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석 전도자님의 별세일자에 관하여
조동호 목사
강명석 전도자님의 별세일자와 관련해서 함께 생각해봐야할 점이 있는 듯싶어 제 생각을 공유하려고 합니다. 다 아시다시피 1940년에 11월 16일 대다수의 선교사들이 철수를 하였고, 1941년 4월 1일부터 새로운 종교법이 시행됨으로써 해외로부터 선교비를 주고받는 행위가 멈췄습니다. 당시 선교사들은 미제의 스파이로 여겨졌고, 선교사들과 접촉하는 내국인들은 서에 끌려가 취조를 받고 고문을 당하였으며, 선교사와 나눈 대화를 낱낱이 보고해야했습니다. 그리고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들과 일본 그리스도의 교회들에 관한 소식은 1941년 초부터 모두 끊겠습니다. 선교사들이 철수했고, 통신수단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무렵 동석기 전도자님의 소재지가 미국인지 한국인지를 확인하는 것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무렵 강명석 전도자님은 병이 들어 울산에 계셨던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성낙소 목사님의 자서전에도 언급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다 함께 고민해봐야 할 점은 이 어렵고 특별한 시기에 게다가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외진 울산에서 벌어진 일을 과연 누가 미국과 일본에 강명석 전도자님의 별세에 관한 소식을 미국과 일본 Churches of Christ에 전달했는가라는 것입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미국과 일본 그리스도의 교회들이 강명석 전도자님이 중병에 걸린 소식은 이미 들어서 알고 계셨을 듯싶습니다. 그러나 1940년대 한국교회들은 바깥세계와 단절되다시피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시기에 한국과 일본에서 사역하셨던 한국인 사역자들의 행적이 끊긴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런 만큼 강명석 전도자님의 소천일자에 대해서 미국과 일본 자료에 의존해서 단정 짓지 않고 열어 두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알고 계시듯이, 강명석 전도자님의 별세소식을 미국에 전한 분으로 Gospel Advocate지에 “S. K. Dong., Sanki Hoksei., June 6, 1941”로 되어 있고, 별세일자는 5월 28일로 되어 있습니다. “Sanki Hoksei”란 동석기 전도자님의 고향 북청마을 ‘북서 삼기(삼거리)’로써 사역지를 표시한 말입니다. 동석기 전도자님은 1947년 1-2월 중에 존 채이스 선교사님을 서울에서 만나 말씀하기를, “소련군정이 입북하기 이전에는 북한에 머물려 사역을 펼쳤으나 소련군이 입북하기 직전에 남하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선교비가 끊긴 1941년 이후에도 해방 때까지 북청에 계셨다는 뜻이 됩니다. 그렇다면 동석기 전도자님은 북청에서든 경성에서든 강명석 전도자님의 별세소식을 전해 듣고 그 소식을 미국에 보낸 것이 됩니다. 동석기 전도자님은 강명석 전도자님의 별세(1941년 5월 28일) 일주일 정도 후인 1941년 6월 6일 미국으로 보내는 편지를 썼고, 강명석 전도자님의 사모님이 16일자에 편지를 써서 소식을 전했으며, 이 소식은 한 달 후인 7월 17일자 미국 Gospel Advocate지에 실렸습니다. 우편물은 배편으로 일본 요코하마를 거쳐 미국으로 발송되었을 것입니다. 국제우편서비스가 살아있었다는 것을 전제로 많이 촉박한 날짜이긴 하지만 여전히 가능했을 수도 있습니다. 당시에는 민간항공이 없었고 배편만 있었는데, 요코하마 항에서 미국 서부지역 항까지 보름이상 걸렸습니다. 그리고 일본 그리스도인의 교회들에서는 이 소식을 Gospel Advocate지를 구독한 존 맥켈렙과 같은 선교사님을 통해서 들었을 가능성도 없지 않습니다. “고 강문석 형제를 추모하며 바침”이란 글이 Michisirube지에 실린 것은 1941년 9월호였습니다. 이 또한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시간이 아닙니다. 하지만 김세복 전도자님이 쓴 <한국그리스도의교회사> 51쪽에는 강명석 전도자님의 별세일자가 1944년 5월 28일로 되어 있습니다. 별세장소는 울산입니다. 월일은 맞지만 년도만 3년이나 차이가 납니다. 그런데 유가족은 1944년이 옳은 연도라고 말하는 것으로 압니다. 어느 쪽이 맞는지를 알면 좋겠지만, 현재로써는 애매합니다.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1941년 4월부터는 새로운 종교법의 시행으로 일본이나 한국에서는 해외로부터 선교비를 받거나 줄 수가 없었습니다. 일본이 스파이로 의심하며 선교사들의 활동을 정지시켰던 것입니다. 그리고 진주만 폭격은 그해 12월 7일에 일어났습니다.
