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카리스마 넘치는 떠돌이 예언자적 삶의 추종자

김은석 목사

글: 素光 조동호 목사


예수님의 카리스마 넘치는 떠돌이 예언자적 삶의 추종자 김은석 목사(조동호 목사)

1. 김은석 목사의 하나님과의 관계

김은석 목사는 ‘하나님’이란 단어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창세기에 실린 ‘하나님’이란 단어에 일일이 체크를 해놓고 그 사용빈도수를 209회로 체크했던 그는 출애굽기에서도 ‘하나님’이란 단어에 큰 관심을 보이면서 사용빈도수를 112회로 체크하였고<성경 66권 전체에 쓰인 '여호와,'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주'란 단어에 동그라미 마크를 해놓았다>, 총 1134절로 되어 있음을 적고 있다. 이는 그의 생각이 온통 하나님에 집중되어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김은석 목사는 등불과 관련된 생각이 많았다. 등불은 말씀(계시)의 불, 기도의 불, 성령의 불을 상징할 수 있다. 출애굽기 27장 21절에서 “燈天恒常(등천항상)”, 즉 ‘하나님 앞에 항상 등불을 밝힘’이라 적고 있고, 헌금관련 성구를 적은 메모지 옆에 열왕기하 8장 19절을 근거하여 “恒常一燈(항상일등) 주심,” 즉 ‘항상 한 등불을 주심’이라고 적고 있다. 또 출애굽기 29장 39절에서는 “朝夕(조석)으로 獻燈(헌등),” 즉 ‘아침저녁으로 등불을 밝힘’이라고 적고 있다. 이는 그가 말씀과 기도와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얼마나 희구(希求)하며 살았는가를 보여주는 증거이다.

김은석 목사의 성서통독에는 한 가지 특이한 원칙이 있다. 구약과 신약을 함께 읽을 때에는 구약의 책은 장(章)의 순서대로 읽고, 신약의 책은 장(章)의 역순으로 끝장에서 시작하여 첫 장을 향해서 읽곤 하였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구약과 신약을 함께 읽을 때에는 언제나 이 원칙을 취하고 있다.

김은석 목사는 가정보다는 교회와 복음전도에 최우선순위를 두었다. 예를 들어, 그는 출애굽기를 통독했던 1955년 1-2월 중에서 대전 자택에 머문 날은 단 하룻밤뿐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광주 집회소(김재순)에 있다가 대전 선화동교회로 바로 갔고, 다시 경북 금능군(김천시) 대보교회(장성우 목사의 부인 김순옥 사모의 모친 김묘암씨가 설립)를 거쳐 충북 괴산군 소수면의 수리교회(장천호)로 이동하여 그곳에서 6일을 머문 후에 대전의 집에 와서는 단 하루 밤만 지내고 다시 논산 충곡교회(안영천)로 옮겨 가서 5일 이상을 그곳에서 머물다가 전남 영광으로 떠나 그곳에서 출애굽기 통독을 마치고 있다. 1954년 2월 2일에도 해남군에서 영산포행 차를 기다리는 중에 출애굽기 통독을 마치고 있고, 1956년 1월 19일에는 목포에서 출애굽기 통독을 마치고 있다. 출애굽기 통독을 마친 54, 55, 56, 57년의 시점이 모두 1-2월경이고, 57년만 부강교회이고, 나머지 세 번은 전남의 끝자락이어서 김은석 목사는 가정보다는 하나님의 교회와 복음전도에 최우선순위를 두고 살았던 분으로 여겨진다. 또 이런 남편과 아버지를 이해하고 모든 어려움을 이겨낸 김완례 사모와 명순, 성철 자녀들의 희생은 김은석 목사에 못지않았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김은석 목사는 일 년이면 대부분의 날들을 전국의 교회들과 성도들을 순방하는데 할애하였다. 도대체 그에게는 무슨 일이 그토록 많았고, 집에도 잘 가지 못했을까? 교통은 물론이고 생활형편이 심히 어려웠던 당시에 타지에서 옷가지들의 세탁은 어떻게 했고 또 무슨 일을 하고 다녔을까? 이런 몇 가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가 성서에 남긴 메모를 통해서 이런 것들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김은석 목사의 이동수단은 버스, 기차, 배 그리고 도보였고, 이렇게 자주 이동했던 것은 집회와 강의와 전도 때문이었다. 숙식은 교회주택이나 성도의 집에서 해결하였고, 세탁은 형편에 따라서 손수 하거나 맡겨서 해결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2. 김은석 목사의 전도활동

김은석 목사의 교회 순방의 목적은 일차적으로 집회를 포함한 전도활동과 성서강의였을 것이다. 그의 메모는 주로 성서를 어느 장소 누구의 집에서 몇 장까지를 읽었는가에 제한되기 때문에 어느 장소 어느 교회에 왜 갔었는지에 대해서는 혼인, 모친방문, 병석 등 특별한 경우들을 빼놓고서는 자세히 적어놓지 않았다. 그러나 “간다고만 하면 섭섭해 하니 답답함”이라고 적어놓은 것은 교회나 성도들이 그의 설교나 강의를 더 많이 듣지 못하는 데서 오는 서운함을 드러낸 것이기 때문에 그가 가는 곳에서는 항상 크고 작은 집회들이 열렸을 것으로 보인다. 최용호 목사의 박정자 사모는 처녀 때 이 일의 목격자로서 김은석 목사가 교회를 방문할 때면 늘 집회가 있었다고 말한다. 실로 그는 존경받는 목사였던 것이다.

김은석 목사가 전도하는 날은 365일 매일이었다. “1955년 3월 3일 목요일 마음에 감화되어 전도하는바 매일 일인씩 할 작정”이라고 적고 이어서 한 폐이지 촘촘하게 전도한 일자와 장소와 대상자의 성별, 이름, 나이를 적고 있다. 그의 의지가 얼마나 대단하였는가와 그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전도하였는가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그가 남긴 성서의 한 페이지, 모세오경이 끝나는 신명기와 여호수아 사이의 빈 공간에 3월 3일부터 10월 말일까지 매일 일인 이상씩 전도하였다. 일일 단위로 전도한 사람의 이름과 나이를 빼곡히 적고 있다. 그는 심지어 주일에도 전도를 빼놓지 않았다. 한번 마음에 결정한 것을 실천에 옮기데 그것을 끝까지 이루고 마는 김은석 목사의 의지력과 실천력은 가히 놀랄만한 것이었다. 10월 26일자에 더 이상 글씨를 쓸 공간이 없어서 아주 작은 깨알 같은 글씨로 이렇게 적고 있다. “26일부터 29일까지는 우연이 耳痛症(이통증)이 생기여서 外出不能(외출불능)으로 젼도 못함.” 병이 들어 외출을 하지 못할 경우가 아니면, 비록 그날이 주일이든, 생일날이든, 추석같은 무슨 특별한 날일지라도 전도를 빼놓지 않았던 김은석 목사였다.

김은석 목사의 전도대상은 남녀노소 군인 경찰 교사부인 등, 구분이 전혀 없었다. 4월 17일 주일날에는 “校先妻(학교 선생의 처) 一人게 젼도”라고 적기도 하였다. 10월 22일 날에는 “목포 평화하숙 주인에게”라고 적고 있다.

김은석 목사의 전도 장소는 부강, 대전, 연산, 소태, 충주, 서울, 강진, 상월, 목포 등 대한민국 구석구석이었다. 김은석 목사는 이동이 잦았기 때문에 성서통독 때와 마찬가지로 버스와 기차를 이용하여 이동 중일 때에도 전도하였고, 출발지와 도착지에서도 전도하였다. 전도를 하지 못한 날은 “불젼인” 혹은 “젼불인”이라고 적고 있는데, 그 숫자가 일 년을 통틀어 몇 번 되지 않는다. 특히 8월 20일자에서는 “주님 앞에 죄송함. 금일은 불젼인”이라고 적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고전 9:16)고 한 사도 바울의 전도열정에 못지않은 김은석 목사의 열정을 읽을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이토록 김은석 목사는 그의 짧은 일생을 전도 집회와 성서강의를 위해서 헌신하였다. 그에게는 사랑하는 아내와 입양한 남매가 살고 있는 자신의 집이 있었지만,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깃들일 곳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신 예수님의 떠돌이 전도인의 삶을 그대로 추종하였던 것이다. 분명 그는 예수님의 카리스마 넘치는 떠돌이 예언자의 삶을 추종하였던 것이다.

3. 김은석 목사의 인간관계

김은석 목사의 성공적인 사역의 배후에는 인간관계가 있다. 한 인간의 성공과 실패의 배후에는 반드시 하나님과의 관계와 인간관계가 있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크고 작은 공과(功過)가 있지만, 하나님과의 관계와 인간관계가 좋았을 경우에는 과(過)보다는 공(功)이 앞세워지게 된다. 뛰어난 하나님의 일군들에게도 크고 작은 실수가 없지 않다. 이 점은 김은석 목사도 마찬가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후대에까지 존경을 받는 것은 공(功)이 과(過)보다 크고 인간관계가 좋았기 때문일 것이다.

김은석 목사의 좋은 인간관계를 말해주는 증거들은 많다. 먼저, 그가 관계한 혼인의 일만 보더라도 중국에서 2쌍, 일본에서 8쌍, 본국에서 60쌍, 총 70쌍이나 된다. 이들 중에는 지철희 목사(벧엘교회), 문원섭 목사(유성교회), 김태수 목사(미국), 최요열 목사(조동호 목사의 소년시절 교회 담임목사), 김규상 목사, 박점상 목사, 최순국 목사(미국 시카고) 등이 포함되어 있다. 61세의 짧은 일생을 마친 김은석 목사로서 70쌍 이상의 혼인에 관계하였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많은 이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었는가를 말해준다.

김은석 목사가 1960년에 연하장을 보낸 곳은 개인 38명, 교회 31곳이었다. 당시는 형편이 곤궁한 때였기 때문에 꼭 받아야할 사람들에게만 연하장을 보냈다. 그런 면에서 개인 38명과 교회 31곳은 결코 작지 아니한 숫자이다. 이것은 그가 얼마나 많은 이들과 친분을 쌓고 있었는가를 말해주는 것이다.

또 양녀 김명순의 결혼통첩을 개인 37명 교회 25곳에 보내고 있다. 연하장을 보낸 곳과 겹치는 부분도 있지만, 다른 이름들도 꽤 발견되었다. 이뿐 아니라, 김은석 목사는 별세자들의 명단까지 적어두었는데, 여기에는 정창성 목사(1957년 4월 25일), 김재순 목사(1958년 2월 26일), 강순명 목사(1959년 3월 12일) 등이 포함되어 있다. 심지어 이신 목사 부친(1954년 6월 16일)과 이종만 목사의 모친(1957년 8월 14일) 별세 일자까지 적어놓고 있다. 이것은 동료의 기일까지 챙기는 그의 인간적인 면면을 보여주는 것이라 믿어진다. 이런 점 때문에 그의 전도사역은 성공적일 수밖에 없었고 동역자들이 늘 곁에 있었던 것이다.

이뿐만 아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믿음과 행위의 일치를 위해서 분투하였다. 그의 이런 모습은 그의 다음의 글에서 발견된다.

1956년 1월 19일 아침 목포시 죽교동 39번지 진성구 장로 댁에서 출애굽기 37-40장 끝까지 봉독하였다. 그런대 이번 또한 출애굽 성경을 봉독하는 중 더욱 깨달은 것은 출애굽이 문제인 동시에 애급에서 나와서 장막 치는 법과 장막 위에서 구름이 덮여서 떠오르고 덮이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는 것을 더욱 깨달은 점이다. 지금 교회들도 다만 한 가지 믿음만으로도 아니요, 사랑만으로도 아니요, 믿음으로써 구체적 문제를 가르치신 말씀은 베드로후서 1장 4-7절에 나타난 말씀을 아울러 생각할 것이다. 진실로 이런 것을 누구보다 주님 사명을 받아진 교역자가 분명히 알고 가르치면서 행하여야할 것임이니라.

베드로후서 1장 4-7절의 내용은 이렇다. “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4. 김은석 목사의 성서강의 활동

1955년 5월 중에 있었던 메모를 보면, 그가 진행시켰을 법한 여러 일들, 곧 집회, 성서강의, 전도 가운데 한 가지인 성서강의를 확인할 수 있다. 김은석 목사는 충북 괴산군 소수면 소수교회당에서 열고 있던 일백일 성서공부의 과정을 메모해놓고 있기 때문이다. 출애굽기 28장부터 37장 끝에 적힌 메모를 살펴보면, 1955년 5월 24일(화)부터 26일(목)까지 남녀 16-18명이 모여 출애굽기를 공부하였다. 그리고 27일 금요일에는 동리에 나가서 축호전도를 하였다. 따라서 성서통독메모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들, 예를 들면, 김재순, 이신, 이학재, 전도희, 주명삼, 고광석, 권영수, 전도희 등은 김은석 목사와 만나서 신앙체험을 나눴거나 공부에 집중했던 이들로 보인다. 참고로 다음은 그가 빌립보서 끝장 여백에 남긴 글이다.

1956년 12월 13일 새벽 2시부터 전남 함평군 함평면 석성리 신생교회 노의수 형제 객실에서 김교인 장로님과 임남규 형제와 동숙하던 중, 起坐禱(일어나 앉아 기도)하다가 나의 사명인 주님이 맥기신 일을 하는바 앞흐로 서울성서신학교로 간다고 한말을 대답한 후 또한 들이난(드러난) 일리(일이) 있슴으로 그만 둘 것을 다시 思에(생각하여) 작뎡(작정)하고 김재순 목사게 편지하고서 지금 이 신생동서 1월시까지 공부한다고 광고하야 사람들리 오난 일과 여러 가지로 생각 중에 엇지할가 하다가 성경 빌서(빌립보서)를 보난 중 1장 27-2:1-2, 14을 생각하는 중에서 지금 갓치(같이) 하는 일은 마음을 갖치 하는 일리 되지 못하고 원망과 시기와 분쟁이 표현하는 것을 보아 아무리 생각하여보아도 나는 갓치하지 못하고 따로 떠러저서 내게 맥기신 주님 명령을 실행하여야 갯다는 생각이다. 내가 기도드리다가 성경 보면서 생각하야 이 일을 기록하는 시간은 3시 20분이엿다. 신생동 노의수 집사댁 객실에서 記(기록)함. 김은석 止(?끝).

김은석 목사는 1958년 5월 5일에 집중강의 일정을 학생들에게 통보하고 있는데, 이 통보를 받은 이들 가운데는 지철휘(벧엘교회), 김교인(부강교회 장로), 임춘봉(한국성서신학원 교수, 교가작사자), 김용순(신탄진교회), 설하운, 최요열(조동호 목사의 소년시절 담임목사), 장주열, 최춘선(흔히 맨발의 전도자로 불리는 목사로 일생을 맨발로 거리전도를 하였고 고아원 운영 등 많은 사회사업도 하였으며, 지하철에서 전도하다가 소천), 이종만(인천고아원), 김명석, 이신(미국 밴더빌트대 신학박사), 김정만, 김태수, 김동렬, 강순명(광주 천혜경로원) 등이었으며, 총 65명이었다. 또 1958년 7월 10일부터 소년성경학이 개설된다는 것과 8월 1일부터 9월 10일까지 성경공부가 있다는 통신을 총 54명과 6곳의 교회에 보내고 있다.

김은석 목사의 강의 내용 속에는 그리스도의 교회와 관련된 침례와 매주 성만찬뿐 아니라, 성령의 역사와 교회명칭에 관한 것도 포함되어있었다. 요한복음과 사도행전 사이의 간지에 교회의 명칭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메모를 남겨놓고 있다.

교회명칭을 명시함

  • 1. 광야교회라. 이는 구약시대(행 7:38)
  • 2. 하나님의 교회라(행 20:28, 고젼 1:2, 갈1:13, 고후 1:1)
  • 3.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라(마 16:18)
  • 4.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라(롬 16:16,
  • 5. 하나님 교회라(고전 11:16)
  • 6. 모든 성도의 교회(고전 14:33)
  • 7.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딤전 3:15)

이후에 낫타난 교회말고도 만코만치만 이외는 지명을 따라 말한 것과 또 장소명에 따라서 있는대
一 아모개집에 있는 교회 예를 들면(몬 1:2)
二 아모대 사람의 교회 예를 들면(살젼 1:1, 살후 1:1)에 말씀 갓튼 것인대 이를 드러라 말하자면 모도가 다 한분 하나님의 교회라든지 그리스도의 교회는 것인대 지금 이 교회명칭에 대하야 신중이 생각할 바 잇는 이유는 지금 현세에 잇서서 인위적이며 인본주의의 행동을 함으로 교회는 하나님의 피로 갑주시고 사신 것이라고 행 20:28에 말삼되엿고 고젼 14:33에도 하나님은 어지로운 일에 하나님이 아니시오 화평한 일에 하나님이시라 하며 모든 성도의 교회에서 그러하시다 하엿스니 우리 모든 신도는 잇태에 교회를 좀 잘 신중이 생각할 것시다.

김은석 목사는 동일한 페이지의 공간에 두 단어를 각각 삽입하였는데, 그 가운데 한 단어는 “心裂(심렬) 요엘 2:13”이고, 다른 단어는 “하나님 會堂(회당) 시 74:8)”이다.

(욜 2:13)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시 74:8) 그들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우리가 그들을 진멸하자 하고, 이 땅에 있는 하나님의 모든 회당을 불살랐나이다.

5. 영양지송신 1958년 5월 5일 발

최용환, 박치환, 지철휘, 박석주, 박삼예, 조규석, 모졍오, 김교인, 장순옥, 임춘봉, 조주일, 이재우, 주관교, 임남규, 윤효순, 김일순, 최영택, 박종식, 박종승, 이공임, 염신이, 김용순, 윤금아, 이종균, 설하운, 최요열, 장주열, 이시우, 이진우, 이덕재, 최병록, 원경선, 최춘선, 이종만, 안영천, 김명석, 전도희, 강신규, 이혜순, 최덕임, 노의수, 전현재, 박병우, 한순환, 이덕인, 김은영, 김순예, 한영희, 이 신, 김정만, 박은영, 주명삼, 이원노, 권영심, 송안성, 김은성,김태수, 김호민, 김동열, 임현민, 안영숙, 강순명, 김확실, 신상오, 이순오 <이상 65명>.

6. 1958년 7월 10일부터 소년성경학과 8월 1일로 9월 10일까지 성경공부 통신 보냄. 아래와 같이

주관보, 임춘봉, 영신교회, 김일순, 박삼예, 김교인, 모갑경, 박석주, 지철휘, 김철수, 이종만, 이순도, 마명교회, 연화교(회), 박치환, 안영숙, 임남규, 김동열, 윤금아, 김용순, 최영택, 윤효순, 박종승, 안영교(회), 장순옥, 이공임, 최용환, 한순환, 전현재, 김은영, 김순예, 이신, 이혜순, 최덕임, 김영희, 엄진섭, 신상호, 김영원, 이덕재, 이시우, 김영만, 박은병, 주명삼, 노은교, 양성교, 김은성, 김천금, 전도희, 천안교(회), 오광석, 김명석, 황골교(회), 박장봉, 최춘선, 최요열, 김금인, 한영희, 이덕인, 설하운, 박병후<이상 54명과 교회 6곳>.

7. 1960년 연하장 보냄

에리스(Ellis), 세갈키(Seggelki), 리(이)신, 라의도, 간호원 조이련, 진이삭, 최춘선, 최요한, 박은병, 김규상, 선화교(회), 고재권, 라시득, 강릉교(회), 신흥교(회), 영광교(회), 신생교(회), 서응배, 부강교(회), 신탄교(회), 논산교(회), 상월교(회), 연이교(회), 판암교(회), 이종만, 화강교(회), 평산교(회), 천안교(회), 황골교(회), 문암교(회), 양촌교(회), 황청교(회), 송정교(회), 소수교(회), 반능교(회), 노은교(회), 김경국, 소태교(회), 조동교(회), 심영선, 반골교(회), 이덕재, 인천교(회), 주관보, 작천교(회), 용동교(회), 연화교(회), 주문진교(회), 김의성, 안혜옥, 전종식, 박형진, 이흥환, 안명수, 정도선, 김영희, 전형제, 안영천, 오현팔, 임순형, 하래교(회), 박삼례, 장성만, 안흥렬, 이흥식, 김창, 문옥자, 강신열, 현순환<이상 개인 38명, 교회 31곳>.

8. 김명순, 안영표 결혼통첩 보냄

주문진교(회), 강릉 홍대위, 강병천, 세갈키(Seggelki), 에리스(Ellis), 리히용, 임순형, 장성만, 오현팔, 조이전, 박오득, 이공임, 고현교(회), 김중현, 연정교(회), 영광교(회), 권태용, 조장환, 김일순, 방종승, 서일래, 임남규, 주관보, 연화교(회), 상월교(회), 작천교(회), 목포교(회), 박석주, 평산교(회), 신생교(회), 박삼례, 동리교(회), 신흥교(회), 학동교(회), 도리교(회), 충곡교(회), 신교교(회), 황골교(회), 충주교(회), 김대석, 양촌교(회), 이겨재, 원경선, 설하운, 고인환, 리흥식, 성낙소, 김은성, 잿말교(회), 김경수, 김의성, 송정교(회), 황천교(회), 최병옥, 가좌교(회), 태일라(Taylor), 조남철, 김윤석, 이종만, 천안교(회), 동막교(회), 최춘선<이상 개인 37명, 교회 25곳>

9. 혼인에 대한 관계한 일

중국에서

양형섭 신부인, 장시호 전순열.

일본에서

배성산 정모인, 이종억 노애인, 김산군 정몽주, 홍성은 유재춘, 젼히석 정순애, 이맹훼 정성인, 이히성 김모인, 이업성 이히성.

본국에서

이동주 김옥선, 엄영섭 박복순, 이춘근 인복양, 서은배 최정순, 성사윤 석상영, 송인영 김옥녀, 최근수 최옥남, 박용기 문광예, 지철훼 장애순, 문원섭 유복순, 노재호 정규순, 이문구 안온숙, 김익수 함옥진, 박병우 최영님, 김을환 우순자, 송도운 이경순, 박운서 김부임, 안재만 방소제, 조의성 민마리아, 젼종식 김숭연, 이종석 이양인, 젼현재 강옥녀, 조춘식 노금순, 이원노 조명인, 안혜옥 김남산, 권오연 조연순, 김태수 임양화, 최요열 한숙자, 황하주 조영심, 최재호 박순옥, 이범수 이불명, 김규상 마은정, 박근영 김순식, 서석용 이창순, 김은성 이창임, 젼홍규 김기남, 송무영 박정자, 조규환 양길숙, 최윤모 노충자, 황인석 민애경, 박점상 정귀님, 조규석 이갑순, 나연찬 윤재순, 김창무 박효순, 임완수 이정임, 정연창 사옥순, 최순국 손영히, 손연규 임흔님, 민영희 임순희, 오강선 박주순, 정한수 운점남, 남영 양히열, 송안성 정히순, 신석인 임종빈, 차형태 (없음), 박상구 임군례, 김은영 박길숙, 리채영 김연준, 인영표 김명순, 권영조 김수자.

10. 별세자 명단

정창성 목사(1957년 4월 25일), 김재순 목사(1958년 2월 26일), 강순명 목사(1959년 3월 12일) 등의 별세자들의 기일을 적어놓고 있다.

11. 1954년 출애굽기 통독

1954년 2월 2일 전남 해남군 성전시장에 영산포행 차를 기다리는 중 이 출애굽기 책을 봉독함. 용무는 교회예방이었다.

12. 1955년 출애굽기 통독

  • 1955년 1월 22일(토) 출애굽기 1-2장과 묵시록 3장까지 광주 집회소에서.
  • 1955년 1월 24일(월) 출애굽기 3-4장과 묵시록 2장을 광주에서와 차중에서 봉독. 대전도착.
  • 1955년 1월 25일(화) 출애굽기 5-6장과 묵시록 1장을 대전 선화동 교회에서 봉독.
  • 1955년 1월 26일(수) 경북 금능군 개령면 대광동 2구 대보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출애굽기 7-8장과 유다를 봉독
  • 1955년 1월 27일(목)은 수리교회 가는 중에 버스 안에서 출애굽기 10-11장과 요한이서와 삼서를 봉독함.
  • 1955년 1월 28일(금)에는 수리교회당 주택에서 출애굽기 12-13장과 요한일서 5장 봉독함.
  • 1955년 1월 29일(토) 새벽에 출애굽기 14-15장과 요한일서 4장 봉독함. 수리교회당 주택 방에서.
  • 1955년 1월 30일 주일 새벽에 수리예배당 강단 옆에서 요한일서 3장과 출애굽기 16-17장을 봉독함.
  • 1955년 1월 31일 월요일 새벽에 수리예배당 강단 옆에서 출애굽기 18-19장을 봉독. 요한일서 1-2장을 봉독함.
  • 1955년 2월 1일(화) 새벽에 수리교회 옆방에서 출애굽기 20-22장과 베드로후서 3장 봉독.
  • 1955년 2월 2일(수) 아침은 대전 자택에서 출애굽기 23-24장과 베드로후서 2장 봉독
  • 1955년 2월 3일(목) 아침은 충남 논산시 부적면 충곡교회당 주택 방에서 출애굽기 25-28장까지와 베드로후서 1장을 봉독함.
  • 1955년 2월 4일(금) 아침에 출애굽기 29-30장과 베드로전서 5장을 봉독함. 충곡교회 강단 옆에서
  • 1955년 2월 5일(토) 아침 출애굽기 31-32장을 봉독과 베드로전서 4장도 봉독함. 충곡교회에서.
  • 1955년 2월 7일(월) 아침 출애굽기 33-34장과 베드로전서 3장을 충곡교회 주택에서 봉독.
  • 1955년 2월 8일 화요일 아침에 충곡교회당 강단 뒤에서 출애굽기 35-37장과 베드로전서 2장까지 봉독.
  • 1955년 2월 9일(수)은 충곡교회를 떠나서 영광교회를 가는 중에, 출애굽기 38장은 충곡교회 주택에서, 39장은 연산역에서 봉독. 베드로전서 1장은 차중에서 봉독.
  • 1955년 2월 10일 목요일 아침에 영광읍 교회 주택 방에서 본 40장을 봉독함.
  • 1955년 8월 21일 주일 저녁에 진구 칠암동 318. 교회는 불참하고 경원 목사 주택에서 출애굽기 14:1-14 봉독.
  • 1955년 12월 29일(목)은 가좌교회 집회소인 전도부인 계신 방에서 출애굽기 1장을 봉독함. 이학재 집사도 계심.
  • 1955년 12월 30일(금)은 대전 자택에서 출애굽기 2장을 봉독함.
  • 1955년 12월 31일(토) 금일은 연말일인데 대전 자택에서 출애굽기 3장을 봉독함.

13. 1955년 일백일 집중 성서연구

  • 1955년 5월 24일 여 9, 남 7, 합 16인이 출애굽기 35장 공부.
  • 1955년 5월 25일 남 7, 여 10, 합 17인이 출애굽기 36-37장을 공부함.
  • 1955년 5월 26일 남 8, 여 9, 합 17인이 출애굽기 28-29장 공부함. 소수교회에서 백일 중에서
  • 1955년 5월 27일 남 7, 여 11, 합 18인이 소수교회당에서 백 일간에 공부하는 중에 공부함. 김재순 목사 서울 가심. 고광석 전도사님은 권영수, 전도희 두 분과 전도가심.

14. 1956년 출애굽기 통독

  • 1956년 1월 16일(월) 아침 충곡리 교회 강단 뒤에서 출애굽기 16:22-22:15까지 봉독하고 박뎡엄(?) 자매와 같이 있었다.
  • 1956년 1월 17일(화) 아침에 대전 주택에서 출애굽기 22:16-28:35까지 봉독하는바 두 번에 봉독.
  • 1956년 1월 18일(수) 아침은 대전 주택에서 출애굽기 28:36-29:25까지 봉독하고 29:26-33:23까지는 목포행 특급차에서 봉독함.
  • 1956년 1월 18일 목포행 태극호 특급차중에서 출애굽기 34-36장까지 봉독함.
  • 1956년 1월 19일 아침 목포시 죽교동 39번지 진성구 장로 댁에서 출애굽기 37-40장 끝까지 봉독하였다. 그런대 이번 또한 출애굽 성경을 봉독하는 중 더욱 깨달은 것은 출애굽이 문제인 동시에 애급에서 나와서 장막 치는 법과 장막 위에서 구름이 덮여서 떠오르고 덮이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는 것을 더욱 깨달은 점이다. 지금 교회들도 다만 한 가지 믿음만으로도 아니요, 사랑만으로도 아니요, 믿음으로써 구체적 문제를 가르치신 말씀은 베드로후서 1장 4-7절에 나타난 말씀을 아울러 생각할 것이다. 진실로 이런 것을 누구보다 주님 사명을 받아진 교역자가 분명히 알고 가르치면서 행하여야할 것임이니라.

참고: <베드로후서 1장> [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5]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7]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15. 1957년 출애굽기 통독

  • 1957년 1월 20일 주일 아침 대전시 은행동 고례게통(고신파) 장로회 예배당에서 출애굽기 2-4장까지 봉독함.
  • 1957년 1월 21일(월) 아침은 대전 자택에서 출애굽기 5-7장까지를 봉독함.
  • 1957년 1월 22일(화) 부강교회당 골방에서 출애굽기 8-10장까지 봉독.
  • 1957년 1월 23일(수) 아침은 부강교회당 골방에서 출애굽기 11-13장까지 봉독함.
  • 1957년 1월 24일(목) 아침에 부강교회당 골방에서 출애굽기 14-16장까지 봉독함.
  • 1957년 1월 25일(금) 아침에 부강교회당 골방에서 17장-20:17까지 봉독함.
  • 1957년 1월 26일(토) 아침은 식사 후에 부강교회당 골방에서 출애굽기 20:18-30장말까지 봉독함.
  • 1957년 1월 28일(월) 아침에 부강교회당 골방에서 출애굽기 24장에서 28:35까지 봉독함.
  • 1957년 1월 29일(화) 아침 부강교회당 골방에서 출애굽기 28:36-32:6까지 봉독함.
  • 1957년 1월 31일(목)은 아침에 성경을 다 봉독치 못하였고, 오후에 걸쳐서 출애굽기 27:10-40장 말절까지 봉독하였다.
  • 1957년 9월 23일 월요일 아침은 대전 자택에서 출애굽기 2-3장을 봉독함.
  • 1957년 9월 24일(화) 아침은 대전 자택에서 출애굽기 4장을 봉독함.
  • 1957년 9월 25일(수) 아침은 부강교회당에서 출애굽기 5장을 봉독함.
  • 1957년 9월 26일(목) 아침은 부강교회당에서 출애굽기 6장을 봉독함.
  • 1957년 9월 27일(금) 아침은 또한 부강교회당에서 출애굽기 7-8장까지를 봉독함. 새벽예배도 송안성 형제가 증거 함.
  • 1957년 9월 28일(토)은 이재천, 이신, 주명삼, 나 사인이 각각 노나진(?헤어진) 후에 나는 송령교회를 가는 중 송령산상에서 출애굽기 9-11장까지 봉독함.
  • 1957년 9월 30일(월) 아침은 청주 영운동 교회당에서 새벽 예배드리는바 전도희 이복동 자매와 같이 (열왕기상과 베드로후서 등을) 봉독 후 출애굽기 10:12-12:20까지 봉독함.
  • 1957년 10월 1일(화) 아침은 부강교회당에서 출애굽기 12-13장까지 봉독함.
  • 1957년 10월 2일(수) 아침은 부강교회당 골방에서 출애굽기 14-15장까지 봉독함. “오날 앗침(은 ?하) 여러분이 도라 가심. 왓단 갓타 하는 분들 위함. 불안이 잇슴.”
  • 1957년 10월 3일(목) 아침은 부강교회당 강단 뒤에서 출애굽기 15:11-16:20까지 봉독.
  • 1957년 10월 4일(금) 아침은 부강교회당에서 출애굽기 16:21-18:16까지 봉독함.
  • 1957년 10월 5일(토) 아침 부강교회당에서 출애굽기 18:17-20:26까지 봉독함.
  • 1957년 10월 7일(월) 아침 부강 서대전가는 차중에서 출애굽기 20-21장까지 봉독함.
  • 1957년 10월 8일(화) 서대전에서 부강 가는 차중에서 출애굽기 22-24:8까지 봉독함.
  • 1957년 10월 9일(수) 아침은 부강교회당에서 출애굽기 24:9-26:25까지 봉독함. 대전 여(女) 강집사와 청주 안집사와 이신 목사는 각기 본 댁(宅)에 가심.
  • 1957년 10월 13일(일)은 오전 경에 부강교회 골방에서 출애굽기 29장을 봉독함.

16. 기타 출애굽기에 대한 단상(斷想)

  • 출애굽기의 기록연대 주전 1500년이나 레위기와 같이 1490년경으로도 봄.
  • 하나님이 해(偕, 함께) 하지 아니하신다는 말씀(출 33장 3-4절).
  • 단장품에 대한 말씀(출 23:4-6).
  • 공수래 하지 말라(출 34:20).
  • 천하 만민 중에서 구별하심(출 33:16).
  • 나를 보고 살자가 없다하심(출 33:20).
  • 수장(手掌)으로 덮는다는 말씀(출33:22).
  • 불사(不赦)하시는 죄를 말씀하심(출 34:7).

17. 성전건축지

  • 1. 모리아산 이삭 제사하던 곳(창 12:2-14).
  • 2. 오르난에 타작마당(대상 21:18-19).
  • 3. 솔로몬성전 건축지(대하 3:1-).
  • 4. 예수님 십자가에 못 박힘(요 19:17).
  • 5. 예수님 재림하실 곳(감람산 행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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