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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2-04-18 21:42
성경과 역사 속에서의 교회(3_1)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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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역사 속에서의 교회(The Church in the Bible and in History)

강연: 하비 C. 브림 2세(Harvey C. Bream, Jr.)

번역: 조동호


G. 사제들에 의해 해석된 책이 아니라 백성을 위해 선포된 하나님의 책[G. God’s Book proclaimed for the people rather than as interpreted by the priests.]

H.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 – 1530[H. Augsburg Confession of Faith – 1530.]

IV. 다른 개혁자들:[IV. Other Reformers:]

주일 저녁에 우리는 모든 것이 어떻게 시작되었는가에 대해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리고 오순절에 시작된 교회와 그 초기 역사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회복하려고 힘쓰고 있는 교회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회복하려고 힘쓰는 신약성경교회의 여섯 가지 주요 특징들을 공부하였습니다. 그런 다음 어젯밤에 “무엇이 교회에 잘못되었는가?”라는 문제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세계사에 관한 암흑시대와 중세시대의 대배도와 신약성경의 교리와 관행으로부터의 아주 많은 이탈과 그것들이 이후의 교회 공의회들과 교황들의 교령들과 그 같은 것들에 의해서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가를 공부하였습니다. 교황 레오 10세(Leo X)의 면죄부 판매와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 건축이라는 프로젝트를 완성시키려는 노력에 대해 반발(저주)하는 한편, 그 행위가 교회 자체 내에서 격렬한 반응, 곧 이 혐오스러운 면죄부 판매 관행에 대한 저항을 불러일으켰고, 일제히 분기한 저항은 마르틴 루터라는 인물에게서 최초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난 저녁에도 이 사람이 10월 31일에 끼친 엄청난 영향을 공부하였습니다. 이 모든 반대자들은 그가 비텐베르크 대성당의 교회 문에 “95개조의 의제”를 붙이고, 이 모든 95개조의 의제들에 대해서 누구든지 공개 강단에서 자신과 토론하자며 전체 로마가톨릭교회에 속한 누구에게나 도전했을 때 위협하였습니다. 그러나 종교개혁은 스위스까지 휩쓸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오늘 밤 “돌아가는 길”에서 다룰 내용이며,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이 현재 시리즈의 제목입니다.

A. 스위스-츠빙글리(1484-1531)[A. Switzerland-Zwingli (1484-1531).]

1. 성상 파괴[1. Crusade against images.]

스위스에서 두 주요 개혁가들은 울리히 츠빙글리와 장 칼뱅이란 이름의 인물들이었습니다. 자, 츠빙글리는 군인이었습니다.[역자 주: 하비 브림 목사는 츠빙글리(Ulrich Zwingli, 1484-1531)의 이름을 ‘존’(John)으로 착각하였다. 그러나 정확한 이름은 ‘울리히’(Ulrich)이며, 군목이었다.] 실제로 그는 결국 전투에서 사망하였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부하들과 함께 교회 건물들로 들어가 이들 아이콘들과 성상들을 집어 들고 건물 밖으로 끌어내어 거리들 한가운데와 교회 건물들 앞에서 부숴버린 인물은 츠빙글리였습니다. 물론 그 같은 행위는 츠빙글리를 그 특정한 시대에 매우 인기 있는 인물이 되게 하였습니다.

2. 모든 그리스도인은 영성체를 위해 첫날에 모여야 함을 강조함[2. Emphasized that all Christians should meet on the first day for communion.]

그러나 츠빙글리는 종교개혁에 매우 중요한 기여를 했습니다. 주의 만찬이 주일마다 다시 거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사람들이 빵뿐만 아니라 잔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 인물은 츠빙글리였습니다. 그 이전의 특권은 몇 세기 전에 교회 공의회들과 교황들의 교령들에 의해 박탈되었습니다. [역자 주: 츠빙글리에 관한 하비 브림 목사의 강연에 오류가 있는 듯싶어 바로 잡고자 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미사는 그 자체가 성만찬 예배였으나 신도들에게 잔이 주어지지 않았고, 고해성사를 받지 못한 신도들은 빵조차 받지 않았다. 츠빙글리는 미사에서 사라진 자국어(自國語) 예배와 설교를 복원시키고 예배순서를 간소화시켰다. 성당에서 아이콘, 성상, 악기들을 제거할 때 주의 만찬도 함께 주일예배에서 분리시켜 연중 4회(부활절/봄, 성령강림절/여름, 가을, 성탄절/겨울)로 제한시켰다. 대신에 빵과 잔을 함께 받게 하였다. 츠빙글리는 주일예배에서 설교를 복원한 대신에 주의 만찬을 빼냄으로써 주일예배를 기도회로 전락시켰다. 매주 주의 만찬을 거행하는 것이 옳다고 믿은 사람은 칼뱅이었다. 그는 츠빙글리가 고착시킨 연중 4회의 주의 만찬을 매주로 바꾸려 하였으나 시의회가 허락하지 않아 실패하였다. 당시 취리히나 제네바의 그리스도교는 시의회(국가)종교였다.]

츠빙글리가 행한 일들 가운데 한 가지는, 이에 대해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침례를 공로와 최초로 동일시한 인물은 츠빙글리였습니다. 그 같은 그리스도교(개신교) 종교개혁에서의 강조는 바로 이 시간까지 대물림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침례를 일종의 일 곧 공로와 동일시할 것입니다. 물론 성경에서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침례가 공로에 해당된다고 믿지 않습니다. 우리는 신약성경의 이상(ideal)을 따라 교회를 회복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다시 한 번 여러분은 배경(맥락)을 이해하셔야 합니다. 로마가톨릭교회를 대항할 강한 믿음을 증명한 이 모든 위인들은 참회들과 성사들과 공로들에 의해 구원을 받는다고 강하게 강조하는 이 배경에서 나온 인물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에 대한 반응에서 그들은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합당한(공로에 따른) 구원을 얻기 위한 노력으로 해석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침례를 이런 종류의 일과 동일시하였습니다.

B. 1536년 칼뱅이 제네바로[B. Calvin to Geneva in 1536.]

그러나 칼뱅은 아마도 바로 현 시점까지 그리스도교(개신교) 종교개혁에서 가장 널리 영향을 끼친 인물일 것입니다. 이제 칼뱅이 실제로 믿었던 생각들의 대부분은 우리가 어젯밤 배도에서 논의했던 아우구스티누스(어거스틴)가 일찍이 가르치고 소개한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초기교회 교부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원죄교리 곧 아담의 죄의 결과뿐 아니라 부패와 유죄가 인류에게 유전되었다는 사실을 가르치기 시작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들은 죄 가운데서 태어난 아기가 필요했습니다. 루터는 그렇게 믿었습니다. 칼뱅은 그렇게 믿었습니다.

1. 예정(선택)[1. Predestination (election).]

또한 그는 원죄의 결과, 즉 인간의 전적인 유전적 타락을 믿었습니다. 그는 인간이 너무 타락(부패)했기 때문에 바로 그 본질상 원죄 때문에 자신의 마음에 설교하는 자에게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응답할 수 없다고 믿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인간의 무능(incapability), 인간의 무력(inability)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다시 여러분은 그 배경을 이해하셔야 합니다. 그들은 한 가지 사실 곧 자신의 구원에 대해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거나 인간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원죄교리와 전적인 유전적 타락 때문에 그때 하나님의 절대주권 교리가 존재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제 루터처럼 칼뱅은 인간이 공로에 따른 구원을 얻기 위해 할 수 있다는 역겨운 공로에 의한(공로로 말미암는) 구원의 교리에 대한 자신의 과잉반응에서 마치 루터가 믿음에 의한(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에 ‘오직’(ONLY)이란 단어를 붙임으로써 경도되었듯이 다른 극단으로 치우쳤습니다. 그리고 그는 오직(ONLY) 믿음에 의한 구원에서 떨어져 나왔습니다. 자, 이제 칼뱅이 등장합니다. 그는 그런데 믿음이 그랬던 것처럼 오랫동안 무시당한 성경의 교리인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과잉반응에서 그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라고 부른 것을 강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주권은 너무나 절대적이다. 사람이 일찍이 태어나기 전부터 하나님이 미리 정하신 영원한 운명 곧 천국에 갈 사람들과 지옥에 갈 사람들이 정해져있고, 사람이 태어난 후에는 그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고, 하나님의 예정을 바꿀 수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칼뱅주의 예정론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만약 사람의 원죄로 말미암아 아담의 원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유전된 것이라면, 그러면 사람들은 이처럼 전적으로 타락하게 되었고, 전파된 복음에 믿음으로 응답할 수 없으며, 하나님의 주권이 너무도 절대적이어서, 사람은 일찍이 태어나기도 전에 구원을 받을 것인지 버림을 당할 것인지가 예정되었고, 그러고 나면 사람은, 그가 태어난 후에는, 하나님의 예정을 바꾸기 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러고 나면 질문은 이렇습니다. 하나님에 의해서 내가 구원받기로 예정되었는지 버림받기로 예정되었는지를 나는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내가 선택된 자들 중에 있는지 저주 받은 자들 중에 있는지를 내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래서 칼뱅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영혼에 하나님의 성령님께서 역사하시게 하여 그가 회개하도록 하셨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그러고 나면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선물로 주어진 믿음은 우리가 하나님의 거절할 수 없는 은혜의 교리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사람이 성령님의 이 역사하심을 자신의 마음에 받는 이 체험을 갖는다면, 그러면 그는 선택된 자들에 속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미리 정하셨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그가 이 경험을 한 번도 갖지 못한다면, 그는 저주받아 버림받은 자들에 속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미리 정하셨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할 수 있는 다른 어떤 것도 하나님의 예정을 바꿀 수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매우 숙명론적인 교리입니다.

2. 성도의 견인[2. Perseverance of the saints.]

물론 그때에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또 다른 교리의 전파를 계속할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절대주권을 가지고 여러분이 일찍이 태어나기도 전에 여러분의 영원한 운명을 미리 정하신다면, 그러고 나서 여러분이 이 거절할 수 없는 은혜를 받으신다면, 그때는 분명히 ‘한번 은혜는 영원한 은혜’(Once in Grace Always in Grace)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결코 잃은 자들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미리 정하셨기 때문에 또 여러분은 성령님의 이 역사하심을 통해서 그 인침을 받으셨기 때문에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Once Saved Always Saved)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이른바 ‘성도의 견인’이란 교리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잘못된 전제를 허용할 때, 그것에 논리적으로 적용하기가 얼마나 쉬운지를 알 수 있습니다.

C. 헨리 8세[C. Henry VIII]

1. 캐서린(Catherine)과 이혼하고 앤 불린(Anne Boleyn)과 결혼함으로써 로마가톨릭교회와 갈라섬[1. Split with Rome over divorce of Catherine and marriage to Anne Boleyn.]

그런데 종교개혁은 이제 다른 방향에서 진전되었습니다. 그 진전은 영국에서 일어났습니다. 여러분 모두는 헨리 8세 왕에 대해 들으셨습니다. 헨리 8세 왕에게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저는 눈의 문제라고 말합니다. 저는 그것을 배회하는 눈(roaming eye)이라고 부릅니다. 그가 하고 있었던 일은 아들을 낳아줄 여성들(women crop)을 살펴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캐서린(Catherine)에게 (아들을 낳아주기를 기다리다가) 지쳤습니다. 캐서린은 또한 그에게 왕위를 계승할 아들을 낳아주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앤 불린(Anne Boleyn)에게 그의 눈이 꽂혔습니다. 그리고 그는 캐서린과 이혼하고 앤과 결혼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정당한 절차를 밟으려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헨리 8세 왕은 로마가톨릭교회 교황에게 앤과 결혼할 수 있도록 캐서린과 이혼하는 것을 허락하라고 청원하였습니다. 오, 교황에게 있었던 일은 헨리에게 편지를 보낸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사실 그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미안합니다, 헨리. 저는 그대측이 허튼소리를 하도록 가만두지 않을 것입니다. 그대는 앤에 대한 모든 것을 잊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그대는 캐서린과 계속 붙어있을 것입니다.” 오 헨리 그는 뒤통수를 맞았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내가 누군지를 보여주지.”라고 하였습니다. 헨리 8세는 캐서린과 이혼하고 더 나아가 앤 불린과 결혼했을 뿐만 아니라, 그러고 나서 또한 영국교회를 로마가톨릭교회에서 떨어져 나오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영국국교회를 설립하였고 자기 자신이 영국국교회의 수장 곧 명목상의 수장 계승자가 되게 하였습니다. 오늘날까지도 엘리자베스 여왕이 영국국교회의 명목상의 수장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2. 영국국교회(성공회) 1530년(미국 – 감독교회)[2. Church of England (Anglican) 1530 (in America – Episcopal).]

물론 미국 독립 이후 미국에서는 영국국교회라고 부를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여러분이 고교회파 감독교회(the Episcopal Church for the High Church Episcopal)로 알고 계신 것은 영국국교회에 상응하는 것입니다. 오, 우리는 때때로 성공회(the Anglican Church)라고 말합니다.

3. 제임스 왕과 흠정(欽定) 영어 번역 – 1611년[3. King James and Authorized English translation – 1611.]

제임스 왕이 왕위에 올랐을 때, 그는 영국국교회가 로마가톨릭교회와 연합하여 후퇴하고 있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 후퇴(누수)에 대한 이유가 그들이 여전히 라틴어로 모든 미사를 읽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래서 제임스 왕은 영국국교회의 학자들을 불러 모았고, 그들을 존재케 하였으며, 영어번역성경을 흠정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밤 제가 여러분에게 보여주려고 사본을 가져왔습니다. 바로 여기에 제가 갖고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주후 1611년에 흠정된 제임스 왕 번역이라는 사본들 중 하나를 갖고 계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D. 스코틀랜드 – 존 녹스 - 노회에 대한 강조[D. Scotland - John Knox - emphasis on the presbytery.]

그러나 이제 종교개혁은 계속 이동하여 스코틀랜드에 진입하여 휩쓸었습니다. 이제 여기 스코틀랜드의 주요 개혁자는 존 녹스(John Knox)라는 인물입니다. 그리고 존 녹스는 사제직 계급제도의 독재적인 감독에 저항하고 반란을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성경을 취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인쇄기가 발명되었고, 인쇄기의 첫 번째 출판물이 성경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성경을 가지고 개 교회에서 이런 유형의 권위나 통치에 대한 어떤 정당성을 신약성경에서 찾을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연구를 시작하였습니다. 놀랍게도 그는 연구하고, 연구하고, 또 연구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디에서도 또 신약성경 어디에서도 이런 유형의 언급된 사제직을 그는 전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가 개 교회들에서 발견한 것이 있다면, 유일한 사제직은 만인 사제직이었습니다. 신약성경말씀이 가르친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사제)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개 교회에서 찾을 수 있었던 유일한 통치는 그가 장로들이라고 불렀던 그곳에 있었습니다. 이제 그는 그 장로라는 말을 헬라어 ‘프레스뷔테로스’(πρεσβύτερος, presbyteros)란 말에서 얻었습니다. 그리고 헬라어 단어 ‘presbyteros’를 ‘presbyter’(장로)라고 한 것은 단순히 영어 쪽이나 앵글로(Anglo) 쪽에서 나온 말입니다. 우리가 번역한 ‘장로’(elder)가 그 단어입니다, 그리고 개 교회들에서 결코 기능하지 않았던 장로들의 (기능)회복에 대한 존 녹스의 강조 때문에 개 교회들에서 장로들과 그들의 기능 회복에 대한 강조에서 우리가 장로교 교단이라고 부르는 것이 오늘날 존재하게 된 경위입니다. [역자 주: 오늘날의 그리스도교(개신교) 장로들은 16세기에 장 칼뱅과 존 녹스의 평신도 장로 대의제 도입에서 비롯되었다. 원칙은 회중에 의해 선출된 회중의 대표가 치리회를 구성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무렵 그리스도교는 신앙의 자유가 허락되지 않은 국가교회체제였기 때문에 제네바에서는 20인, 60인, 200인의 시의회들에서 전통에 따라 여성을 배제한 채 남성들만으로 배정된 인원수대로 치리 장로들을 선출하였고, 칼뱅은 이들의 임기를 1년으로 제한한바가 있다. 존 녹스 역시 장 칼뱅이 제네바에 확립시킨 개혁교회 장로회 제도를 도입하여 스코틀랜드 의회의 승인을 받아 스코틀랜드 개혁교회에 정착시켰다. 스코틀랜드에서 회중이 선출한 치리 장로들과 사제(장로)들로 구성된 당회(session)가 스코틀랜드에서 시작된 것은 1563년부터였다. 이때 치리 장로의 임기는 제네바에서와 마찬가지로 1년이었으나 인적자원의 부족을 이유로 1578년부터는 종신직으로 바꿨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국가교회체제 아래에서조차 16세기이후 그리스도교(개신교)의 장로들은 임기가 제한된 평신도 선출직이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대원칙이 미국에서는 정치와 종교의 분리와 개인의 신앙의 자유를 보장하는 연방수정헌법(1791년 12월 15일)이 채택된 이후에 더욱 명확히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E. 존 웨슬리 – 1729[E. John Wesley – 1729.]

1. 체험중심의 종교, 집에서 모이는 구역기도회들, 부흥회들[1. Experience-centered religion, cottage prayer meetings, revivals.]

그러나 이제 보십시오. 종교개혁에서 또 다른 이상한 방향에서 진전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영국에서 곧바로 후퇴합니다. 이제 개혁하려는 노력 곧 영국국교회를 개혁하려는 노력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말하기를 시작하고 있었던 것은 이렇습니다. “여러분은 전례를 통해서, 의식들을 통해서, 외적인 형식들을 통해서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예배해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을 의미 있게 예배하고자 한다면,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개인적인 체험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이른바 체험적 혹은 감동적인 신앙(종교)을 강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추진력 즉 영국국교회의 종교개혁 추진력의 두 개의 주요 축(실행)은 여러분 모두가 잘 알고 계시는 존과 찰스 웨슬리(John and Charles Wesley)라는 두 형제였습니다. 그리고 존과 찰스 웨슬리는 이 개혁을 시행하기 위해 그들이 집에서 모이는 구역기도회들(cottage prayer meetings)이라고 부른 것을 조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들은 또한 그들이 부흥회들이라고 말하는 것을 착수하기 시작하였습니다.

2. 감리교인들(방법론자들)[2. Methodists.]

그들은 또한 종교(신앙)의식을 형식(공식)화하였습니다. 그것들은 하루 내내 주기적으로 시작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 모든 다양한 방법들을 사용했고 매우 체계적(방법적)으로 개혁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에 닉네임(별명)이 신앙운동에 붙었고 그것이 그들(감리교인들)이 존재하게 된 경위였습니다. 여러분 모두는 오늘날 우리가 감리교 교단이라고 부르는 것을 들으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매우 체계(방법)적이고 이 모든 방법들을 사용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존 웨슬리는 그 이름의 사용, 실은 그 행위들을 개탄하였습니다. 그 이름과 전례 사용을 거부하는 운동을 펼쳤던 사람들은 성경적인 이름 곧 ‘그리스도인’(Christian)이라는 이름을 단순히 사용하였습니다. [역자 주: 오켈리-해가드 운동을 말한다. 제임스 오켈리(James O'Kelley)와 라이스 해가드(Rice Haggard)는 감리교 목회자들로서 감독 애즈버리(Asbury)의 독재에 반발하여 노스캐롤라이나 주 매나킨타운(Manakin Town)에서 1793년 공화감리교회를 조직하였으나 기존교단들에 또 하나의 교단을 추가하는 것으로 여겨 1801년에 해체하였다. 그들은 회중정치를 표방하였고, 신약성경이외의 신조나 규율이 필요 없다고 보았다. 또 그들은 자신들을 단순히 ‘그리스도인’으로 불렀다. 그러나 그들은 1831년 12월 31일에 통합된 스톤-캠벨 연합에 동참하지 않았다. 성령의 은사(회심)체험, 연4회 주의 만찬 시행, 반(反)삼위일체를 강조하는 그들의 신앙노선 때문이었다. 그들의 신앙은 ‘연합 그리스도의 교회’ 교단에 부분적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오늘날 이 유산을 물려받은 교단들에서는 존 웨슬리가 영국국교회의 일원으로 살다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다른 그룹(교단)을 시작하려는 시도는 전혀 존 웨슬리(John Wesley)의 노력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노력은 영국국교회를 개혁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역자 주: 이 점에 있어서는 마르틴 루터도 마찬가지였다. 루터는 가톨릭교회의 잘못을 고치려고 시도했지, 완전히 부정하거나 등질 생각이 없었다.]

V. 종교개혁 직전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 – 1492년[V. Discovery of America just preceding the Reformation – 1492.]

A. 유럽을 휩쓴 종교재판에서 탈출[A. Escape from the Inquisition sweeping Europe.]

물론 바로 이 시점에 종교개혁운동이 산불처럼 유럽 전역을 휩쓸고 있었습니다. 그러나서 또한 동시에 시대흐름을 저항하려는 필사적인 노력이 유럽 전역에서 유혈 종교재판이 휩쓸기 시작하였습니다. 만약 누구든지 성경사본을 소유하고 있거나 그들이 이들 다양한 개혁운동들의 일원인 것이 밝혀지면, 그들은 체포되고, 투옥되고, 구타당하고, 심지어는 화형에 처해질 수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교회 역사에서 이 매우 중요한 시기에, 그리스도교(개신교) 종교개혁이 있기 불과 몇 년 전에 우리의 세계 역사의 전체 과정을 제공한 어떤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그 유명한 연대 1492년에 대해 익히 알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여러분은 일하시는 성령님을 보십니다. 만약 여러분이 인간사들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인정하지 않으신다면, 여러분은 역사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신대륙이 콜럼버스에 의해서 발견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정치적으로뿐 아니라 종교적으로 속박과 압력으로부터의 자유를 찾고 있었던 사람들이 대거 신세계의 해안지방들로 이주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이제 국가교회의 족쇄들이 풀려지고 있었습니다.[역자 주: 정치와 종교의 분리 및 개인의 신앙의 자유를 보장하는 미연방수정헌법이 1791년 12월 15일에 채택 전까지는 모든 그리스도교 즉 가톨릭교회, 정교회, 루터교회, 개혁교회, 영국교회 등이 모두 국가종교 또는 시의회 종교였다. 따라서 신앙의 자유가 허락되지 않았고, 가톨릭교회는 물론 개신교회들 안에서도 종교탄압이 극심하였다.]

B. 다른 사람들에게 경시당하는 특정한 교리를 강조하는 것으로 세워지고 있는 가지각색의 교단들. 우리가(자신들이) 장로회, 성공회(감독교회), 침례회, 회중교회, 감리회, 가톨릭교회, 개신교회 등이라는 의미이지만, 솔직히 유일한(ONLY) 그리스도인이라는 주장(호소)[B. The multiplicity of denominations being built around particular doctrinal emphases being neglected by others. The sense in which we are Presbyterian, Episcopal, Baptist, congregational, Methodist, catholic, protestant, etc., but with the plea to be simply and ONLY Christian.]

이제 수 세기, 수 세기만에 처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접근하게 되면서 갑자기 가지각색의 종파들과 이단들이 발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역자 주: 종교개혁이전에는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불가타) 성경이외에는 불법이었다. 가톨릭교회의 경우 1960대까지 자국어 성경을 가질 수 없었다. 활자 인쇄술이 발명되고(1445년경) 종교개혁이 이뤄지고 나서야 비로소 유럽에서 여러 개신교회들이 자국어 성경을 읽기 시작하였고, 미연방수정헌법이 1791년 12월 15일 채택된 이후 미국에서 신앙의 자유가 주어지면서 여러 교파들이 탄생하였다.]

C. 미국에서 지속된 분열:[C. The divisions perpetuated in America:]

1. 칼뱅주의의 영향[1. The influences of Calvinism.]

2. 신조들의 반포(각 교파들이 울타리 설치)[2. The propagation of creeds.]

3. 거의 극복할 수 없는 교파 벽들, 전쟁 캠프들, 당파심과 분열정신이 그 후로 세워짐[3. The subsequent erection of almost insurmountable sectarian walls, the warring camps, the party, divisive spirit.]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등한히 여겨졌던 성경 교리들로부터 자신들을 세우고 있었지만, 여러분들이 보셨다시피 때때로 다른 성경 교리들을 배척하면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된 교파주의가 점점 더 높이 높아지기 시작하여 그들이 거의 극복할 수 없게 될 때까지 이르렀습니다.

4. 불신앙을 위한 기회와 산란 장소를 제공[4. Providing an occasion and spawning ground for infidelity.]

그리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쓰라리고 신랄하고 경고하는 정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고백하는 신앙인들 사이에 퍼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현재 일부 그리스도교계에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이 비극적인 분열의 황폐함은 불신앙의 씨앗들을 위한 완벽한 산란 장소를 제공하였습니다.

또한 18세기 중반에 교육계에서 우리가 프로이센 합리주의 즉 구독일 합리주의라고 부르는 것이 신세계의 해안들에 상륙하였기 때문에 이제 합리주의는 철학입니다. 그것은 오늘날 미국의 모든 고등 교육기관에서 가장 우세한 철학이자 가장 널리 퍼져 있는 철학입니다. 철학, 합리주의는 철학입니다. 그것은 말하기를, “인간의 마음이나 인간의 이성은 지식의 유일한 원천이며, 그것만이 껍질의 궁극적인 핵심이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합리주의가 본질적으로 초자연적 개념을 거부하거나 배격한다는 것을 아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관념을 거부해야 할 것이고, 성경의 말씀 속에서 사람에게 드러나는 하나님의 계시의 관념을 거부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동정녀 탄생, 육체의 부활 등을 포함한 기적들의 가능성을 거부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합리주의자는 황폐화되고 있었던 분열된 그리스도교계에 이 진술로 접근하였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이 시간까지 계속해서 그와 같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만약 이 모든 교파들이 여기 이 모든 종교단체들이고, 모두가 같은 성경을 갖고 있으며, 또 그들 모두가 같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고 또 그들 모두가 그들이 같은 복음을 전파하고 있다고 여러분들에게 말한다면, 그러면 그들이 그토록 끔찍하게 분열되어 서로 간에 경고하며 바로 여기에서 상호 배타적이고 모순적인 교리들을 가르치고 설교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 길거리에서의 그 사람은 신학적인 억지이론을 도입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것에 잘 들어맞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래서 냉소주의와 회의론, 불가지론, 불신앙과 무신론이 만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의 서부 변방을 가로질러서 비극적으로 분열된 그리스도교계가 넓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역자 주: 합리주의 사조로써 18세기에 초자연적인 기적들, 곧 계시, 기적, 예언, 동정녀 탄생, 부활, 승천 등을 부정하는 계몽주의(독일)와 자연신론(영국)이 나왔고, 19세기에는 진화론과 무신론, 공리주의가 나왔으며, 20세기에 세속인문주의(실용주의, 상황주의)가 대두(擡頭)되면서 그리스도교 신앙이 크게 도전을 받게 되었다. 또 19세기 초 서부 변방은 미국 동부 오하이오 강변을 따라 북남으로 형성되었던 개척지역을 일컫는 말이다.]  저의 친구여러분, 오늘 밤 제 말을 들으십시오. 오늘날 교회의 분열은 우리의 세계에서 영혼을 구원하는 전도의 성공을 가로막는 가장 큰 단일 장애물입니다. 그리고 만약에 여러분이 그것을 믿지 않으신다면, 여러분은 많은 사람들을 인도하려고 또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 많은 사람들을 인도하려고 한 적이 없었음이 틀림없습니다.

결론[CONCLUSION:]

그래서 이것은 그리스도교계에 닥친 슬픈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렇습니다. 이 모든 배경이 있었기에 우리는, 왜 환원운동(Restoration Movement)이 그 시대(현장)에 나타났는지, 왜 성경말씀의 근거에 따라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신자들이 일치할 것을 호소(탄원)하는 것이 절실히 필요했는지를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A. 종교개혁은 상당히 효과적이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부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무도 그것을 부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원인이 아닌 증상만 치료함으로써 실패하였습니다. 그것은 충분히 멀리 되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그 노력은 본래적인 것을 회복하기보다 부패한 것을 개혁하는 것이었습니다. [역자 주: 이 점에 있어서는 루터가 특히 그랬다. 그는 죄 용서, 죄의식에서의 자유, 하나님과의 화해, 은혜의 복음과 말씀의 회복에 주력한 반면, 잊힌 원시교회의 원형과 전통 회복(환원)에는 적극 반대하였고, 가톨릭 전통을 최대한 지켜내면서 타락한 교회의 개혁을 추구하였다. 츠빙글리는 원시교회의 질서(신약성경교회의 의식, 형식, 구조)를 회복(환원)하고자 하였고, 신약성경의 침묵을 금지로 보았으며, 악기사용, 성화 및 성상 사용을 금하였다. 반면에 국가의 모든 사람들을 품는 국교와 교구제도에 대한 충성심 때문에 유아세례를 포기하지 못하였고, 성인 침례자들만을 교인으로 인정하는 것에 반대하였다. 또 주의 만찬의 횟수를 연 4회로 줄여놓았다. 츠빙글리의 후계자인 하인리히 불링거 역시 “교회는 주님과 사도들에 의해 전수되고 확립된 것 외에는 그 어떤 것도 붙잡아선 안 되고 그것들을 변화시키지 말고 잘 유지해야 한다.”며 환원을 주장하였다. 프랑스와 독일의 접경지인 알자스 지방 출신인 마르틴 부처(Martin Bucer)는 가톨릭 사제출신으로 하이델베르크 논쟁에서 루터를 만난 후 종교개혁가가 된 자로서 콘스탄티누스와 국교체제에서 그리스도인 황제들에 의해서 보호되고 감독되던 시대의 교회를 회복하고자 하였다. 그는 칼뱅-츠빙글리와 루터의 중간쯤에서 모든 믿음과 실천을 성경적 원천 곧 본래적 순수함으로 되돌려 놓으려 하였다. 이들 종교개혁가들은 자신들이 환원주의자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국교에 반대하는 분리주의자들(환원주의자들)을 중형 또는 사형으로 다스렸다[C. 레오나르드 알렌, 리처드 T. 휴스, <환원 운동의 뿌리>, 백종구, 서요한 공역(서울: 쿰란출판사, 2010), 44-59].

B. 환원(회복)은 그리스도교(개신교)와 로마가톨릭교회 모두의 인위적 장애물을 지닌 교파주의를 넘어서 바로 그 원천(근원)으로 되돌아가는 것 곧 신약성경의 이상을 따르는 교회로 되돌아가는 것을 포함합니다.

1. 그것은 성경을 믿음과 실천의 유일하고 완벽한 규범으로 삼아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절대적 권위와 주권을 회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2. 그것은 사도전통(사물의 옛 질서)의 탐구를 포함합니다. 또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의 “옛 길들을 다시 걷는 것”을 포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