Critique of the Restoration Principle)에서 발견되었습니다.

2. 예수님에 대한 성경의 진술을 거부[2. Repudiation of Bible’s representation of Jesus.]

또한 이 시리즈 책에서 이 학자들의 패널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성경의 진술을 거부하였습니다. 켄터키 주 렉싱턴에 소재한 성경대학(College of the Bible)의 신약학 교수인 윌리엄 베어드(William Baird)가 말한 것과 그가 권위로 여겼던 것 그것에 관해서 저와 함께 주목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인용합니다.

“그러나 양식비평의 등장 이후로 예수의 생애에 대해 무엇이 밝혀질 수 있는지에 대한 심각한 질문들이 제기되었다. 복음서들은 역사적 기록들이 아니라 작은 단위들(units 혹은 forms)의 구전을 편집한 것이다. 이들 단위들의 많은 부분이 역사성에서 의심스럽거나 문학적 관련성에서 후대의 편집가가 구성한 것이 확실하다. 역사적 예수에 대한 탐구는 막다른 골목에서 길을 잃은 것 같았다.” [역자 주: 신약학에서의 양식비평(Formgeschichte)의 대표적인 학자들은 카를 루트비히 슈미트(Karl Ludwig Schmidt, 1891~1956), 마르틴 디벨리우스(Martin Dibelius, 1883~1947), 루돌프 불트만(Rudolf Bultmann, 1884~1976) 등이었다. 슈미트는 <역사적 예수의 구성>(Der Rahmen der Geschichte Jesu, 1919)에서 복음서를 전승 자료들의 수집이라고 보았다. 디벨리우스는 <복음서 양식사>(Die Formgeschichte des Evangelium, 1919)에서 복음서의 내용을 예증들(Paradigms), 설화들(novellen or tales), 어록들(sayings), 전설들(legends), 신화들(myths)이란 다섯 개의 양식들(forms 혹은 units)로 구별하였으며, 이들 전승들은 선교적인 필요성에 따라 설정되었고, 설교 속에 존재하였으며, 후에 발전된 양식에 첨가되었다고 주장하였다. 불트만은 <공관복음서 전승사>(Die Geschichte Der Synoptishen Tradition, 1921)에서 크게 두 개의 양식 곧 예수의 말의 전승과 설화자료의 전승으로 나눈 후 다시 아포프테크마(논쟁대화, 사제대화, 전기적 아포프테그마), 주의 말(로기온, 예언자의 묵시적 말, 율법의 말과 교회 규율, 나-말), 이적 설화 그리고 역사 설화와 전설이란 네 개의 양식들로 구별하였으며, 이들 전승들은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창작(개작, 조작) 또는 신앙고백이라고 주장하였다. 역사적 예수에 대한 탐구는 옛 탐구(old quest)학파와 신 탐구(new quest)학파로 나뉜다.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가 옛 탐구학파에 속한다면, 신 탐구학파는 1950년대에 군터 보른캄(Gunther Bornkamm, 마태복음 연구), 빌리 마르크센(Willi Marxsen, 마가복음 연구), 한스 콘젤만(Hans Conzelmann, 누가복음 연구)과 같은 편집비평(Redaktionsgeschichte) 학자들을 말한다. 편집비평학자들은 복음서 저자들을 역사가로 보기보다는 신학자, 해석자, 편집자로 간주하였다.]

<칼리지 오브 더 바이블 계간지>(the College of the Bible Quarterly) 1958년 7월호 17쪽의 ‘설교로써 종말론’(Christology as Sermon)에서 발견된 인용문 끝에서 과장 윌번(Wilburn)은 거의 같은 것을 실제적으로 말하고 결론을 내립니다. 인용합니다.

“요컨대, 성경이나 예수의 가르침이 어떤 의미에서 권위로 간주될 수 있는지에 대한 전체 질문이 문제가 되어왔다. 오래된 정통적인 의미에서 이 믿음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환원 원리 비평’(A Critique) 339쪽에 있는 인용문 끝. 그런 다음 학교를 장악하기 위한 자유주의(신학)자들의 투쟁에 관해 선교회의 임원들 중 한 명인 스티븐 J. 코리(Stephen J. Corey)는 말합니다. 인용합니다.

“그 결과는 교육 기관에 대한 우리 형제애의 흐름을 정말로 바꿔놓았다. 오늘날 성경대학(College of the Bible)의 교수진이 그토록 무익하게 표명한 것은 주로 그리스도의제자들 고등교육위원회(Board of Higher Education of Disciple of Christ)의 회원 자격을 보유한 모든 학교들의 교수진의 신념과 작동 원리가 되었다.”

그것은 55쪽과 <공격과 논쟁의 50년사: (그리스도의 제자들 사이의 결과)>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3. 교회의 헌장으로써의 환원과 신약성경을 거부[3. Rejection of restoration and New Testament as church’s constitution.]

또한 우리는 이 세 권의 책에서 이 학자들의 패널이 신약성경 교회로의 환원개념을 거부하고, 교회의 헌장으로써의 신약성경 개념을 거부한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다시 우리는 제가 앞에서 언급한 과장 오스본이 그의 연설에서 이것을 말하고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인용합니다.

“그 슬로건 곧 환원주의자적 원시 그리스도교, 그것의 교리, 그것의 의식들(침례와 주의 만찬), 그것의 진리로 이 관심을 표명한 우리의 선구자들(fathers)은 환원주의(restorationism)가 사도성(apostolicity)에 대한 잘못된 시도였었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었다.”

4. ‘개방회원제’(open membership)의 실천[4. Practice of “open membership.”]

5. 에큐메니칼 열망에 엮여서 초교파적 지위를 거부[5. Rejection of undenominational status linked to ecumenical aspirations.]

6. 인위적인 수단을 기본적인 신앙이나 교리의 수준으로까지 높임. 참조: 13건의 법정소송들과 제자들의 주장[6. Elevating of human expedients to level of basic faith or doctrine. Cf. the 13 court cases and the allegations of Disciples.]

고대 교회에서 기록된 모든 관행은 아무리 우연한 것이라도 항상 일부를 철갑(鐵甲) 패턴으로 구성했다는 것은 가정입니다. 결국 나중에 이렇게 말합니다. 인용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제자들이 특히 중요한 에큐메니칼 미래로써 우리의 삶의 영역에 대한 하나의 그리스도교 교단으로서 우리 자신이 기능하는 것을 존중한다.”

이것들은 형제애 구조와 신학입니다. 왜냐하면 이제 여러분이 보시다시피 그들이 환원에 대한 거부를 에큐메니칼 열망과 연결하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그가 언급하고 또 그가 시인한 오스본(Osborn에서 더 지적됩니다. 인용합니다.

“제자들이 의식적으로 일하고 있고, 또 더 합리적이고, 더 내면에 만들어진 교회 구조는 건전하다. 우리는 그러한 것을 인식하고, 그것으로 인하여, 헌장과 부칙에서 분명한 진술을 통한 각 회중, 형제애 프로그램에 대한 헌신의 확고한 원칙의 실질적 이행과 책임 있는 협력 구조에서 모든 발전을 장려하는 것이 현명하다.”

자, 왜 이 모든 것이 이행되어야합니까? 과장 오스본은 우리에게 아주 분명하게 말합니다. 인용합니다.

“이렇게 해야만 우리가 대회를 통해 교회 협의회들(Councils of Churches) 회원 자격을 가지고 에큐메니칼 운동에 관여하고 책임 있는 기관들을 통해 그 일에 참여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그래야만 미래의 가능한 버전(version, 형태)으로의 성공적인 모험과 연합교회(United Church) 안에서 더 폭넓은 삶을 찾기 위해 (그리스도의)제자들로서의 우리의 삶을 손해 볼 어떤 희망이 있는가?”

그런 다음 그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인용합니다.

“교회주의가 성장하고 있다. 에큐메니칼 운동은 교단 위에 세워진다. 교단의 합병으로 진행되는 연합은 점점 더 (그리스도의)제자들이 자신들을 하나의 교단으로 보게 하고, 언젠가 회복된 구조를 통해 보다 합리적이고 효과적인 교회 제도를 추구하게 한다.”

해프닝이 있었던 것은 이렇습니다. 이들 (그리스도의)제자들의 지도자들 곧 이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여기 우리나라에서 에큐메니칼 운동의 창립멤버가 되었습니다. 1906년 초에 미국연방교회협의회(Federal Council of Churches of Christ in America)가 공식화되었고,[역자 주: FCC 곧 연방교회협의회는 2년 뒤인 1908년에 창립되었다.]

 차례대로 1950년에 전국기독교교회협의회(National Council of Churches of Christ, NCC)로 알려진 더 큰 조직의 회원교단이 되었으며, 1948년에는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 of Christ, WCC)의 회원교단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프닝이 있었던 것은 이렇습니다. 이들 (그리스도의)제자들의 지도자들은 이들 에큐메니칼 결합체들에 참석할 때 오히려 좌절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이 결합체는 교단에서 만들어졌고, 그곳에서 존경받는 대표가 그들의 전체 교단을 위해 공식적으로 권위를 가지고 발언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들 (그리스도의)제자들의 지도자들은 그들 자신이 전혀 그러한 위치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의교회들(Churches of Christ)과 그리스도인의교회들(Christian Churches)은 개교회가 자치권을 갖는 자치제도(locally autonomic self-governing)였습니다. 그들은 오직 그들 자신만을 대표합니다. 그들은 전체 (환원)운동권을 위해 발언할 수 없습니다. 또 그래서(그런 이유 때문에) 그들은 이 재구성 과정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하나의 진정한 교단이 될 수 있고, 결국 그런 다음 교단으로서 에큐메니칼 결합체에 참여하며, 공식적으로 권위를 가지고 전체 (환원)운동권을 대변합니다. 이것이 이 모든 발전의 배후에 있는 근본적인 이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